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잘 원용시킨 체험
작가: 토론토 대법제자
【정견망 2006년 12월 30일】 사부님 안녕하세요! 여러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수련을 시작한 이래 나는 그동안 수련 체득을 써본 적이 없었고 더욱이 자신의 수련 체득을 발언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이것은 수련을 잘하는 동수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느껴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언은 우리의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동수들과 거리가 있고 법의 요구에 너무나 부족하며 또 말을 할 줄도 모르며 말만 하면 부끄러움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나는 출신 성분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 사당(邪黨)의 장기적인 압력 하에서 일종 내성적인 성격을 형성했으며 속인에 비하면 둔한 편이다. 지금 나는 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들과 대면하니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래에 나는 자신이 수련 중에서 일부 체득한 것과 법에 대한 이해를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므로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나는 97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전법륜》 이 귀중한 책을 얻어 단번에 대법의 법리에 매료되었다. 마음이 너무나 격동되었고 확 트였는데 마치 주위의 공기마저도 모두 새롭게 변화되고 호흡마저도 순조로운 것 같았다. 생명이 고통스런 추구 속에서 천만년을 기다려온 대법을 오늘에야 드디어 얻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대법을 늦게 얻은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을 따르며 영원히 고개를 돌리지 않겠습니다.” 매번 《전법륜》에 나오는 “어떤 다른 문파(門派) 중의 각자(覺者)를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곧 한 문(門) 중에서 수련한다. 무슨 불(佛), 무슨 도(道), 무슨 신(神), 무슨 마(魔)이든,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라. 이렇게 하면 꼭 성공할 희망이 있을 것이다.”을 학습할 때면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린다. “안심하십시오, 누구도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당시 나는 구할 수 있는 사부님의 설법을 얻어 모두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반복적으로 보았다. 동수들의 수련 체득에 대해서도 모두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30여 년 동안 줄곧 혈뇨(血尿 역주: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질환)를 앓아왔는데 한약이고 양약을 다 먹어보았지만 병은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많은 병을 얻게 되었다. 온몸 관절이 변형되어 다리를 굽히거나 들 수도 없었다. 몇 걸음만 걸어도 곧 허리가 시큰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그 고생은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으며 할 수 없이 정년을 5년이나 앞당겨 퇴직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책을 들고 반복적으로 공손히 읽을 때면 온몸의 아픔마저도 잊어버렸다. 신체는 매일 매일 변화되었고 20일 후에는 완전히 홀가분해졌다. 대법의 신기(神奇)는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나의 신념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닦기도 하고 연공도 하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매주 한차례씩 있는 법공부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으며 동수들을 만나는 것이 친지를 만나는 것보다 더 반가웠다. 연공장에서 연공할 때도 어떤 동수가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면 마음이 정말로 편치 않았으며 동수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병업(病業)을 없애는 반응을 언급할 때 어떤 사람들은 반응이 매우 컸다. 그러나 나는 온몸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시지 않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사실 나는 사부님께서 파룬(法輪)을 넣어주실 때 느낌이 있었다. 동수들은 모두 깨달으라고 말하는데 나는 오성이 부족해서 어떻게 깨달아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법공부 상황을 생각하면 나는 어째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심지어 《전법륜》에 나오는 큰 제목도 기억하지 못했으며 단지 책에서 여러 곳에 언급한 “진수(眞修)”라는 글자만 기억할 수 있었다.
《전법륜》중에서 말씀하신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를 보고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수련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집착심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바보처럼 보도원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이미 퇴직했고 아무런 추구도 없으며 무엇을 집착하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전법륜》에서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는 단락을 읽고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이것이라면 제가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속인일 때도 누가 나를 욕하면 모두 대꾸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둔한 관계로 어떤 말로 맞받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화가 났다. 법은 나로 하여금 대꾸하지 않고 맞받아치지 않으며 화를 내지 않는 도리를 알게 했다. 그때는 집에 나 혼자뿐이라 이웃 관계도 아주 좋았고 나를 때리고 욕하는 사람이 없어 좀 조급했다. 나는 누가 나를 한바탕 욕하고 때려줘 심성 제고에 도움을 주었으면 했다.
미국에 온 후 처음에는 딸네 집에 있었는데 그곳은 공용 교통수단이 없어서 모두 자가용을 이용해야 했다. 길에 나가도 빠르게 달리는 차량만 있을 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이웃에 한 화인(華人) 가족이 살긴 했지만 직장에 출근했고 나머지는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나는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과 소통할 방법도 없었다. 때문에 모순은 말할 나위도 없었고 심성을 제고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조급해졌고 심성을 제고하지 못할까 두려웠으며 사부님께서 나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실까 두려웠다.
반복적으로 《전법륜》을 학습한 후에 나는 마침내 한 구절을 기억해낼 수 있었고 또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당신은 안으로 수련해야 하며 밖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수련은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데, 心性(씬씽) 수련이라고 한다.” 나중에 나는 또 한 구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각종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부동(不同)한 계층에는 부동한 모순이 존재한다. 높은 계층에는 높은 계층의 모순 형식이 있는 것으로, 모두 모순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으며, 어느 계층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든지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모두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부동한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으며, 자신이 있는 계층 중에서 모두 수련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보아하니 가정이야말로 내가 수련할 환경이구나. 그럼 이 환경 속에서 수련하자!”
가정에는 자질구레한 일이 매우 많았고 나는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구별했다. 무슨 일이든 일단 모두 시험 삼아 해보았고 무릇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다했다. 딸네 집은 잔디밭이 비교적 커서 비료를 주고 풀을 뽑았고 환경을 정리했으며 빨래와 식사를 준비했고 집도 청소했다. 특히 법회나 혹은 대법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는 떠나기 전에 세탁과 청소를 깨끗이 해놓았다. 법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함에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했고 원만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시시각각 이 마음을 지켰다. 나는 자신이 심성을 닦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이웃에 사는 노부부가 모두 출근하는 관계로 매주 한 차례 쓰레기통을 비웠다. 빈 쓰레기통이 길가에 있었는데 바람이 불기만하면 온 거리를 굴러다녔다. 나는 매번 통을 주워다가 그들 차고 앞에 갖다 주었고 통을 거꾸로 뒤집어 비가 내려도 젖지 않게 했다. 또 다른 이웃이 집에 없을 때도 그들을 도와주었다. 이웃에서 잔디밭을 정리하거나 풀을 뽑아야하는데 공구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집에 있는 공구를 가져다주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묵묵히 하자 모두들 기본적으로 아주 화목한 관계가 되었다.
집에는 두 명의 외손주가 있었는데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녔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 다녔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오면 모두 나하고 놀고 싶어 했다. 늘 내 방에 와서 대법서적을 뒤적이며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 나더러 사부님의 법신상을 자기들 방에 가져다달라고 하고는 사부님 앞에 앉아 나더러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작은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해 집에 오기만 하면 텔레비전부터 켰다. 나는 아이가 너무 많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코드를 뽑아버리고는 아이한테 고장 났다고 말했다. 그러자 큰 아이가 말했다. “이것은 진선인(眞善忍)이 아니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법학습을 이렇게 오래했음에도 막 법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만도 못하다니. 보아하니 나는 본성(本性)상에서 우주대법에 동화하지 못했고 그런 나쁜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반영되어 나오자 아이가 나에게 경종을 울려준 것이었다.
사위는 나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사위는 나 대신 연공장을 알아봐 주었다. 친구의 소개로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서 연공장을 찾을 수 있었다. 또 내가 연공하는데 필요한 연공용 녹음기와 발정념 할 때 필요한 시계도 사주었다. 매번 내가 법회나 대법활동에 참가하러 갈 때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비행기 표와 여비, 여행용 물품 등을 잘 준비해준다. 어떤 때는 10시간이 넘게 차를 몰아 나를 배웅해준 적도 있다.
99년 7.20 사악은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카고와 워싱턴에 가야했다. 사위는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나는 대법을 수련한 후에 심신이 건강해졌고 성격도 밝아졌다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거야. 지금 사부님께서 번거로운 일을 당하셨으니 반드시 가야하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박해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선 시카고 영사관으로 찾아갔고 다음 날 워싱턴으로 갔다. 연속 며칠 동안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딸과 사위는 적극적으로 내가 외출할 비용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었다. 그곳에 가서 그렇게 많은 동수들을 보자 마음이 든든해졌고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왔습니다. 제자는 어리석어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 왔고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중에야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는 일체를 순조롭게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딸도 수련의 길로 들어왔다.
2001년 나는 캐나다의 아들 집으로 와서 손녀를 돌봐주고 있다. 손녀가 지금 5살이니 내가 이곳에 온지도 이미 5년이 되었다. 이곳에 와서 나는 동수들의 도움 하에 일부 대법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에 있는 단체법학습에 참가한 후 직접 영사관에 가서 줄곧 사악을 질식시키다가 다음날 새벽 4시에 돌아온다. 이어 오후에는 다시 영사관에 가서 3차례 정각 발정념을 한다. 또 동수들과 함께 공항에 나가 대륙에서 오는 비행기를 맞으며 화인들에게 진상을 알린다. 내게는 오직 이 모든 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일념(一念)만 있을 뿐이다. 아들내외 역시 나를 막지 않았고 또 매우 지지하고 있다. 며느리는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쓴 쪽지를 내 주머니에 넣어주어 혹시라도 내가 길을 잃는 것을 방지해주었으며 또 돈도 넣어주었다. 나는 늘 그들을 위해 생각하며 집안일을 최대한 잘 한다. 대법 일을 하기 위해 외출하기 전이면 다시 잘 확인한 후에야 집을 나선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단속하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며, 남에게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
나는 사부님의 이 말씀을 꼭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며 일에 부딪히면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어떤 때는 집안일을 잘하지 못했으면 가지 않고 억지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내가 비록 대법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집안일 때문에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대법과 대법제자의 자비를 느낄 수 있게 하며 우리는 극단적이 아니고 이지적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나는 법리(法理)에서 지금의 가족들이 금생에는 나의 친인이지만 그들은 또한 사부님의 친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그들은 사부님께서 구도하실 대상이며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 내 기억에 내가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집에 현관 열쇠가 두 개밖에 없었다. 아들 부부는 나에게 하나를 복사해줄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바쁜 와중에 깜빡 잊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법학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침 정오가 조금 지나 있었다. 집은 조용했고 나는 아들 부부가 2시에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아마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밖에 앉아 책을 읽었다. 며느리가 일어나서 나를 보고는 자책하면서, 식사도 못하셨을 텐데 왜 자신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했다. 나는 “너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네가 좀 더 쉴 수 있게 하려는 생각에서다. 나는 밖에서 책을 읽고 있었으니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니란다.” 당시 나는 마음이 몹시 평온했고 또 즐거웠다. 대법이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관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나는 집에서 늘 사부님의 설법을 틀어놓아 그들이 들을 수 있게 했는데 법의 위력은 너무나 컸다. 한번은 며느리가 회사에서 돌아와 내게 말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와 귀찮게 하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녀와 식견을 달리했고 더(德)를 지켜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어떤 때는 아들 내외와 회사에서 부딪힌 일을 가지고 함께 교류하는데 서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잘 대할 것인지 일깨워주곤 한다. 간혹 잘하지 못하면 아들 내외는 상대방에게 “이것은 연공인 답지 않아.”라고 말한다. 온 가족이 다 마음이 열렸고 아이에게도 늘 할머니를 따라 법을 학습하라고 했다. 아이가 법을 학습하는 것도 아주 진지한데 손을 씻고 난 후에 대법서적을 들고는 결가부좌를 하고 매일 법을 학습한다. 손녀는 어른들이 어떤 문제로 논쟁을 벌여 목소리가 커지기라도 하면 얼른 대법 책을 한 권 가져다가는 아무 페이지나 펴고 한 줄 한 줄 손으로 짚어가면서 읽는다. 손녀는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은 논어를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른들에게 말한다. “사부님 말씀에 따라 때리거나 욕하지 말고 우주 대법 眞善忍에 동화되어 사부님의 제자가 됩시다.” 그러면 모두들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있는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노인동수들과 함께 자료를 나눠주고 있다. 전에는 대부분 영문으로 된 자료를 나누어 주었는데 나도 일부 인쇄해서 나눠주었다. 우리 지역에는 화인(華人)이 적지 않은 편이라 “9평”을 널리 전하여 고귀한 중국인들을 구도하는데 이것 역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예전에는 자료가 없는 것이 괴로워 소량씩 사오긴 했지만 자료는 너무나 부족했다. 나중에 토론토에 있는 동수가 우리에게 약간의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우리 이곳 할머니들이 자료를 메거나 가져올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연락인에게 요청해 그의 집에 자료를 받아 놓게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일요일 단체연공을 할 때만 자료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토요일부터 자료를 나눠준다. 그러다보니 지난주에 자료를 많이 가져오면 다 배포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적게 가져오면 또 이번 주에 자료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연락인 역시 몹시 바쁜 까닭에 늘 그에게 번거로운 부탁을 하기도 미안했다.
내가 집에서 이 고민거리를 말하자 며느리가 곧장 말했다. “우리 차로 자료를 가져다가 집에 갖다 놓으세요.” 이리하여 모든 것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료를 배포하기 전에 나는 시간을 내어 CD를 잘 포장해서는 자료를 잘 준비한다. 주로 중국 상점에 가져가서 배포하는데 우리가 있는 곳에는 중국 상점이 4-5곳 정도 있다. 자료를 배포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자료를 여러 곳으로 나눠줘야 했고 필요한 자료의 양도 많아졌다. 몇몇 큰 자료 묶음은 내가 들기가 어려웠다. 아들 내외는 매번 내게 자료를 가져다주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자료를 나눠준다. 그들이 이렇게 도와줄 수 있어서 나 역시 그들을 위해 기쁘다. 지금 며느리는 《전법륜》을 몇 번 읽었고 사부님의 다른 설법도 보았다.
나는 자식들과 있을 때 그들에게 애써 대법이 어떻게 좋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행동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대법제자는 속인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했는데 그들 역시 곧 자연스럽게 대법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깨달은 것은 만약 우리 수련인이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디를 가든 모두 순정(純正)하고 자비하며 상화(祥和)로운 마당이 따라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는 수승(殊勝)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직 법학습을 잘해야만 비로소 우리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았게 되었다. 이에 나는 법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불성무루》중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의 이전의 본성은 자신을 위하고 이기적인 것을 위하는(爲我爲私)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무사무아(無我無私),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성취되도록 하라.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에까지 생각해야 한다! 대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책임이 중대함을 통감하며 후세인들을 위해, 대법의 영세불변을 위해 일상생활의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나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법으로 바로잡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잘 걸어갈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발표시간:2006년 12월 30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12/30/415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