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것: 사람을 구하러 오다
작자: 본래(本來)
【정견망 2009년 3월 7일】 한 가지 꿈이 십년 동안 눈에 역력하다. 그것은 내가 법을 얻은 초기에 꿈에서 본 것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꿈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른다.
꿈속에서 나는 다른 공간의 다락방에 서서 지금의 남편을 보았다. 뒷머리에 상투를 틀었고 두건을 묶었으며 고대 의상을 입고 청산녹수에서 유유한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 무렵 두서너 명의 농부들과 함께 어깨에 괭이를 메고 밭에서 왁자지껄하며 돌아오고 있었다.
그가 다락방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갑자기 그의 앞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식했고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듣지 못했다. 나는 얼른 창문가로 뛰어가서 큰 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그는 듣지 못했고 또 다락방을 돌아 뒤로 사라졌다. 나는 바로 뒤에 위험이 있음을 알고 전력을 다해 고함쳤으나 그는 여전히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당시 처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비록 처음에 다락 뒤편 벽에 세 개의 창문이 전부 얼음에 막혔음을 의식했으나 나는 또 일체를 고려하지 않고 뒷창문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하여 뒷창문이 뜻밖에 얼음이 녹았고 나는 창문을 밀어 열었다.
이때 내 앞에 펼쳐진 장면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는 구름 바다에 떨어졌던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고함쳐 불렀으나 오히려 그는 단번에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으며 매몰되었다. 다만 남은 것은 한편의 빙설천지였으며 세찬 파도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당시 나의 슬픔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고함을 질렀고 연후에 울다 깨어났다. 깨어난 후 비통함에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다른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이 꿈이 다른 공간의 진실한 반영임을 안다. 아니면 어쩌면 바로 우리가 내려온 처음의 마음으로서 바로 친인을 구하러 온 것이던지. 비록 친인이 미혹에 집착하여 깨닫지 못하더라도. 친인이 어떻게 미혹되어 있던지 우리 대법제자는 청성하게 깨어 우리는 반드시 사전의 소원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의 친인을 구출해야 한다.
그 진실한 한 막이 닥칠 때는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두 눈 뻔히 뜨고 주위 친인이 도태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후회해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 헛되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 내려와 윤회전생하며 얼마나 많은 고난과 겪고 가슴을 졸이다가 겨우 금생에 법을 얻어 귀진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게 되었다. 생생세세 윤회 중에 가족이 얼마나 많으며 세려 해도 다 셀 수 없다.
우리 현재 주위의 사람들 우리와 인연이 있는 사람 역시 아마 우리의 한때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구해야 만이 그들이 생명의 신기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아름다운 미래를 누릴 수 있다.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웨이니얼라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천만의 산수를 넘고 넘어 또 한 번 또 한 번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사부님의 안배에 따라 수련의 길을 걸으며 대법에 동화해 자신을 잘 수련한다면 반드시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자신의 자비심을 수련해내어 그들의 집착을 따라 반드시 우리의 친인을 구할 수 있다. 최후의 기연을 놓치면 정말 다시 기회는 없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대궁을 구하노라>를 읽으며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고금에 있어본 적 없고
미래에는 천지가 영구하리라
오래도록 영원할 대창궁을 보고
누가 감히 또다시 아래로 내려갈소냐 ”
발표시간:2009년 3월 7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9/3/7/582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