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
7 신방사무실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다
아침 4시쯤 우리는 연공을 시작하였다. 먼저 1-4장 공법을 시작하여 후에 5장 공법을 하였다. 이 시간에 길에서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트럭 한대가 화물을 가득 싣고 가다가 길옆에 있는 가로수와 부딪쳐 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떨어져 자전거 가는 행로를 막았다. 트럭은 이 사고로 더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막아 양쪽에서 길을 막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은 길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우리가 연공을 끝내자 정리도 끝나고 트럭은 시동을 걸었다. 이 때 “소장”은 저보고 “보세요, 저 트럭이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엄호했어요”라고 말했다.
낮에 나는 “사녕”이 책을 가져왔다는 소문을 듣고 가보니 그녀는 수련생들과 책을 나누어주고 있었고 중경에서 온 한 여자 대학원생과 같이 있었다. 저녁에 나는 부흥문에 있는 벤치에서 열시쯤에 요녕에서 온 수련생 두 분과 얘기를 나누게되었다. 그들은 신방사무실을 방문하러 왔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들은 말을 듣고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과 같이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먼저 방문하는 이유를 표명하는 서류를 써야 하여 내가 작성하기로 모두 동의하였다. 나는 그 서류를 밤 두시가 지나서야 작성을 완료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신방사무실에 가려고 서둘렀다. 한 지방에서 온 동수가 이 소식을 듣고 가지 말라고 권유하여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때 하북성에서 온 연세 드신 몇 분이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좀 있다가 여기에 있는 몇 분과 같이 가기 위해 먼저 떠나면 우리가 뒤에서 따라 잡는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그 두 분은 멍하니 나만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우리하고 같이 가지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는 나이 드신 몇 분을 차마 둘 수가 없어 그들 더러 먼저 가라고 하면서 영정문 1호에서 기다린다고 하였다.
문 앞까지 갔을 때 언니들은 그 남자 동수와 말을 나누겠다면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앉아서 그 분의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 분은 우리가 가지 않았으면 하여 권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왜 가지 못하게 하는지를 말하여 주었다. 언니들은 그 분의 말을 들은 후에 마음이 변하여 가지 않겠다고 하여 나는 앞에 간 두 분과 같이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길에서 돌아올 때 “소장”도 내가 가지 않았으면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영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그 두 분이 더 기다릴 것을 염려해 알려주려고 “소장”이랑 차를 타지 않아 걸어서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하였지만 그 두 분의 그림자마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곳에서 오래 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말았다. 돌아온 후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신방사무실을 간 그 두 동수 분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고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서 온 교란을 잘 이겨내지 못하여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하였다. 몇일지나 비가 오고 있는데 “사녕”은 그 대학생과 부흥문에 있는 나를 만나러 왔다. “사녕”은 갈 때는 고속 기차를 탔지만 11시간이 걸렸고 올 때는 느린 기차를 탔는데도 불구하고 7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기뻐하여 말하여 주었다. 대법은 신기하다. 나는 “사녕”과 말 몇 마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황색조끼를 입은 아저씨가 나더러 옷 나누어주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여 나는 “사녕”과 슬쩍 얼굴만 보고 헤어졌다. 후에 그녀는 전화에서 같이 있던 여자 애와 함께 집에 가서 책을 가져온다고 알렸다. 나는 황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와 같이 많은 곳을 다니면서 공원 등에서 밖에서 노숙하는 수련생에게 옷을 나누어주었다. 가을이 들어서고 입추가 다되어 아침저녁으로 온도가 내려가 싸늘하였다. 많은 수련생들은 아직도 반 팔 옷을 입고 있었다 듣건대 자비로운 사부님이 심진(지명)에 있는 동수를 깨우쳐 그더러 빨리 북경으로 입을 옷을 부쳐 밖에 있는 수련생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북경으로 많은 복장을 보냈다. 하루 나는 화물차에 실어 북경에 온 수련생과 같이 북경 각 곳에다 비닐을 나누어주고 있을 때 북경에 있는 동수를 만나게 되어 나는 그들이 나왔으면 하여 나오도록 격려하여주었다. (북경의 수련생은 나와 법을 증실하는 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에 듣건대 그 두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는데 나왔다고 한다
8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잡다
나는 화물차에 실어 온 그 분과 같이 동행하여 아는 수련생 집에 갔다. 거기서 60세쯤 되시는 속인 두 분이 저에게 “왜 북경에 있으면서 집에 가지 않는가” 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수련생이 나를 찌르면서 말하는 것을 제지 시켰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북경의 지리를 잘 몰라 깜박하면 길을 잃어 수련생들과 같이 갈 수 없었다. 나는 가면서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였어야 되는데 후회하여 우리는 북경에 뭘 하러 왔지? 힘들게 한번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왔는데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다음에 이런 기회를 잡으면 꼭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시 한번 이런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다가 어느새 전문(지명) 앞에 도착하여 그곳의 많은 수련생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경문 한편을 주었으나 나는 가짜로 의심하여 받지 않고 “사부님의 책도 많고 법도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또 뭘 봐?” 말하면서 나는 가버렸다. 길에서 나는 한 20세 되는 수련생을 만났다. 그 녀는 병원의 간호사였다. 그녀는 돈이 다 떨어져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급히 돈 200원을 주면서 남아 있기를 격려하였다. 8월달에 들어서자 북경에 있는 대법제자는 줄어들었다. 전국 각 곳의 수련생들은 북경에 도착하여 무슨 일이 없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할지도 몰라 집으로 돌아갔다. 많은 수련생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북경에 있는 수련생은 매일 잡힌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회가 있으면 탈출하여 돌아왔다. 그러나 필경 사람이 적어 수련생들이 북경에 남기를 원하였다.
천안문 대문에서 많은 대법제자를 만날 수 있었다. 전국 각 곳에서 온 대법제자는 만나면 눈빛만 보아도 마음이 통하여 알 수가 있었다. 우리는 걸어 들어가서 <전법륜>을 펼치고 한 단락을 읽었다. 이때 한 외국인이 열 몇 살 되는 남자애를 데리고 앞에 오더니 영어로 물어봐 옆에 있는 간호사 수련생이 답하여 주었다. 그분은 말을 듣고 기뻐하여 우리는 <전법륜>에 있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웃으면서 갔다가 돌아와서 영어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수련생)은 그저 간단한 영어만 할 수 있어 그분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저 머리만 절래절래 흔들 뿐이었다. 그 외국 사람은 실망하였다. 얼마 안지나 그가 돌아오더니 중국어로 말하기를 “당신들은 무엇을 믿어요”라고 물었다. 우리들은 “우리는 대법을 믿고 사부님을 믿는다” 고 답하였다. 그분은 자기는 천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만족하다는 듯이 웃음을 짓고 가버렸다. 나는 그분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것은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기회이고 이번에 나는 이 기회를 잡았다고 깨달았다.
우리가 천안문 성벽 밑에서 앉아 쉬는 동안 “소장”이 머리 안에 떠올랐다. 그들은 참으로 수련을 잘하신 것 같았다. 관념도 별로 없고 길을 걸어도 가벼웠다. 사부님은 해법하실 때 말한 적이 있다. “과거에 그 고인의 행동은 아주 빨라서 하루에 백 리길을 걸으며 그 말은 하루에 천 리 길을 가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상은 비교적 단일하고 비교적 골똘하며 한가지 일을 할 때 바로 한 갈래 길이므로 그는 반드시 잘한다.”<장춘보도원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보면서 느리고 힘들게 모든 것을 해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빨리 걷는데도 오히려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는 도는 소문을 들어 원만에 대한 집착과 자책하고 비관하는 생각에 숨어서 울었다. 나는 일어나 천안문 성벽 옆에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자신이 법선 위에 서서 앞으로 나가고 강물이 저 뒤에서 파도 치고 있는 것을 진지하게 느꼈다. 나는 고향에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자신은 이미 법선을 탔는데 비관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사부님은 나를 격려하기 위하여 대법의 신기함을 체험하게 하여 비관하는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같이 돌아가는 길에서 법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가면서 나는 다른 수련생을 쳐다보니 이미 나는 그 두 분에게서 멀리 뒤떨어져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걸음을 빠르고도 가볍게 걷는 것을 체험하였다. 사부님은 또 한번 나를 격려하였다. 사부님의 자비심을 생각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발표시간:2003년6월 27일 금요일
발표위치: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6/27/22174.html
발표문헌:정법수련 >정념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