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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과거사와 업력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 (하)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3. 나의 경력

이제 내가 겪은 일부 경험을 말해보겠다.

나는 태어나서 여섯 살 때까지 늘 할머니가 혼자 돌보셨다. 그때 부모님 두 분이 따로 사셨으니 우리 가족이 세 도시에 떨어져서 따로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예순 살 때부터 나를 돌봐주셨다. 할머니 기억에 따르면 내가 그녀를 따르면서 청결하게 청소하는 좋은 습관을 길렀고, 어려서부터 마루를 닦고 집을 치웠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몇 시간씩 걸어서 쇼핑도 하고 나들이도 하고 거의 차를 타지 않아도 나도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는데 모든 게 다 익숙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의 이기적인 행동을 언급하곤 하셨다. 가령 집에 손님이 오면 밥 먹을 때 반찬을 먼저 집지 말라고 하셨고 나한테 먼저 주지 않으면 울고불고 떼를 쓰는 것과, 할머니가 남의 아이를 돌보면 악의적으로 대한 것(내 생각에는 질투심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이 다른 아이 때문에 나에 대한 사랑을 나눈다고 질투했다), 밥 먹기 전에 끊임없이 밥을 재촉하는 것 등등. 할머니는 일찍이 내가 자신이 키워봤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까다롭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내 성격에 줄곧 어릴 때부터 드러났던 문제들이 존재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비록 할머니는 전통 이념을 지키셨지만 당시 나를 어떻게 인도해야 할지 모르셨던 것 같다. 아마 세대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나를 비교적 응석받이로 대했다.

여섯 살이 지난 후, 나는 어머니한테 1년 가 있었고, 또 아버지한테 가 있었다. 내 기억에 부모님들은 내가 어렸을 때 내 가치관에 무슨 정면(正面)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큰 영향을 주었고, 할머니와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가 더 의견을 많이 내고 성격도 강해서 나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연애소설을 즐겨 읽었다. 나도 아주 몰입해서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었는데 색욕심도 아주 강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의 그 말씀은 내게 미리 경고한 말이었고, ‘음욕을 경계’하는 것은 한 생명이 지옥으로 떨어져 내려가지 않도록 억제하는 엄숙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그 어떤 가보(家寶)보다 소중한 것이었지만 당시 내가 중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도 할머니께서 경계해 주신 덕분에 음란의 두려운 보응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법을 얻은 초기에 남자친구(훗날 남편)와 결혼하기 전 남녀 관계를 맺은 것 외에는 성관계에 있어서 실제로 그리 많은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그때는 음욕을 경계하는 엄숙함을 몰랐고 수련자로서 저지르지 말아야 할 큰 잘못을 저질렀다.

4. 가족의 업력이 미치는 영향을 깨닫다

나는 가족의 업력이란 방면에서 작은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한 동수의 문장에 따르면, 나 자신의 성격(법을 얻기 전에)은 각각 친가와 외가로부터 온 영향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친가는 부처님을 믿는 정면적인 일부 영향을 끼쳤다. 가령 비록 당시에 성의가 부족하고 깊은 신심은 없었지만 적어도 신불(神佛)을 믿고 인과응보를 믿은 것은 내가 훗날 법을 얻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때는 또 수련의 도리를 아예 몰랐지만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면서 예불하고 돈을 바쳤으며 불상이나 출가인(出家人)을 보면 존경심이 생겼고 함부로 살생도 하지 않았다.

반면 외가 쪽에서는 부면(負面)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이기심, 질투, 허영, 게으름(어릴 때는 할머니를 따라다닐 때 부지런했으나 나중에 게을러졌다), 색욕과 정을 중시하고 (외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점도 중공 관리들의 보편적인 음란 풍조에 부합하며, 전통 이야기에 따르면 바람을 피운 사람의 후손도 이런 요소를 갖기 쉽다), 쟁투심이 강하다(외가의 많은 사람들이 성격이 좋지 않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머니의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사실 그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녀의 거칠고 까칠한 성격은 어린 시절의 내게 깊이 각인 되어, 나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서,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아야 하고, 걸핏하면 미워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엄마보다 더 심했다.

가족의 요소와 사회 풍조가 나의 성장기에 끼친 영향 때문에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애정이나 색욕 등 사념(邪念)에 지배당했고, 오랫동안 이와 관련해 강하게 집착했고 사랑 외에는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

수련한 후에도 비록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겉으로만 보면 나는 서른 살에 욕망을 끊었고(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조금 극단으로 치달았다) 몇 달 동안 이 방면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스스로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고험에 부딪혀 보니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악연(惡緣)으로 인해 여러 번 애착이 생기고 꿈속에서도 다른 형태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또 쟁투심과 증오심이 아주 강해서 비록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이 닳아 없어지긴 했지만, 두려움과 안일함은 지금도 아주 강하다.

나는 수련한 후에는 사상적으로 가족 업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사람마음은 나에게 아주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법 공부, 연공 등에서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잘 하지 못했고 무형의 방해가 있었는데, 아마도 강한 사상업력(思想業力)이었을 것이다.

또 외가에 대해 생각나는 한 가지 일이 있다. 이 역시 현대 사랑의 관념이 가져다준 고난이 아닐까 한다. 어머니 형제 8남매 중 외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막내 동생이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가장 먼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린 두 딸을 남겨두었다.

막내 외삼촌은 재주가 뛰어나고 용모도 출중했지만 일찍 돌아가셔서 매우 안타깝다. 그는 결혼 후 줄곧 전 여자 친구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헤어졌다. 그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친지들도 모두 이 일을 알고 있었고, 딸들까지도 모두 매우 이해했으며 아버지가 항상 한 아주머니를 사모했다는 것을 알았다.

외할머니의 손자 세대 중 막내 외삼촌 두 딸의 결혼이 가장 순탄하지 못했다. 그들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추구했다.

막내 외삼촌의 큰딸은 손자 세대 여자들 중 가장 예쁘고 학교에서도 가장 예뻤다. 그녀는 늘 소설 속의 그런 사랑을 만나길 원했다. 한때는 그녀에게 잘 대해주고 성실하고 본분인 남자아이와 가까운 듯 먼듯이 지내면서 상대방의 관심을 즐기다가도 감을 잡지 못해 달갑지 않게 여겨 또 다른 사람과 동거하다 헤어지는 등 줄곧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 결혼이란 인연과 운명에 달려 있기에 인연을 따르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어떻게 느낌에 의존할 수 있단 말인가?

작은 딸은 10년 가까이 지내며 정이 두터운 약혼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술을 마시고 세상을 떠나 매우 비통해했다. 마음씨 좋은 여자 친구가 그녀가 안심되지 않아 남편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이사하여 가장 힘든 나날을 함께 보내려 했다. 그녀는 뜻밖에도 이 기간에 절친의 남편과 정이 들었고, 나중에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사랑을 만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업을 크게 짓는 일이었고, 각각 아내와 절친을 배신했으니, 무정하고 의리 없는 표현이다.

어머니 형제 8남매 중 가장 성격이 좋은 사람은 어린 나이에 다른 곳으로 보낸 여동생(역주: 필자의 작은 이모)이다. 그녀는 외할머니 집에서 거의 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온화하고 선량해서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만족을 알았으며 운명을 잘 알아 성격적으로 가문의 업력이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한 가족의 업력이 단지 그 한 세대뿐 아니라 그 이상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마 가정교육이나 또는 직접 물려받은 업력일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어릴 때는 내면의 전통을 가진 할머니를 따랐지만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나쁜 성격을 많이 보인 것은 외가의 업력에서 비롯된 성격적인 반응일 것이다. 마치 동수가 문장에서 언급했다시피, 그녀 가족의 세 손주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비록 구체적인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집안을 망친 아들(敗家子)’의 행위를 나타냈으며, 나중에야 대법을 통해 선해(善解) 되었다.

동수의 글을 읽고 나도 내 가족의 지난 일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신불과 내면의 전통을 믿는 사람들과 사당(邪黨)의 독소에 물든 무신론자들이 얼마나 사람됨이 다른지, 후손들은 어떻게 될지 많은 이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통적이고 신(神)을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량하고, 근면하며, 사심이 없고, 불평이 없으며, 욕심이 적은 등의 특성을 지닌 반면, 사당의 독해가 깊은 무신론자들은 일반적으로 색욕, 탐욕, 난폭하고, 잘 싸우며, 미워하고, 두렵고, 게으른 등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설법 몇 단락을 함께 공유해보고자 한다.

“한 사람에게는 주이스(主意識) 외에 하나에서 몇 개의 푸이스(副意識)가 존재하고, 동시에 또한 가족 중의 조상에게서 오는 정보가 있다.”(《파룬궁》)

“또 일종 정황이 있는데, 가족 중이나, 조상에게서도 아래로 쌓일 수 있다. 과거에 노인들이 이런 한마디 말을 했다. “德(더)를 쌓아라 德(더)를 쌓아, 조상이 德(더)를 쌓았다, 이 사람은 德(더)를 잃는다, 德(더)를 손상한다.” 그 말은 모두 지극히 옳다.”(《전법륜》)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
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
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
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가누나“

(《홍음2》〈대겁을 풀다〉)

이 글을 쓴 것도 일부 악업(惡業)이 대법 속에서 선해(善解)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좋은 곳에 가게 해주시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오래 전에 삼퇴(三退) 하게 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중의 어른들과 여러 친지들이 모두 좋은 미래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