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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리는 위력

샌디애고 대법수련생

[정견망] 연태(烟台) 시(市)는 샌디애고 시와 자매를 맺었다. 1999년 7.20이후에 연태시의 사악들은 사악의 우두머리를 바싹 따라 연태시의 대법제자에게 하늘을 거역하는 악행을 하였다. 제일 처음으로 보도(輔導)를 해 왔던 대법제자(趙金華 – 짜우찐화)가 박해받아 죽은 사건은 바로 연태 지구에서 발생하였다. 작년 여름, 사악을 억제하기 위하여 “법륜공에 관여하는 인권 보고서”에 기초에서 “연태 보고서”를 편집하여 샌디애고의 시장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시장이 자신이 편리한 방식으로 우리자매 도시 민중에게 호소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간단한 요구도 많은 시달림을 봉착하였다. 처음에 시장 비서와의 약속에서 우리는 그의 책꽂이에 우리가 보내준 자료와 중공에서 보내준 비방자료가 동시에 있는 것을 보았다. 비록 시장 비서는 우리의 상황을 동정한다고 반복적으로 해석하였지만 또 두 쪽의 의견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는 아무 꺼리낌 없이 시장과 중국영사관의 관계가 좋아 중국영사관에서 자주 방문객이 온다고 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우리의 의견을 시장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비서는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매우 동정하는데 시장은 이미 한번 표창장을 발급하였고 이후에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처음으로 받은 타격이였다. 우리는 진상을 알려주는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느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그저 표면에 만족한다면 그 표창장을 받은 것이 우리의 사정을 봐서 준 것처럼 되고 우리에게 표창을 주면 중공에 무엇인지 빚진 것 같은 감이 들어 양쪽을 공평하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것은 위치를 잘 찾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매주 단체 법공부 토론에서 모두들 시장과 중국영사관의 밀접한 관계로부터 여기에 사악의 요소가 있다고 인식하였다. 사부님은 <2002년 위싱턴DC법회에서 설법>에서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 곳이 바로 당신들이 가서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구도(救度)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곤란에 부딪쳤다고 하여 피해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손실을 갖다준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법을 실증(證實)할 때 장애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피해가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향하여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생명을 구도(救度)하여야 한다.”

우리는 법에 대하여 오해가 있거나 나쁜 생각이 있거나 아니면 속임에 넘어간 생명이야 말로 진정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의 구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법에서 인식이 제고함에 따라 우리는 진상을 알리는 범위와 심도를 넓히려고 하였다. 우리는 모든 시의원과 약속을 하여 만나 그들에게 “법륜공 인권보고서”과 “연태 보고서”를 전하여 주었으며 박해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연태와 자매 도시 맺은 시민위원회 주임과 만나 박해진상을 알렸다. 주임은 화인(華人)이었고 기도교 신자였다. 비록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국이 중국에게 잘 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 중국사람은 중국사람의 흠집을 잡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사상에 영향 밑에 비록 박해에 대하여 티끌만큼도 모르지만 화인(華人)의 모임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준다는 이유로 법륜공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왜 집에서 숨어서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경찰의 혹형을 당하였을 때도 왜 거짓으로 안 한다고 말하지 않느냐 말하였다. 그녀는 심지어 생명안전의 이유로 배신하는 것은 예수의 양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틀어 많은 오해하는 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선 “법륜공 인권보고서”와 “연태 보고서”등에서의 박해받은 사건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그에게 박해의 진상을 알렸다. 자유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필히 박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고 말을 나누는 중에서 그녀는 확실히 어떤 부분은 알지 못한 것이 많았다. 이리하여 그녀는 점점 질문하기 시작하였는데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말을 나누어 그녀는 비록 우리를 직접 도울 수는 없다고 하였지만 우리에게 초보적인 인식이 좀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몇 달 동안 면담하는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게 되었고 결국 의원 한명이 연태시의 정부에게 탄압을 중지하라는 의안을 제출하였다. 이 분은 우리에게 자신이 개인적인 명의로 사인하여 의안를 제출하는가, 아니면 그녀가 시의회에 의안을 제출하여 시의회에서 결의안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토론한 결과 이번 일은 사악을 억제하는 작용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쪽이 유리하면 어떤 쪽으로 하여야 하고 표면에 집착해서는 않된다고 느꼈다. 우리는 진정한 지지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펜을 들어 의안 초고를 작성하여 다른 의원들의 지지도 같이 받기로 하였다. 금년 LA법회 전에 많은 의원의 승락과 지지를 받았다. 의안을 제의한 그 분은 우리에게 알리기를, 그들은 시장 사무실과 연락을 하였는데 시장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몇 달 동안 노력의 결과라 모두들 기뻐했다. LA법회의 선물로 이것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우리는 많이 조심스러워 하였고 간섭을 덜 받으려고 노력하였으나 투표하기 예정 전날에 2월 17일날 일은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은 갑자기 하였던 말을 고쳐 의안에 대한 투표를 거절하였다. 그의 말로는 이것은 국제문제에 관여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정부가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이유로는 다른 시의원을 설복할 수 없지만 시장이 투표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말할수 없었다. 단 한가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과반수가 넘는 의원이 반대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안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시장과 말을 걸으려고 하였으나 그는 간섭을 받은 것이 분명하였다. 시장 비서는 심지어 우리가 한번 만나는 기회까지 거절하면서 강경한 태도로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고 하면서 더는 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 곳이 바로 당신들이 가서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구도(救度)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곤란에 부딪쳤다고 하여 피해가지 말아야 한다.” <2002년 위싱턴DC법회에서 설법> 우리는 비록 문제에 봉착하였지만 이것도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시장의 이런 태도는 우리가 시민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아서인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었다. 우리는 가서 진상을 알리고 결정은 샌디애고의 시민들과 그들의 시장이 선택한 것이다.

샌디애고 시의회는 매주 화요일에 의회는 문을 열었고 그 날 시민은 자신의 한 과제를 신청하여 3분간 의회에서 연설을 할 수 있었다. 2월 18일부터 우리는 매주 시의회에서 번갈아 진상을 알렸다. 3분이라는 시간은 짧지만 우리는 매주에 가서 시간이 짧은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제일 정확한 일이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일이기 때문에 견지하면 시간이 약인 것이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수련과정이었고 우리 모두 제고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주제가 별로 없어 어떻게 말할지 모르는 것으로부터 마지막에는 말할 주제가 점점 많아졌다. 사스, 중공간첩, 23조 모두다 자매도시와 연결하여 말할 수 있었다. 한 서양 수련생이 주동으로 연설 원고를 작성하는 것을 담당하였다. 매주에 연태 제자가 박해받아 사망한 사례를 알려 사람들의 심금이 울렸다.

사람들에게 알리는 진상은 많은 감격적인 일이 있었다. 화요일은 근무하는 날이라 많은 동수는 반드시 휴가를 받아 와서 발언을 해야 하였다. 한 수련생은 2살되는 딸이 있었는데 따라와 회의에 참석하였다. 시장은 매번 우리의 발언을 마지막에 배정하여 주어 이 수련생이 발언을 하려고 하였을 때 딸이 참다못해 더 급하다는 듯이 엄마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려고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여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상상 밖의 효과를 얻었다. 한 수련생은 평상시 담이 좀 작아 발언하는 것을 좀 두려웠다. 하루 그녀는 이것은 민중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것인데 말을 열지 않으면 안되지 하며 강당에 올라가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시달림과 고통을 받고있는 연태수련생의 상황을 알리는 연설에 푹 빠져 내가 강당에서 연설한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 먹었다. 그녀는 정의를 호소하고 양심을 지키자는 글을 마음써서 읽으면서 속에서 감동에 밀려와 눈물을 흘렸다. 마침 그녀가 읽어 내려가지 못하였을 때 시장은 시간이 되었다고 빨리 읽으라고 독촉하였다. 수련생은 흐느끼며 마지막 글을 다 읽자 온 회의장은 감동하여 박수소리가 오랫동안 들렸다.

시간은 한 주일 한 주일 흘러갔고 우리의 발언은 시의회의 없어서는 되지 않는 시청각 프로그램으로 되었다. 매주에 시의회는 TV에 상영하는 생방송이 있었고 4번이나 비디오로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듣는 소식에 의하면 매번 시청하는 사람이 몇 천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매주에 현장에 와서 참석하는 사람도 1-2백명에 달하였다. 회사의 사장, 무직업자, 백발노인, 순진한 초등학생 사회의 각 계층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어떤 분들은 법륜공을 들은 적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은 들은 적이 없지만 우리의 발언에 대하여 열렬한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왕왕 사람들은 현장이나 TV에서 수련생의 발언을 듣고 전화를 걸어와 더 많은 진상을 물어보았다. 위에서 말한 담이 적은 그 여자 수련생이 발언 후에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너무 감동적이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사부님은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진상을 알리는 것은 가장 유력하며 이는 대단히 선(善)한 행위이다……”

한 주일 한 주일 우리는 부단히 법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고 진상의 위력을 체험하였다. 우리가 시의회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발언을 한지 2달이 지나자 시의원 한분이 주동적으로 한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우리의 행동에 지지한다고 표명하였다. 다른 한번은 시의원이 발언을 하는 수련생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의안의 투표를 촉진할 것까지 토론하러왔다.

실로 만약 반수만 되는 의원이 연합하여 제출한다면 시장은 굴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한 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부님이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에서 길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법륜대법은 좋다 라는 말을 하면서 다닌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시의회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활동이 진행한지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중에서도 결점도 많았고 제일 중요한 결점은 더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시의회에서의 진상 알리는 활동을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우리가 법회에 참석하기 1주일 전에 우리 수련생의 연설이 끝난 후 한 의원의 비서가 와서 알려주기를 시장은 이미 의안을 표결하는 스케줄에 배정하였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어떻게 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다 각성하고 모두가 이번 박해의 사악의 실질을 안다면 누구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것을 억제하면 사악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북 아메리카 법회에서의 설법>
(2003년 워싱턴 DC 법회 발언고)

발표시간: 2003년 7월 26일
발표문헌:정법수련> 수련체오
발표위치: http://search.zhengjian.org/zj/articles/2003/7/26/226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