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宇明)
【정견망】
‘강함(剛强)’을 단순히 외부적인 표현이라 말한다면, “욕심이 없으면 강하다”는 것은 내면의 ‘강함’은 또 무엇일까?
각원(覺遠) 노화상은 큰 사찰의 방장으로 나이가 많아 줄곧 후계자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각원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두 제자인 지견(智堅) 지원(智遠)을 불러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둘 중 뒷산 절벽을 자기 힘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 장차 내 후계자가 될 것이다.”
이에 지견과 지원은 절벽 밑으로 내려와 올라갈 준비를 했다. 지견은 자신이 날씬해서 올라가기 쉽다고 생각한 “내가 먼저 하마.”라고 말하고는 손과 발을 써서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절벽이 워낙 가파른 탓에 지견은 여러 차레 떨어졌고 급기야 코가 퍼렇게 멍들고 얼굴이 부어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 올라가길 고집했다. 그러나 그가 필사적으로 절반쯤 올라갔을 때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번에는 떨어지면서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흘렀고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견은 여전히 다시 올라가길 고집했다. 각원 화상이 이를 보고는, 이 제자가 정말 깨닫지 못하는지라 이렇게 계속 버티다간 목숨을 잃을 것 같아 지견에게 달려가 급히 구해주었다.
한편 지원은 사형(師兄)이 용감하게 전진했고 또 올라가려 노력했음에도 여러 차례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주변을 돌아보니 절벽 아래 작은 개울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에 계곡을 따라서 숲을 뚫고 산골짜기를 나와 산을 내려가서 수행했다.
1년 후 지원이 사찰로 돌아왔다. 이상한 것은 각원 화상이 그를 처벌하는 대신 오히려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했다. 여러 승려들이 의아해하며 각원 화상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각원 화상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사찰 뒤쪽 절벽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아예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절벽 옆에 또 길이 있다. 만약 명예와 이익에 빠지면 마음속엔 오직 눈앞의 가파른 절벽만 보일 것이다. 가벼우면 고뇌하고 상심하며 심하면 몸을 다치거나 불구가 될 것이다. 만약 내려놓을 수 있고 내심에서 자신을 제고한다면 하늘은 높고 구름은 옅으니 저절로 즐거울 것이다!”
원래 각원 화상은 제자들을 고험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상(相)을 본 것은 사실 각자 내심(內心)의 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 사람은 가파른 절벽이고 다른 사람은 구불구불한 우회로였을까?
살아가면서 우리도 마음의 욕망을 달성할 수 없으면 욕망이 더 강렬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정말로 마음속에 절벽이 가로막는 것과 같아서, 몸부림치면 칠수록 심경(心境)이 마치 계곡에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또 “내려놓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아마도 우리가 대부분의 사물을 손에 쥐어야 안심하는 것에 습관이 되어 대궁(大穹)과 창우(蒼宇)속에서 아주 미미하고 작은 존재임을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무욕(無慾)이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되 구함이 없는 진정한 자유와 편안함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무욕의 강함은 바로 ‘무유(無有)’에서 왔기에 흔들 수 없는 것으로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