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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념”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

“신의 정념”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

작가 :섬서 대법제자

[정견망 2007年04月22日]《삼계 내에서 정법을 교란하는데 참여한 일체 난잡한 신들을 전면적으로 해체시키자 》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마지막에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대법제자들이 신(神)의 정념으로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나는 “신의 정념”에 대한 한 점의 깨달음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한다.

정념은 곧 대법법리에 부합되는 염두거나 생각이다. 대법제자가 정념이 있고 속인도 가히 정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포는 천지 차이다. 예를 들면 속인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믿으면 곧 정념이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는 것을 믿고 “세가지를 탈퇴” 하여 자기를 구하는 것도 정념이다. 그러나 속인의 정념의 출발점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인은 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무사무아한 것이다.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기 때문에 능히 생명의 승화를 가져온다. 대법제자의 수련과정은 사람이 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수련 중에서 대법제자는 신의 일면도 있고(수련을 잘한 일면)도 사람의 일면도 있다. 신의 일면이 내보낸 정념은 신의 정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태가 신의 상태에 부합되어야만 신의 일면이 비로소 작용을 발휘할 수 있고 신의 정념이 있을 수 있다.

그럼 무엇이 신의 상태인가?내가 깨달은 신의 상태는 곧 자비이고 관용과 무위이다.

자비와 관용은 신의 심태이다. 역시 우리가 “쩐싼런” 법리의 수련과정중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동시에 계속 증가하는 상태이다. 수련의 시작부터 사부님께서는 한 방면은 중생과 제자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와 관용을 우리에게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동시에 설법 중에서 부단히 깨우쳐 주셨다. 자비와 관용의 의의를 인식하고 참답게 심성을 수련하고 집착을 제거하고 자비한 마음과 관용하는 흉금을 수련해내여야 한다고. 그러므로 “자비는 능히 천지의 봄을 오게 할 수 있다”는 이미 우리의 귀에 익은 상서로운 경구이다.”자비로서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한다”,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과 상서로운 심태를 가진다”는 사부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의 좌우명으로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관용과 도량이 클 것을 요구하였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천상의 중신들과 부처님들이 협조하는 일을 토론할때의 심태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어떠한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다”

《대원만법》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이 익숙한 신의 명호로 첫번째의 공법——”포잔첸서우파(佛展千手法)”를 만들었다. 동시에 제일 제5장 공법 중에서 강조하기를 “마음에는 자비가 나오고 얼굴에는 상서롭게 한다.” 이렇게 사부님께서는 매일 우리에게 뭇 신처럼 그러한 자비와 관용을 갖도록 깨우쳐 주신다.

무위는 신의 행위이고 상태이다. 무위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홍음 《도 속에》서 무위에 대하여 완정한 해석을 하셨다.

“마음에 두지 아니하거니 세상과 다툴 것 없노라

보고도 보지 못한 듯하니 미혹되지 않노라

듣고도 듣지 못한 듯하니 마음이 어지럽지 않노라

먹고도 맛을 모르는 듯하니 입맛의 집착을 떼노라

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 늘 도 속에 있노라

조용하나 생각하지 않나니 현묘함을 알 수 있노라 ”

“마음에 두지 아니하거니”, “보고도 보지 못한 듯하니”, “듣고도 듣지 못한 듯하니”, “먹고도 맛을 모르는 듯하니” 이는 칠정육욕 등 집착을 버린 후에 나타나는 수련상태이다;”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는 “일함에 있어서 과정을 제일 중요시”하고 “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의 법리는 신이 사람의 상태를 초월한(사람이 일을 할 때 중요시하는 것은 그 결과이다)중요 상태이다.

“조용하나 생각하지 않나니” 이는 신의 상태에서 제일 도달하기 힘든 상태이다. 수련자는 “수련하여 하나의 집착도 누락이 없는” 경지 때만이 가히 될 수 있다. “조용하나 생각하지 않나니” 여기에 도달하려면 비교적 큰 난도가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신의 일종 중요한 상태이기에 꼭 도달해야한다.

사부님께서는 제5장 공법——”신통가지법”의 연공과정 중에서 우리가 계속적으로 “조용하나 생각하지 않나니”의 수련상태에 있을 것을 요구했다. “가부좌할 때 어떤 의념도 모두 없으며 무엇이든 모두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의 주이스(主意識)가 반드시 똑똑해야 함을 이야기한다”(《대원만법》)그러므로 자비와 관용, 무위 이런 신의 상태가 있어야만 신의 정념을 내보낼 수 있다. 신의 정념이 있어야 우리는 더욱 “세가지” 일을 잘할 수 있고 더욱 사악과 난잡한 신, 공산사령을 잘 제거할 수 있고 더욱 효과적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신의 정념이 있어야만 정확하게 직장 환경과 가정환경을 바르게 안배할 수 있고 동수들과의 관계도 잘 처리할 수 있다. 신의 정념이 있어야 만이 수련 중에서 어떠한 문제에 부딪혀도 자각적으로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견지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한 최후의 길을 잘 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부단히 신의 정념을 가강할 수 있는가?제일 중요한 것은 곧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부단히 법공부하면 곧 부단히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버릴 수 있고 곧 부단히 신의 상태로 전변될 수 있다. 동시에 “법은 정념을 견정히 하고”,그러므로 부단히 법공부하는 과정은 곧 계속적으로 신의 정념을 가강히 하는 과정이다. 우리들은 사부님의 간곡한 타이름을 삼가준수하자:”당신들의 정념(正念), 당신들이 한 일체는 모두 법 중에서 오기 때문에 여러분은 더없이 다망하더라도 법 공부를 홀시해선 안 된다.”(《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에서의 설법》)

개인이 깨달은 것이니 지적하기 바란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pureinsight.org/pi/index.php?news=4530)

발표시간:2007년 4월 22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4/22/433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