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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수련경력- 캄보디아 화교

11년의 수련경력- 캄보디아 화교

작자: 미국 서북지역 대법제자

【정견망 2009년 12월 4일】

나는 캄보디아 화교이다. 크메르 루즈의 마수에서 겨우 빠져나와 월남을 거쳐 미국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재앙은 겹쳐서 오는 법. 1998년 또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목뼈를 다쳐 목을 움직일 수 없었고 허리도 아파 출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치료해도 소용이 없어서 기공을 배울 생각을 품었다.

바로 이때 나는 신문에서 “法輪大法”의 소개를 보았고 곧 파룬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연공장을 찾아갔는데 반 달만에 아직 동작도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이 전부 나아버렸다. 목도 아프지 않고 허리도 아프지 않았고 과거에 앓았던 위장병 관절염 등이 모두 나았다. 정상 출근할 수 있으니 나는 이 파룬궁은 너무나 신기하다, 줄곧 연마해나가야겠다 고 생각했다.

나중에 노수련생이 나에게 연공만 할 것이 아니라 법공부를 한다고 알려주어 비로소 《전법륜》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다 본 후 나는 이것은 기공이 아니라 불법수련(佛法修煉)임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고층차로 사람을 이끄시고 계심을, 즉 사람을 제도하시는 것을 알았다. 내가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연분이 적지 않다. 나는 “심성제고”절에서 사부님의 다음 말씀을 보았다.

“한 수련생이 산동(山東) 모모(某某)시(市) 편직물공장에 다녔는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연마(煉)하도록 가르쳐 준 결과,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전법륜》)

나는 내가 과거에 식당의 앞치마를 집에 가져 온 것을 생각하고 법을 배운 후 나는 얼른 식당에 되돌려놓았다. 나는 이 공이 이렇게 좋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심성을 승화시키니 마땅히 더욱 많은 사람에게 소개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법 녹화테이프를 많이 사서 친척과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도록 했다.

수련 이후 나는 매일 연공, 법공부를 견지하며 끊어진 적이 없다. 식당의 일은 매우 바쁜데 어떻게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는가? 나는 곧 수면시간을 줄였다. 원래 8,9시간을 자야 피로를 풀 수 있었는데 수련 후에는 6시간만 자면 족했다. 그래서 나머지 시간을 법공부와 연공에 썼다. 평소에 빈틈이 나면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었다. 이렇게 11년간을 끊이지 않았다.

연공한지 얼마 안 되어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이 공이 얼마나 나쁘다고 하며 나더러 그만 두라고 했으나 나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귀찮게 했으며 시비를 일으켰으며 내게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이 안 된다고 했다. 나 역시 심성을 지키며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사장은 내가 연공 후 정력이 충만하고 착실하게 어떤 일이든 원망하지 않고 하는 것을 보고 나를 주방장으로 승진시켰고 주방 관리를 맡겼다. 어떤 사람들은 질투하여 참지 못하고 각종 거짓말을 지어냈으며 이간질을 했다. 내가 게으르다느니 채소를 볶은 것이 잘못되었다느니 주방장 자격이 없다는 등 온갖 방법을 찾아 사장에게 나를 쫓아내게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심성을 지키며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그들과 따지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2주간 휴가를 갔는데 이 사람들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줄곧 사장에게 나쁜 말을 하고 다른 요리사를 초청해 와야 한다고 꾀었다. 이 사람이 일한지 며칠 안 되었는데 식당의 모두들 이 사람은 안 되겠다고 했다. 사장은 그를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 사람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며 사장에게 계책을 내놓아 또 한사람을 불러왔다. 이때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해주며 사장이 다른 주방장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 길은 사부님이 안배한 것이고 내 것이면 잃지 않을 것이며 내 것이 아니면 다투어도 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주일간의 휴가가 끝난 후 내가 돌아오자 사장이 내 눈이 어떠하냐, 요리를 하는데 잘 보이냐고 물었다.(이것은 나를 내보냈으면 하는 사람들이 사장에게 말한 것이다) 나는 요리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잘 보인다고 했다. 그저 메뉴를 볼 때만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사장은 이 두 번째 사람도 안되겠으며 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나더러 남으라고 했다. 내가 떠나길 고대하던 사람들은 맥이 빠졌다.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선하게 대했다.

1999년 7월 중국에서 강(江) 마두를 두목으로 하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했고 어떤 사람은 내게 파룬궁을 나쁘게 말했다. 나는 캄보디아에 있을 때 까딱하면 공산당에 살해당할 뻔 했으며 공산당의 잔혹성과 살인 본성은 내가 직접 경험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대법을 모함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내 수련의 결심을 흔들 수 없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박해를 알 수 있도록 나는 늘 사이트에서 자료를 다운 받아 인쇄하여 상점에 두어 고객들이 보고 진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외에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호수에 가서 연공하고 홍법한다. 옆에 대법자료를 놓아두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료를 가져가고 어떤 사람은 와서 공을 배운다. 나는 또 친척, 친구, 식당 동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려주고 연꽃, 호신부를 주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 진언을 묵념하라고 한다.

2004년 나는 물건을 보는데 눈이 갈수록 희미해지며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 그것을 상관하지 않았고 소업이라고 생각하고 여전히 출근했다. 퇴근 후 마찬가지로 연공했으나 눈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져서 책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부님의 설법만 들을 수 있었으며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2년을 끌어도 호전되지 않고 갈수록 심해졌다 심지어 출근할 수도 없었고 차를 운전도 못했다.

이때 식구가 병원에 가서 치료하자고 했으나 나는 굳건하게 법과 사부님을 믿으며 병원에 가기를 원치 않았고 안경을 맞추러 갔다. 결과 안경을 처방해주는 의사가 검사 후에 말했다. “눈 아래 혈관이 파열되어 이미 심해졌습니다. 시간을 이렇게 길게 끌었으니 잘해봐야 한쪽 눈만 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레이저 치료를 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나는 수련인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생각하며 동수들의 도움과 법공부를 통해 안으로 찾았다. 나는 자기가 법리에 똑똑하지 못하여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그것을 업력이라고 여기며 줄곧 감당하려고만 했지 정념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제거하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았다.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정진요지》〈도법〉)

이 법리를 안후 발정념을 가강하여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를 제거했다. 4개월의 시간이 지나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시력은 정상을 회복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차례의 교훈은 나로 하여금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동시에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함을 알게 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고 철저히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한다. 정법 최후의 시기에 더욱 잘해야 하고 현재는 법공부, 연공할 때 늘 교란이 있다. 특히 색마의 교란을 나는 발정념으로 더욱 잘 제거하고 배척하며 견정불이하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 서부지역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발표시간: 2009년 12월 4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2/4/62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