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천공 – 몽고의 서역 정벌
작자/소천 (小天 )
[정견망] 대법제자가 정법의 홍전을 위해 문화 기초를 다지는 역사 중에, 당신도 있고 그도 있는데, 나도 남겨놓은 사적이 있다. 대략 800여 년 전 나는 몽고 초원에서 태어났다. 그 일생에서 나의 부친은 테무진이었고, 모친은 보아테였다.
부친은 여러 해의 노력 끝에, 뛰어난 용기와 지혜로 몽고의 각 부족을 통일했다. 몽고의 각 씨족들은 다 같이 부친을 “칸” 이라는 왕으로 추천하여 모셨고, “징기스칸”이라고 불렀다. 몽고의 고대어에서 징기스칸이란 철의 성질-단단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부친과 함께 지냈던 기억이 나는데, 부친은 늘 부족 간의 일과 금나라 서하 등 각 나라들과 관계된 일로 몹시 바빴다.
나는 늘 작은 말을 타고 세 형과 함께 활쏘기, 씨름 등을 하며 심신을 단련했다. 몽고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활쏘기를 하는 연습을 하는데, 그것은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본이었다. 세 명의 형 중 큰형 “수치” 는 나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겉으로는 매우 냉담했으나, 속으로는 순박하고 열정이 있었다. 황금빛의 가을이면 수확의 계절인데, 나는 형들을 따라 늘 사냥을 나갔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커다란 회색 이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이리의 자세가 매우 오만하게 보여, 형들은 무작정 화살을 쏘아 그 늙은 이리의 귀를 명중시켜 상하게 했다.
화살을 맞은 늑대는 땅에 구르며 흉악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더니, 앞다리를 땅에 꿇은 채 낑낑대며 비참하게 울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쏴-악 하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6-7 마리의 이리떼가 뛰쳐나왔다. 둘째 형과 셋째 형은 이리떼의 형세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을 갔다.
나는 큰 형 옆에서 소리쳤다. “큰 형, 빨리 도망가요.” 큰 형이 말했다. “염려마라, 내 말을 잘 들어, 활을 들어 화살을 먹이고, 쏴.” 나는 힘이 부족하여 명중시키지 못했으나, 큰 형은 한 마리를 맞추었다. 나의 둘째 화살이 한 마리를 맞혔고, 큰 형은 또 한 마리를 죽였다. 나머지 이리는 놀라서 멀리 도망갔다.
영지로 돌아오니 모친이 이 일을 알고 나를 품에 안고 한참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큰 형은 그저 옆에서 미소만 지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모친은 매우 선량한 사람으로서 그녀가 아는 사람을 모두 관심을 갖고 돌본다. 그녀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다. 그녀의 대법에 대한 견정한 정념은 사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동수를 위해 이기심 없이 묵묵히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이 보았다.
부친 징기스칸은 인류역사상 가장 영향이 큰 위인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몽고대국을 건설했다.
나는 17세 이후 늘 부친을 따라 정벌을 다녔다. 적진을 공략하기 전에 부친은 언제나 나에게 전쟁에 관한 문제를 묻곤 했는데, 내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바로 잡아주거나 보충해 주었다. 점차 나는 전쟁에 대해 비교적 깊이 알게 되었다.
한번은 부왕이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를 취하는지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충분한 물질 보장이 있고 양식, 장비, 인원 또 적군의 공방의 중점을 잘 탐지한 다음, 아 군의 가장 강한 부대로서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하면 됩니다.”
부친은 먼 곳을 바라보며 낮게 읊조리더니 말했다. “너는 일부만 맞게 말했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견강한 의지,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 말이다. 하늘의 뜻을 따라서 행하면 신과 부처의 가호가 있다.” 이 당시 몽고는, 부친 칸이 다년 간 부단히 대내외의 정책을 개선함으로 말미암아 국력이 대폭 증강되었으며, 앞뒤로 금나라를 네 차례나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며, 서하를 정복하여 신하의 나라로 삼았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호 통상 사신을 보내어 각국과 교류를 했는데, 중앙아시아 각국과도 무역 왕래가 있었다.
그러나 11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화치지모”(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간 부근에 있던 나라 : 역주)가 끊임없이 사단을 일으켜 몽고의 사신과 상인을 마음대로 살육하여 전국을 놀라게 했다. 부친은 이 배신 국가들을 정벌하기로 결정했다. 전쟁을 하기 전에 대군은 충분한 준비를 했는데, 부친은 장인들에게 많은 화포와 투석기, 사다리 등을 만들게 했으며, 동시에 주도면밀한 정벌계획을 세웠다. 모든 몽고병사에게 3, 4 마리씩의 말을 가져가게 했으며, 특히 암 말을 많이 데려가서 유사시에 젖을 식량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병기와 호신용 중에는 수십 근이나 나가는 굽은 칼이나 도끼도 있었다.
몽고군은 야전에서 적을 섬멸하는데 매우 능했다. 백분의 사십의 병력은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였는데, 사병의 몸과 말은 모두 생가죽으로 덮어 보호하여 일반 화살로는 뚫기 어려웠다. 백분의 육십의 병력은 가벼운 기병으로서 측면 날개에서 포위하여 적의 퇴로를 끊는 일을 책임졌고, 주요 무기는 활, 굽은 칼, 올가미, 철추 등이었다.
서기 1,200 년의 초여름, 맹세하는 성대한 대회를 치르고 나서, 17만 몽고대군은 화치지모국의 정벌을 시작했다. 몽고대군의 충분한 준비, 적당한 전술과 사병의 강력한 용맹한 전투력은 가는 곳마다 휩쓸었고, 적군은 소문만 들어도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적군이 파멸하여 도망치는 중에 그 나라의 국왕이 병사했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젊은 왕은 잔병을 이끌고 최후의 완강한 저항을 계획했다. 최종 남은 3-4만의 적군은 조수처럼 밀려드는 몽고대군에 의해 신하강(지금의 파키스탄 부근의 인더스강 : 역자 주) 강변에 포위되었다.
부왕이 명령을 내리자 몇 시진도 안 되어 적군은 이미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젊은 왕은 전황이 이미 그르친 것을 보고 싸울 마음이 없어서 말을 끌고 강물에 뛰어들어 반대편 해안으로 도망쳤다. 부왕은 그를 산채로 잡으라고 명령하였고, 주위의 군사는 화살을 쏘지 않았는데 도망치던 적군들은 대부분 강물에 빠져죽었다. 화치지모국의 젊은 왕은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이름이 “차란딩”이라고 했다. 그는 금생에 모모당의 주석을 맡고 있다. 십년의 서역정벌을 거쳐 몽고대군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부왕의 서역정벌은, 이국에서의 작전으로 길이 멀고, 전술도 참신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규모 또한 엄청나게 큰 것 등으로 인해 세계의 전쟁사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큰 형의 아들은 전쟁 중에 전사했다. 나의 아들 홀필렬(쿠빌라이)과 욱혈울은 부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각자 사냥해서 잡은 토끼와 새끼 사슴을 부왕에게 바쳤다. 우리 네 형제는 전공을 세웠기에 부왕은 봉지(封地)를 나누어 주었는데, 나의 봉지는 몽고 본토가 되었다.
문장발표 : 2006년 6월 20일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6/20/381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