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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향기

기억 속의 향기

작자:청하(清荷)

【정견망】 7.20 인류는 이 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99년 이 날 강택민 집단과 중공사당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펼쳤다. 박해는 이미 11년이 되었고 중공의 예상과는 달리 11년의 비바람을 겪어냈으며 대법제자들의 의지는 금강처럼 굳건하다.

2000년 7월 20일 나는 북경 천안문 광장에 가서 연공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신앙을 위해 선택한 바른 길이었다. 기차를 타고 경계가 삼엄한 북경에 도착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천안문 광장에 걸어가니 주위에 몇 대의 경찰차가 정차해 있었지만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가보니 광장 중앙에 두 동수가 뜨거운 태양 아래 연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가며 그들 행렬에 들어가려 했다. 우리는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다.

이때 한 대의 경찰차가 가부좌 하고 있는 동수를 향해 질주해왔고 차에서 몇 명의 키 큰 경찰 (녹색제복을 입은 경찰이-그때는 아직 검은 색이 아니었다) 다짜고짜로 두 명의 동수를 잡아 차에 실었다.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경찰 앞에 다가갔다. “그들을 잡지 마시오.”

차 위의 경찰이 나를 보며 말했다. “파룬궁이야!”

“파룬궁이 뭐가 나빠요?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당신도 분명 파룬궁을 연마하는게 틀림없어.” 하면서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차에는 이미 몇 명의 동수들이 있었는데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우리는 속으로 탄연했다.

천안문 파출소에 있을 때 A시의 주재소에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A시에서 온 경찰은 우리를 잡아 A시 간수소로 보내려 했다. 그때 사당의 박해가 막 1년이 되어 강씨 집단은 아직 백성의 세금으로 감옥을 미처 다 짓지 못해서 간수소의 케케묵은 낡은 집에 아직 전자 감응 시설이 없었다. 나는 널빤지 벽으로 된 시커먼 집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이미 나와 같이 잡혀온 젊은 대법수련자 6명이 갇혀 있었다. 그들 역시 북경에 호법하러 왔다가 불법으로 이곳에 붙잡혀온 것이다. 비록 전에 알지 못하던 사이였지만 우리는 친자매 같았다. 우리는 함께 사부님의 시, 경문을 외우며 연공했다. 감옥의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잘 지냈으므로 그들은 우리가 억울하다고 생각하여 우리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연공하는데 경찰이 창문으로 엿보고 큰 소리로 저지했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은 기세 흉흉하게 수갑을 들고 우리를 채우러 들어왔다. 그가 한 동수에게 수갑을 채울 때 우리는 다 함께 그 동수를 잡아 당겨 채우지 못하게 했다. 경찰은 기겁하여 감옥의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누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또 많은 경찰이 들어와서 흉흉하게 우리 손발에 수갑을 강제로 채웠다. 그들은 우리의 두 손을 등 뒤로 하게하고 두 사람의 발을 교차시켜 함께 채웠는데 밤낮으로 이렇게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의 마음에 불법이 가득 차 있는데 어찌 겁을 먹게 하겠는가. 우리는 형사범들에게 당신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음식 기거는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비록 두 손이 뒤로 묶여있지만 우리는 늘 교묘하게 서로 얼굴을 씻겨주고 밥을 먹여주고 화장실을 가고 양치질했다. 발에는 몇십 근의 무거운 족쇄가 묶여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걸으며 상대의 발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감옥 안의 사람들은 우리가 마난 중에 서로 이같이 아껴주고 관심을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심지어 그녀들은 우리 옷을 빠는 것을 도와주었다. 처음에 손을 뒤로 묶인 채 잠을 자는데 옆으로 눕던 뒤로 눕던 괴로웠는데 우리는 잘 지나갔고 나중에는 괴롭지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는 단체 단식으로 간수소에게 항의했다. <전법륜>을 본적이 있는 어느 여경이 씻으라고 수갑과 족쇄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날 밤 우리는 어쩐지 잠이 들지 못하고 일어나 신통가지법을 연마했다. 감시하던 경찰이 창문에서 보고 나를 제지했는데 내가 꿈쩍도 않자, 감호실의 당직 잡범을 시켜 나를 막으라고 했다. 잡범이 한마디 했다. “움직이지 마시오.”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가버렸다.

다음날 오전 그 경찰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연마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전히 연마하는군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정공을 연마하려면 한 시간 해야 됩니다. 당신이 고함을 지를 때 나는 막 연마를 시작했거든요.” 경찰은 고개를 숙이고 탁자를 보며 아무 말도 않고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매일 여전히 연공했다. 한달 후 우리는 잇달아 간수소를 나왔다.

그때는 연락처을 남겨놓지 않았기에 간수소에서 나온 후 고생을 같이 한 동수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십년이 지나 지난 일을 생각하니 동수들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아직도 뚜렷하다. 비록 소식이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발표시간 : 2010년 7월 19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7/19/673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