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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체 하는 것”은 수련자의 대 금기이다.

대법제자

[정견망] 동수들과 접촉하면서 나는 동수들에게 보편적으로 잘난체하는 관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표현 형식은 다양했는바, 늘 자신의 휘황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동수가 있는가 하면 교오하면서 같지 않은 의견을 듣지 않는 동수도 있으며 또 갖은 이유를 대어 자신의 집착을 고집하는 동수도 있었다. 나는 이런 관념은 이미 개개인의 수련과 전체적인 제고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심각하면 낡은 세력이 틈을 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정황으로부터 보아도 과시심이 중한 동수들은 박해를 비교적 심하게 받았으며 잘난체하는 동수들은 비교접 쉽게 곤두박질쳤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근기와 오성이 모두 비교적 좋고 수련을 고생스럽게 하며 매우 노력하지만 다만 일념이 바르지 않음으로 하여 자신을 매우 피동적이게 만들었는데 나는 정말 그들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 끝에 동수들이 감계로 삼고 전체적으로 제고할 수 있도록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얕은 인식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잘난체하는 태도의 근원은 사(私)를 위하는 낡은 우주의 이치의 속박과 자아(自我)에 집착하는 속인의 관념인 것으로 수련 그리고 정법과는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잘난체하는 동수들은 흔히 거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개인의 의견만 고집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협소한 울타리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마치 틀속에 갇힌 사람처럼 우주의 가없이 넓음과 불법의 위엄 그리고 중생의 고난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단점과 다른 사람의 장점은 더욱 보지 못하며 겸손의 아름다움과 관용의 홍대함도 체험하지 못한다.

속인들도 “겸손하면 얻고 교만하면 잃는다”는 이치를 말하는데 속인의 경지를 초월하려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더 잘해야 한다. 박대정심한 사부님의 법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우리는 수련인일 뿐이며 아무리 높게 깨닫고 아무리 잘 한다해도 한 층차에서의 자그마한 인식에 지나지 않는데 사부님과 고난 속에 있는 중생들 앞에서 잘난체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런 사상이 있는 동수들이여, 우리는 마땅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고 정진해야 한다. 개인의 집착과 좋지 못한 관념을 고집하면 자신을 법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자신을 내려 놓고 법을 스승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마음에 중생들의 고난을 담고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만 점차 자신만을 위하는 관념을 버릴 수 있고 정정당당하게 무사무아(無私無我)하게 될 수 있다. 하늘에는 고생이 없지만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부처는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그들이 만약 잘난체한다면 내려와서 고생을 겪으며 중생을 구도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는 절대 잘난체하지 않는 것이다.

문장발표: 2004년 6월 17일
문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4/6/17/276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