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대법제자
[정견망] 때로는 마음속으로 사존께 고달픔을 하소연하였다.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존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에게 알려주겠는데 이미 당신에게 아주 많이 없애주었으며 당신의 그 번거로움은 아주 적게 되었다. 만약 당신에게 없애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번거로움에 부딪쳤을 때 일순간에 황천객이 되었을지도 모르며 또 거기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조그마한 번거로움에 부딪쳐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어디 그렇게 편안한 일이 있는가?”(<<전법륜>>)
노역소에서 나온 후 악인들은 나를 바로 세뇌반에 보내려고 하였다. 파출소에서 나의 아내는 아주 많은 말들로 나를 달랬지만 나중에는 절망하여 가버렸다. 돌아가기 전에 나는 그녀에게 집 문열쇠를 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놀라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그녀의 뜻을 알고 웃으면서 말했다. “열쇠가 없이 내가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몇 달동안의 연속되는 고밀도 발정념이 가져다 준 강대한 신심과 정념은 나로 하여금 그것들이 나를 전혀 남겨두지 못함을 알게 하였다.
아내가 돌아간 후 얼마 안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한차례 가장 “험준한” 고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녁에 아내가 돌아왔는데 그녀는 나와 담판하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파룬궁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수련을 포기할 수 없다는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게 긴장을 풀더니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나를 핍박하여 이혼에 동의하게 한 후 그녀는 휴대폰으로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는 바로 떠나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파트 아래의 차 안에서 그녀가 나에게서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주 홀가분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무엇 때문에 “험준”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와 아내는 중학교 동창생이었는데 사귀기 전에도 가장 친한 “지기(知己)”었고 결혼 후에는 남들이 공인하는 “잉꼬”부부였다. 내가 법을 얻은 후, 그녀도 반대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는 매우 어려운 시기인 99년 말에 대법 속으로 걸어 들어왔고 후에 나와 함께 진상자료도 배포하였으며 상당히 잘하였다. 동수들은 나에게 “당신의 아내는 근기가 정말로 좋다”고 말하였다. 내가 노역소에 있을 때 그녀는 달마다 나를 보러 왔는데 끊인 적이 없었다. 재소자들도 “당신의 아내는 정말로 괜찮다”고 부러워하였다.
바로 이러한, “지기(知己)”, “애인” 그리고 “동수”를 겸한 관계가 나의 최대의 집착인 “정”을 살그머니 덮어 감췄다. 그리고 거듭되는 다른 사람들의 흠모와 칭찬 속에서 끊임없이 그것을 가중시키고 그것을 덮어 감췄던 것이다. 나중에 일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나로 하여금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심중한 타격”을 받게 했던 것이다.
수련은 정말로 지극히 엄숙한 것으로 언제까지나 중생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얼마나 높이 닦았으며 과거에 얼마나 잘했든지 막론하고, 제거하지 못한 어떤 하나의 집착이라도 있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한 순간에 훼멸되게 할 수 있다.
“심중한 타격”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혼인, 가정과 감정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험준한 고험을 겪은 뒤인데도 나는 그렇게 강렬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여기서 말이 나온김에 동수들을 일깨워 주는데, 과거와 현재에 얼마나 잘 했다해도 아직 무슨 강렬한 집착이 홀시되고 있는지 자신을 다시 한번 철저하게 검사해 보아야 한다.) 사실 노역소에서 사존께서는 이미 이 문제에 주의하라고 나를 점화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강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의외로 강렬하여 정념은 순식간에 약해졌고 거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마침 그 때에 사악은 갑자기 손을 써, 불법으로 나를 집에서 납치하여 세뇌반에 보냈다. 그 때 나의 정념은 약해져 이미 그러한 잔혹한 박해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고 본의와는 달리 타협하였다.
순식간에 일락천장이 되었고 철저하게 망가졌다. 고통스러운 시달림으로부터 낙심에 이르는 동안, 때론 노역소에서 발정념하던 “내”가 생각났지만 아주 멀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게 나였던가? 남아있는, 조금의 비교적 깨어 있는 사유(思維)는 그 “제3자”가 빚을 받으러 온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원한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자신은 오히려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날 저녁, 오랫동안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던 아내가 생각밖에 일찍 돌아왔다. 밥을 먹은 후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였다. 몇 마디 나누지 못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차를 가지고 와서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하자 딸애는 기어코 따라 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렇게 되어 그들 세 사람은 가버렸다. 그 때, 나는 크나큰 굴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밀려와 거의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10년동안의 사랑이 하루 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속인들은 아내를 빼앗긴 원한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깊고 큰 원한”이라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나는 이것이 내가 아직도 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낡은 세력이 배치하고 교란하며 고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과거 우주 중의 고급생명은 대법제자와 중생과의 역사상에서의 숙원(宿怨)을 이용하여 각종 마난을 배치함으로써 나의 심성을 고험하는 동시에 나를 고험하는데 이용한 “그”(부정적 작용을 일으킨 사람)를 소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볼 때 대법제자의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과 대법제자를 붙잡아 옥살이 시키는 것은 다 똑같이 나쁘고 모두 소멸해야 할 것인 것이다.
명백해졌으니 나는 이런 배치를 승인할 수 없었다. 나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선해(善解)의 길을 걸어야 하고 나는 마땅히 그들을 구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치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 행하려면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강렬한 집착이 제거되지 않았는데 선해(善解)하려고 한다니 우스개 소리가 아닌가? 그녀는 이혼을 고집했는데, 이혼하겠는지 하지 않겠는지하는 문제에 대한 동수들의 의견은 달랐다.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혼하는 것은 낡은 세력의 길을 걷는 것이고 이혼하지 않는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인 것 같았다. 반복하여 깨닫고 힘들게 몸부림 쳤지만 나중에 역시 이혼하였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일목요연(一目了然)하다. 망설이면서 힘들게 몸부림쳤던 것은 바로 그 혼인, 속인의 정에 미련이 남아 있어서였다. 나는 강렬한 집착을 대법으로 덮어 감추려 했고 법에서 구실 하나를 찾으면 내가 집착하는 것을 만회할 수 있다고 망상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당신들이 바르게 걷기만 하면 사실 나는 모두 선해시켜 줄 수 있다. 나는 꼭 그의 극단적인 마음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는 그로 하여금 더는 그의 목숨을 갚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으로 그의 마음 속의 매듭을 풀어 줄 수 있고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기만 하면 매듭을 풀지 못하며 사부는 하기 어렵게 된다.”(<<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
무엇을 “바르게 걷는다”고 하는가? 나는 누락이 없이 집착을 내려 놓는 것을 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유(思維), 언행의 기점을 정법에 놓고 중생을 구도함에 놓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강렬한 집착을 덮어 감춰놓고 제거하지 않았는데 어찌 정념을 말할 수 있으며 어찌 선해(善解)를 말할 수 있겠는가?
편지를 써서 “그”에게 진상을 알린 적도 있다. 그러나 종이 위에 씌여진 것은 모두 집착이었고 진상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며 목적은 나의 혼인을 만회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도 편지가 제대로 보내지지 않았다.
나는 장시간의 법공부와 새롭게 정법 속에서 수련하는 것을 통해서야 비로소 점차 과거에 나에게 있었던 정념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이는 반년이 지난 뒤었다. 낡은 세력의 배치의 결과와 대가는 실로 아주 큰바, 생명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타락과 훼멸이다. 만약 사존께서 재차 나를 구도하지 않으셨다면 이번에 정말로 훼멸되었을 것이다.
집착이 진상을 덮어 감추었으나 돌이켜 보니 사실 정말로 제일 큰 손실을 본 이는 바로 내가 전에 제일 미련을 두었던 “아내”였다. 대법제자로 놓고 말하면 사랑과 증오는 모두 인간세상에서의 한차례 극 중의 배역에 의해 연출되는 것일 뿐이고 진정한 본질은 생명이 낡은 우주에서 환골탈태하려는 것으로서 반드시 청성(淸醒)하게 그 속의 난이도를 대해야 한다. 모든 집착과 관념, 모든 극 중의 극에서 모두 뛰쳐나와 보아야 하며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것은 제때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 모든 환상을 간파하자 사존의 가르침이 생각났고 깨달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정을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무엇이 “자비”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알고보니 이런 것이었다.
연말에, 나는 다시 펜을 들어 “그”에게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는데 편지는 아주 길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의 은혜와 원한은 꺼내지도 않았다. 나의 목적은 지극히 간단했는데 바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전혀 그의 행위의 도덕적 표준을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그 혹은 그녀의 운명을 배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그런 일은 전혀 우리의 사명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법정인간 시기에 해야 할 일이고 내가 그에게 유일하게 반드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바로 그로 하여금 미래가 있게 하는 것인 것이다.
편지를 쓸 때, 쓸수록 더 홀가분해졌고 쓸수록 더 선(善)해졌다. 거의 다 썼을 때, 그렇게 강렬했던, 아내를 빼앗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은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마음 속 깊이 길게 한숨을 지었다. “그들은 정말로 고달프구나!” 끝없는 자비가 마음 속과 우주 중에 만연되어 갔고 마음은 아주 넓게 넓게 변해갔다.
발표날자: 2004년02월01일
문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4/2/1/256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