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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장자가 노 애공을 만나 진정한 유자를 논하다

덕혜(德惠)

【정견망】

도가의 저명한 인물 장주(莊周)는 흔히 장자(莊子)라 존칭하며, 도교에서는 그를 ‘남화진인(南華真人)’으로 떠받든다. 장자가 어느 날 노나라에 가서 애공(哀公)을 만났다.

노 애공이 말했다. “우리 노나라는 공자의 고향이라 유가(儒家) 인사가 아주 많고, 오히려 장자 선생 같은 도가의 방사(方士)는 매우 적습니다.”

뜻밖에도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노나라에 유자가 많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아주 적습니다.”

노애공이 반박했다.

“노나라 경내(境內)에는 도처에 유생 차림을 한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유자가 적다고 합니까?”

장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 장주가 들으니, 진정한 유생은 의관과 장신구가 모두 도법(道法)에 부합하며, 내면의 수양과 외면의 의관이 상응한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명실상부하고 안팎이 상응하는 진정한 유자입니다. 둥근 관을 쓴 유자는 반드시 천시(天時)를 통달하여 천상을 잘 관찰해야 하고, 네모난 신발을 신은 유자는 지형(地形)을 알며, 패옥(佩玉)을 찬 유자는 일이 닥쳤을 때 그 정사(正邪), 시비(是非), 선악과 길흉을 명백히 분별하여 과단성 있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유가의 도리를 통달한 유가 군자는 굳이 의도적으로 유생 복장을 차려입지 않을 수도 있으며, 굳이 유생 복장을 차려입은 자라고 해서 반드시 유가의 도리를 통달한 것은 아닙니다. 전하께서 만약 이를 믿지 못하시겠거든,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유도(儒道)를 알지 못하면서 이 옷을 입는 자는 사형죄에 처한다!’고 해보십시오.”

노애공은 믿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 명령을 내렸고,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 안에는 감히 유생의 의관을 차려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직 어떤 한 사람만이 여전히 유생 복장을 한 채 자신 있게 궁궐 문 앞에 서 있었다. 노애공은 곧 그를 불러 국사를 물었는데, 온갖 질문과 변화 속에서도 이 사람은 유가의 도리로 유창하게 대답하며 막힘이 없었다. 이때 장자가 노애공에게 말했다. “노나라만 해도 유자가 단 한 사람뿐인데, 어찌 유자가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노애공은 마음속으로 탄복하며 승복했다.

이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게 겉모습이나 외견상의 의관이 내면의 실질을 대표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유교(儒敎)란 위로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알며, 인사(人事)에서 시비를 명백히 분별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지, 후세의 입만 열면 ‘지(之), 호(乎), 자(者), 야(也)’만 찾는 서생들과는 결코 다르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는 유가가 수천 년 동안 엄청나게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며, 불교가 말법(末法) 시기에 접어들었듯이 유교와 도교 역시 마찬가지로 말법 시기에 접어들어 완전히 부패했으며, 이미 오래전에 쇠퇴하여 더는 사람을 제도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제도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시대가 다르면 그에 따라 다른 대각자(大覺者)가 출현해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한다. 현재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파룬궁(法輪功)은 바로 기공의 형식으로 전해진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 공법이니,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들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역사상 유교, 도교와 불교 모두 온갖 마난(魔難)을 겪었듯이, 오늘날의 파룬궁 역시 중공 사당의 박해를 겪고 있다. 박해를 이겨낸 파룬궁은 역사 속의 유·불·도 삼교처럼 반드시 세상 사람들의 높은 존중과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