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농촌대법제자 소파(蘇婆) 이야기

농촌대법제자 소파(蘇婆) 이야기

작자: 호북대법제자

【정견망 2007년 6월 15일】

소파(蘇婆 소씨 아주머니)는 강한(江漢) 평원(平原) 세 현의 경계에 위치한 한 농촌의 대법제자이다. 나는 2002년 8월 경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그녀는 동수를 만나자 오랜 가뭄에 비를 만난 것처럼 매우 흥분하고 격동되어 나와 서너 시간동안 교류했다. 그녀는 단체 법공부와 교류환경이 없는 농촌에서 어떻게 혼자 법을 실증하고 버텨왔는지 내게 소개해 주었다.

소파 부부는 함께 대법을 수련했다. 1999년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자 두 사람 모두 박해받아 떠돌아 다녔는데 터미널에서 채소를 주워 먹고 살았다. 한번은 남편이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다 잡혔는데 남편은 사악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소파를 불렀다. 소파는 정념으로 악인을 대하며 사악에 협조하지 않고 곧 정념으로 극복했다. 남편은 오히려 사양(沙洋) 노교소로 보내졌다.

소파는 혼자서 가정의 중임을 맡았다.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는 광주(廣州)에 산다. 집에는 90대의 큰 할머니와 70대의 작은 할머니가 있으며 또 30여 마지기의 논이 있는데 게다가 또 친척들의 압력이 있었다. 이것은 일반인에 대해 말하자면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소파는 사부님을 굳게 믿고, 힘껏 가정을 잘 돌보고 땅을 잘 돌보는 동시에 법을 실증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당시 현지 악경이 늘 그녀의 집 부근에서 잠복했기 때문에, 무려 이년 이상 동안 소파는 등불 아래에서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의 경문이 발표되면 그녀는 우선 외웠고 마을의 다른 신 수련생에게 주었다. 나중에 소파의 법공부는 완전히 외우는 것에 의지했다.

그녀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풍찬노숙하며 한천(漢川), 천문(天門), 경산(京山) 세 현의 여러 향진을 다녔는데 사방 50여 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녔다. 소파가 오랫동안 진상을 알렸고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되었고 그곳의 많은 백성들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대법이 좋고 파룬궁이 박해받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소.” 그래서 매번 교란을 받거니 위험한 상황이 나타날 때면 현지 촌장들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파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마난을 겪었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열차에서 진상을 알리다 잡힌 경우이다. 한번은 그녀가 진상 자료를 잔뜩 들고 경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자료를 나누어 주었는데 승객들이 모두 다투어 보았다. 자료를 다 나눠준 후 소파가 기차에 내리려 할 때 악인의 고발로 체포되어 경산 간수소로 끌려갔다. 그녀는 간수소에 들어가자마자 곧 발정념을 했다. 그 때 간수소에는 십여 명의 동수들이 붙잡혀 있었는데 모두들 그녀에게 이곳 경찰들은 매우 흉악하니 발정념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소파는 의연히 가부좌하고 입장했다. 이 때 한 여자 악경이 들어오더니 잔인하게 차고 때리며 입장한 손을 끌어내리려 했다.

소파가 사악에 협조하지 않자 악경은 분노하여 소파가 입장한 손을 두 손으로 잡아 힘껏 당겼는데 “팍” 하는 소리가 나며 악경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소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같이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입장하며 발정념을 했다. 바로 이때 그녀는 악경의 원신(元神)이 자신의 정념에 제어되는 것을 보았고 겉으로는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20여 분이 지난 후 그 악경이 다시 왔는데 사람이 아주 바뀐 것 같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소파 앞에 다가와 소파가 입장한 손을 잡고는 같이 있던 동수들 앞에서 말했다. “이 분이 얼마나 잘하나 보세요. 이것이 바로 파룬궁의 모범이니 그녀를 따라 배우세요.” 동수들은 이 정념의 위력에 놀라 멍해졌다.

이 때부터 악경은 소파에 대해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소파는 간수소에서 무엇을 “단식”이라고 하는지 몰랐으나 저절로 먹지 않았고 물만 마셨다. 얼마 안 있어 또 한 명의 여자 동수가 간수소에 잡혀왔는데 들어오자마자 곧 음식과 물을 끊어 소파도 따라서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그녀가 석방될 때 여자 경찰이 간수소 문 앞에서 우유를 파는 부녀를 찾아와 소파에게 우유한 병을 사주었다. 장기간 단식으로 소파는 매우 마른 모습이었는데 우유 파는 여자는 소파의 눈을 감히 정시하지 못하고 얼굴을 돌리며 우유를 주었다. 여경이 차로 그녀를 데려다 주려고 하자 소파는 “우리 집은 경산 역에 가까우니 그곳까지만 보내주면 됩니다”라고 했다.

소파는 여러 차례 사악의 박해를 받아 여러번 간수소를 들락거렸으므로 어떤 동수는 그녀가 특무라고 여겨 현지 동수들에게 그녀와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신경문과 자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내가 그녀의 집에 갔을 때, 마침 그녀의 남편이 사양 노교소로부터 막 돌아왔는데 아직 청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소파가 자신의 수련 경력을 말할 때 그녀의 그런 심정은 말로는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중에 그녀는 남편을 이끌어 새로 대법 수련에 들어가게 했다.

소파는 2004년 한 차례 병업 중에 구세력의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났는데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해 매우 유감이다.

소파의 이 단락의 경험을 회고하니 나는 마땅히 우리 동수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 도시 대법제자들은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느슨한데 등불아래 혼자 법공부하고 법을 외우며 사부님과 법을 믿는 농촌제자에 비할 때 우리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그 편벽한 지역에 있는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농촌 대법제자 혼자 일대를 장악하며 진상으로 세인을 구도하는데 우리는 구원의 손을 뻗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체적으로 배합하고 낡은 세력이 틈을 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금 정법은 이미 최후단계에 도달했고 중생을 구도할 시간이 매우 긴박하다. 조건이 되는 도시의 동수들은 여러 형식을 이용하여 편지를 부치고 진상이 공백인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수집하고 시골마을을 찾아들어가 농촌의 중생에게 진상을 강화하며 더 많은 세인을 구해야 한다.

(명혜망에서 전재)

발표시간 :2007년 6월 1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6/15/44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