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自信)을 버리고 바른 믿음(正信)을 수련
작자:산시(陝西) 대법제자
【정견망 2006년 11월 14일】
얼마 전 진상을 알릴 때 한 동료가 갑자기 나에게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말라!”고 말하여 “자신(自信 역주: 자기를 믿음)”에 대한 것을 사고하게 되였다.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본 후 “자신(自信)”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있어 지금 써내고자 하니 동수들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자신(自信)은 한사람이 객관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관념과 믿음이다. 속인을 놓고 말하면 자신(自信)은 사람의 중요한 소질로 그것은 사람에게 생활의 용기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무사무아(無私無我)”를 수련성취하려는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자면 필요한 것은 바른 믿음(正信)이며 자신(自信)은 도리어 닦아버려야 할 집착이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하기 전에 중국의 일체 명군(明君), 어진 신하(良臣), 현명한 선비, 사상가(哲人)들은 모두 몹시 “자신(自信)”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자신(自信)이란 신불(神佛)과 천지에 대한 경외(敬畏)와 전통문화를 숭배하는 기초 위에서 천의(天意)를 따르고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임금(君), 신하(臣), 선비(士), 인재들은 밝고, 어질며, 현명하고, 철학적인 품격이 있었다.
그러나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신불(神佛), 천지에 대한 모독과 전통문화에 대한 파괴위에 형성된 사악한 당문화(黨文化)는 몇 세대의 사람들을 독해시켰다. 신앙이 없고 안전하지 못한 폭정 하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또한 점차적으로 특유한 자신(自信)을 형성했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이기적이고 구차하게 안전을 구하는 원칙과 강력하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풍격을 형성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자신(自信)은 선천적인 총명과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상으로 총명한 사람의 체현이라고 생각한다. 대륙 동수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신(自信)을 갖고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줄곧 자신으로 하여금 사고하지 않고도 오히려 일체를 불문하고 대가를 치르며 동요할 수 없는 이런 관념은 자신의 사상이라고 인정하여 진리를 보게 되어도 다 배척한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함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의 자신(自信)도 후천(後天)에 형성된 관념이다. 또한 당문화의 낙인이 깊이 찍혀있다. 그것은 장기간 형성된 것이며 게다가 완고한 것이다.
자신(自信)은 곧 자기를 믿는 것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바른 믿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自信)은 자사(自私)와 자부(自负)라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많은 사람 마음, 예를 들면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쟁투심, 두려워하는 마음 등은 모두 그것에서 유발된 집착이다. 수련의 실천에서 많은 고험과 관을 넘는 중에서 곧 자신(自信)이란 이런 집착심을 폭로하고 제거하는 과정이었음을 깊이 체험하게 했다. 예를 들면 1996년의 《광명일보》사건을 시작으로 1999년의 “4.25 상방”에서 “7.20” 이후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한 것, 2005년 이후 “9평”을 전하고 “3퇴”를 촉진하는 과정 등이다.
왜 일부 동수들은 늘 형세를 따라오지 못하는가? 왜 매 번 피동적인가? 그 원인을 찾아보면 모두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자신(自信)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한 것이다. 하나는 악당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악한 당을 부정하면 곧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인식을 스스로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매 차례 교훈은 자신(自信)이라는 이 집착이 가져온 위험성을 인식하게 했고 주동적으로 자신(自信)을 제거하고 바른 믿음을 수련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정법형세가 최후단계로 발전한 오늘 자신(自信) 중의 자사(自私)한 속성은 확실히 이미 분명하게 제거되고 쇠약해졌다. 그러나 자신(自信) 중의 자부(自負)하는 속성은 표면으로 밀려나와 강려하게 표현되어 나왔다. 이런 자부는 안으로 수련하고 자기를 찾는 것을 엄중히 저애하고 법을 실증하는 것과 개인 수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금년 2월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 중에서 엄한 비평과 함께 엄숙하게 제자들을 타이르셨다.
“어느 방면인가? 바로 대법제자가 잘못이 있을 경우 남이 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누구도 말할 수 없는데 말만 하면 야단이다. 옳을 때 다른 사람이 의견을 제기하면 좋아하지 않고 틀려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말을 하기만 하면 바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이미 상당히 심각해졌다. (박수)”
비록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 “여러분을 탓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셨지만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와 관용이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설법 중에서 여러 차례 부동한 각도에서 이 방면의 문제를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는 “안을 향해 찾고 자기를 수련”하는는 법리를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곧 우리로 하여금 수시로 자기의 부족점을 찾게 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과거에 석가모니부처가 이야기한 “법무정법(法無定法)”의 진정한 함의를 상세히 알려주셨다. 또 다른 방면에서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는 중요한 법리를 알려주신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대각자의 광활한 흉금과 끊없는 불법에 대한 겸손함을 체득하게 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자심생마 혹은 사오(邪悟)하여 자기의 소중한 수련 기연(機緣)을 훼멸한 교훈을 말씀하시어 우리에게 법과 사부님을 믿는 중요성과 자기를 옳다고 여기고 바른 믿음이 모자라는 위험성을 경고하셨다.
우리가 새롭게 사부님의 최근 몇 년 설법을 조용히 읽을 때면 사부님께서는 매년 자부(自負)라는 이 집착으로 인해 유발된 각종 모순을 겨냥하여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해야할 것인가 하는 가르침을 볼 수 있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에서의 설법》중 사부님께서는 신들이 일처리를 할 때의 홍대한 관용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한 신(神)이 하나의 방법을 제출해내었을 때, 그들은 급급히 가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급급히 자신들의 것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인정하지 않고, 그들은 다른 신(神)이 제출해낸 방법의 최후의 결과가 어떤 모양인지 가서 본다.”
“때문에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무조건적으로 묵묵히 보완 해주며 그것으로 하여금 더욱 원만하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중, 한국 수련생이 제출한 동수 사이의 협력 중 늘 발생하는 충돌과 모순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셨다.
“만약 개개인 그들이 모두 자신이 재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모두 자신의 능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모두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여기면서 맞서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사실 그때 맞서서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04년 뉴욕국제 법회설법》중 수련생 사이에 쟁론하는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 어떤 때 각 지역에서 늘 논쟁이 발생하고 어떤 때는 논쟁이 끝이 없는가? 왜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 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는가? 이러한 것이 최근 한 시기 중국대륙에서 비교적 뚜렷하다. 사실은 무슨 문제인가? 아주 간단하다. 바로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당신이 자신을 실증하는가이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중에서 수련생 사이의 협조문제에서 나타난 문제에 관해서는 “또 한 방면은 어떤 수련생들은 대법의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어떠한 장소에서든지 대법의 형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줄곧 자신을 강조하며 자신의 의견을 크게 보는데, 이것이 하나의 강대한 집착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말씀하셨다.
몇 년 간 사부님의 가르침은 모두 자신(自信)을 집착하여 나타난 결과들을 지적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법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오성이 높지 못하여 충분히 주의하지 못했으며, 자신(自信)을 버리고 바른 믿음을 수련하는 중요성과 긴박감을 인식하지 못했다. 자부(自負)하는 집착도 제거하지 못하여 수련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크며 또한 장기간 해결되지 못한 것”이 나타났다. 또한 그러한 신들이 사부님의 귀가에 줄곧 말해온 것으로 그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누락이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누가 쇠뿔을 파고들면서 여전히 자신의 집착을 보지 못한다면 바로 마(魔)•사악(邪惡)에게 틈을 탄 것이며 집착이 확대되고 확대되며 커져서 그래서 머릿속으로 자신이 옳다고 느낄수록 자신은 마땅히 어떻다고 느낀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부(自負)의 집착이 확대되고 커져서 “말하기만 하면 곧 폭발하는”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교훈을 총결할 때면 깊은 후회와 사부님께 송구스러움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부님의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중의 엄숙한 가르침을 들은 후 결심을 내려 자신(自信)을 제거하고 바른 믿음을 수련하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잘 걸어야 한다. 이미 반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닦았는가?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자문해보자!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비평과 지적을 바란다!
발표시간:2006년 11월 14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11/14/40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