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明心)
【정견망】
인터넷 번역본:
국면이 안정되었을 때 유지하고 보존하기 쉬우며, 사변의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도모하기 쉽다; 사물이 취약할 때 해체하기 쉽고, 사물이 미세할 때 흩어지기 쉽다. 일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 처리하여 타당하게 해야 하며, 정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화란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 같은 싹에서 자라났고, 구층 높이의 대(臺)도 한 줌의 흙을 쌓아 올린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천 리 길의 먼 여행도 발밑의 첫걸음에서부터 걸어 나온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는 손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無爲)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는다. 백성들은 일을 함에 있어서 대개 거의 다 이루었을 때 실패한다. 끝맺음을 처음처럼 신중하게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가진 성인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고, 대중이 늘 범하는 허물을 보완한다. 이와 같이 만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를 뿐 억지로 간섭하지 않는다.
其安易持,其未兆易謀;
其脆易泮,其微易散。
爲之於未有,治之於未亂。
合抱之木,生於毫末;九層之台,起於累土;千裏之行,始於足下。
爲者敗之,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無執故無失。民之從事,常於幾成而敗之。慎終如始,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不貴難得之貨,學不學,複眾人之所過,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이 글은 중국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번역문에 따라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이상의 이해 중 상당수가 틀린 것이다. 이 장(章)은 사실 수련인이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안이지 지미조이모(其安易持,其未兆易謀)”란 당신이 어떤 생각[명·리·정(名利情)에서 생겨난 탐·진·치(貪瞋癡)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 이 생각이 쉽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념을 형성하게 되며, 이러한 관념이 형성되기 전일수록 제거하기가 더 쉽다는 말이다.
“기취이반 기미이산(其脆易泮,其微易散)”이란 이러한 집착이 막 형성되어 아직 충분하지 않을 때는 쉽게 해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爲之於未有,治之於未亂)” 여기서 말한 것도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도가는 국가를 다스리는 것을 강조하지 않으며, 단지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비유했을 뿐이다. 당연히 그런 사심(私心)과 잡념(雜念)이 자신의 심지를 어지럽히기 전에 청리(淸理)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 같은 싹에서 자라나고, 구층 높이의 대(臺)도 한 줌의 흙에서 시작되었으며, 천 리 길의 먼 여행도 발밑의 첫걸음에서 시작된다(合抱之木,生於毫末;九層之台,起於累土;千裏之行,始於足下).” 이 몇 구절은 예로부터 누구나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앞뒤의 내용을 결합해 보면 축적을 강조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 몇 구절은 사실 반대로 수련에서 마음을 닦는 것은 미세한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 어떤 강력한 집착도 작음에서 큼으로, 약함에서 강함으로 축적되어 온 것이다. 집착하는 관념이 약하고 작을 때는 비교적 제거하기가 쉽지만, 그것이 강해져서 이미 하나의 세(勢)를 형성한 뒤에는 제거하려 해도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이 몇 구절은 맨 앞의 내용과 서로 호응하게 된다.
“억지로 하는 자는 실패하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爲者敗之,執者失之。是以聖人無爲故無敗,無執故無失).” 이 몇 구절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거나 어떤 관념에 집착하면 쉽게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수련이 잘된 성인은 청정무위(淸淨無爲)한 상태를 유지하며, 그래야만 청정한 마음가짐을 유지하여 과오를 적게 범하거나 심지어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일을 할 때는 대개 거의 다 이루었을 때 실패한다. 끝맺음을 처음처럼 신중하게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民之從事,常於幾成而敗之。慎終如始,則無敗事).” 이 몇 구절은 일반 사람들은 일을 할 때 흔히 용두사미가 되어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고 끝까지 견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수련이 잘된 사람은 신종여시(愼終如始, 끝 맺음을 처음처럼 함)를 유지하고 정진하는 초심을 유지해야 과오를 적게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고, 대중이 늘 범하는 허물을 보완하며, 만물의 자연을 보조할 뿐 감히 억지로 하지 않는다(是以聖人欲不欲,不貴難得之貨,學不學,複眾人之所過,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이 몇 구절은 수련이 잘된 ‘성인’은 속인과 다르며, 속인이 추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속인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으며, 속인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속인의 허물을 바로잡으며, 자연의 도에 순응하고 감히 함부로 작위(作爲)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도덕경》은 중국 전통문화의 경전으로 그 내함이 박대정심(博大精深)한데, 그 핵심은 천도(天道)를 경외하고, 돌이켜 안으로 반성하며, 청정자연(淸淨自然)하고, 최종적으로 천도를 깨달아 세속을 초탈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늘 이익의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도덕경》의 진정한 내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 지리멸렬해지며 견강부회(牽強附會)하게 된다.
이상은 필자의 얕은 견해에 불과하니,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여러분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