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송대(宋代)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한 편의 유명한 사(詞)가 있다. 바로 《강성자(江城子)•을묘년 정월 20일 밤의 꿈(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이다. 우선 전체 내용을 감상해 보자.
이승과 저승으로 멀어진 망망한 십 년 세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잊기 어렵다오.
천 리 밖 먼 곳에 외로운 무덤 있어
처량한 심정 호소할 곳 없었다오.
설령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오.
얼굴에 먼지 가득히 앉고
살쩍이 서리처럼 하얗게 되었다오.
밤들어 꿈속에서 문득 찾은 고향집
작은 방의 창가에서
그대는 마침 머리 빗고 화장하다가
나를 한번 돌아보곤 한마디 말도 없이
천 줄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오.
해마다 애간장을 끊은 곳을 알겠나니
달 밝은 밤
작은 소나무가 늘어선 언덕이군요.
十年生死兩茫茫,不思量,自難忘。
千裡孤墳,無處話淒涼。
縱使相逢應不識,塵滿面,鬢如霜。
夜來幽夢忽還鄉,小軒窗,正梳妝。
相顧無言,惟有淚千行。
料得年年腸斷處,明月夜,短松岡。
이 사의 제목에 ‘꿈’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꼭 꿈은 아니다. 사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려 한 것은 일종 꿈인 듯 꿈이 아닌 듯, 깨어 있는 듯 깨어 있지 않은 듯한 상태다. 즉, 시인 자신조차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것이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 같으니 즉 꿈속에 있는 것과 같다. 시인의 죽은 아내는 당연히 그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아마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승과 저승으로 멀어진 망망한 십 년 세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잊기 어렵다오.
천 리 밖 먼 곳에 외로운 무덤 있어
처량한 심정 호소할 곳 없었다오.
설령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오.
얼굴에 먼지 가득히 앉고
살쩍이 서리처럼 하얗게 되었다오.”
10년 시간이 흘러 시인은 아내와 사별할 때보다 많이 늙었고, 아마 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찍이 우아하고 기품 있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무력감이 뒤섞여 아주 처량한 느낌을 준다.
“밤들어 꿈속에서 문득 찾은 고향집
작은 방의 창가에서
그대는 마침 머리 빗고 화장하다가
나를 한번 돌아보곤 한마디 말도 없이
천 줄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오.
해마다 애간장을 끊은 곳을 알겠나니
달 밝은 밤
작은 소나무가 늘어선 언덕이군요.”
비몽사몽간에 아득한 가운데 화장하는 아내의 모습을 봤지만 서로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참을 수 없는 눈물만 흘러내린다. 이때 시인이 마음속으로 느꼈을 무력감과 처량함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전에 다정했던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과거 육유(陸游)가 당완(唐婉)을 그리워하고 이청조(李清照)가 조명성(趙明成)을 그리워했던 것과 같은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짧지만 오히려 슬픔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나 그렇다고 꼭 이것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 모두 천당(天堂)에서 온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바로잡고 대법을 수련한다면 자신의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럼, 당신이 그리워했던 그 사람이 사실은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생명은 천당에서 왔으며 자신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머물면서 아무런 관심도 없는가?
도(道)를 닦아 하늘로 돌아가면 일체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하루빨리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애초 우리가 품었던 소원이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81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