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淸風)
【정견망】
서새산 앞에 백로 날아오르고,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찌네.
푸른 대삿갓에 초록 도롱이 입고,
비껴 부는 바람과 가랑비 속에 돌아갈 필요 없어라.
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
青箬笠,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
장지화(張志和, 732년—774년?)는 당대(唐代) 시인으로 자는 자동(子同)이고 원래 이름은 귀령(龜齡)이며 호는 현진자(玄眞子)다.
772년(당 대종 대력 7년) 9월 안진경(顔眞卿)이 호주자사(湖州刺史)에 임명되어 이듬해 부임했다. 장지화가 배를 몰아 찾아갔을 때 마침 저문 봄이라 복숭아꽃 핀 강물이 불어나고 쏘가리가 통통하게 올랐는데, 그들이 즉흥적으로 창화(唱和)할 때 장지화가 먼저 노래하여 사(詞) 다섯 수를 지었으니 이 사도 그중 하나다.
중국화에는 백묘(白描)와 공필(工筆) 두 가지 기법이 있다. 백묘는 선의 율동감과 여백으로 공령(空靈)한 의경(意境)을 조성하고, 공필은 세밀한 채색을 통해 대상의 질감과 색채를 드러낸다. 시사(詩詞)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백묘의 수법을 채용하여 거의 수식이 없으면서도 의경이 심원하여 여운을 남긴다.
어릴 때 이 사를 읽었을 때는 비록 아름답게 쓰였으나 특별할 것은 없다고 느꼈으며, 왜 이런 사가 이토록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천 년을 전해 내려올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표면적인 자연경관이 아니라 어부의 심경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높은 층차 공간의 생명에 대한 요구에 동화되었기에 에너지가 강대하고 지속적이며 생명력이 매우 강한 것이다.
사실 여기서 어부는 시인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호가 현진자라는 점에서 그가 도(道)를 닦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비 내리는 중에 이 어부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생계를 위해 낚시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는 이미 깊은 입정(入定) 상태에 들어갔으며 물아양망(物我兩忘 대상도 잊고 자신도 잊음)의 경지에 진입했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경이다. 여기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불수귀(不須歸)’는 표면적인 글자 뜻 외에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다시는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속인의 진흙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더 깊은 함의가 있다.
우리가 잘아는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란 시를 보자.
산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마다 사람 자취 끊겼는데.
외로운 배 위 도롱이 삿갓 쓴 노인,
홀로 차가운 강 눈 속에서 낚시하네.
千山鳥飛絕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유종원은 불가(佛家) 수행을 했으며 그가 묘사한 이 어부 역시 그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또한 고도의 입정(入定) 상태에 있다.
한 편의 사(詞)와 한 수의 시(詩), 그리고 두 폭의 그림이다. 하나는 색채가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은연중에 선의를 머금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은백색 먹빛 속에 차갑고 고요하지만 의경이 높고도 멀다. 일양일음(一陽一陰)으로 두 저자는 각기 하나는 도를 닦고 하나는 불법을 닦았으나 모두 물아양망의 생명 경계와 정력(定力)을 나타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여기서 딱 어울린다.
글씨는 그 사람과 같고 사(詞)는 그 사람과 같으며 여기서 사는 곧 그림이기도 하니 그림 또한 그 사람과 같다. 이는 두 저자의 문학적 공력과 수련 층차 및 생명 경계의 현현일 뿐만 아니라 중국 문자의 층차가 공간을 관통하는 정도가 극히 높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자의 지극히 간결한 문자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심리적 공명과 진동을 줄 수 있는데 이는 고시사(古詩詞)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두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다.
“하늘은 푸르고 벌판은 넓은데,
바람 불어 풀 낮아지니 소와 양이 보이네.”
天蒼蒼,野茫茫
風吹草低見牛羊
단 몇 줄로 기세가 웅장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강은 넓고 구름은 낮은데, 대오에서 떨어진 기러기 서풍 속에 우네.”
江闊雲低、斷雁叫西風
짧은 아홉 글자 속에 나그네의 한과 온갖 이별의 슬픔이 모두 담겨 있다.
신전(神傳) 문자는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