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 선용 (善勇 )
[정견망]
1. 상편
청장고원에는 신성한 산과 성스러운 호수가 있다. 강인파제는 세계가 공인하는 신비로운 산으로, 티베트의 불교, 인도의 힌두교, 티베트 원시 종교 등 모두는 그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다. 당나라 정원연간 아루장포강(江) 유역에서 일어난 토번왕조의 군주인 송찬간포왕은, 대당의 변경을 침범한 후 편지를 써서 죄를 청하며 아울러 구혼을 했다. 당나라와 대대로 잘 수교하자는 것이었다.
당태종은 변방을 안정시키고 한족과 토번족 두 민족이 전쟁으로 도탄에 빠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고귀하고 단아한 사촌누이 이안아를 문성공주(文成公主)로 봉하고 토번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문성공주는 떠나기 전, 황궁에서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을 올렸다.
태종이 말했다. ” 문성공주, 네가 이번에 토번으로 가는 길은 멀고 힘들다. 대당의 공주로서 토번으로 시집가는 것은 마땅히 양국의 수교를 위하고, 당나라의 인문 지식을 널리 펴며, 오랑캐를 교화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이익을 위한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당나라와 토번 백성의 행복에 두어야 한다. 나는 강화왕 등 몇 명을 네가 토번에 가는데 호송하게 하겠다. 혹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도록 하라.”
문성공주는 그저 황은에 감읍할 따름이었다.
문성공주가 화친을 위해 티베트에 들어갈 때 따르는 대오는 매우 방대하였으며, 당나라 천자가 시집보내며 내린 혼례 품들이라 물건들은 더욱 진귀하고 풍부했다. 그중에는 석가모니 금불상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라싸의 대소사(大昭寺)에 모셔져 있다. 문성공주를 수행한 사람은, 노복 외에도 한 무리의 당나라 문사, 악사, 농업기술자, 건축가, 장인 등도 딸려서 함께 티베트로 들어갔다. 문성공주는 몇 개월간 산 넘고 물 건너는 힘든 여정 끝에 청해성 경내 황하의 발원지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오래 기다린 토번 왕 송찬간포와 만났다. 토번왕은 문성공주의 단정하고 고아한 모습에 감탄하여 도읍지인 라싸에서 성대한 혼례를 올렸다.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모두 즐거운 날을 보냈다.
혼례가 끝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성공주는 토번왕의 일상 기거생활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스스로 당나라 음식을 요리하고 당나라 옷을 만들어 올렸다. 토번왕은 공주가 만든 정교한 음식과 몸에 딱 맞는 의복을 입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워하며, 더욱 더 당나라에서 온 공주를 아꼈다. 문성공주는 이런 토번왕을 극진히 대하며, 그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조정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공주는 늘 비파로 당나라 음악을 연주했고, 중원의 이야기를 해주어 토번왕으로 하여금 당나라 문화를 연민하도록 했다.
문성공주는 자기의 지식과 견해로 토번의 민정을 세심하게 살폈으며, 각종 합리적인 건의를 하여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협조를 했다. 특히 토번왕이 국가 운명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문성공주가 국가에 부합된 건의를 하여, 토번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주 유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문성공주는 토본왕의 신임과 신뢰를 얻었지만, 공주는 자신의 명예나 지위는 구하지 않았고 여전히 신민을 선하게 대했다. 토번 왕조의 대신들로부터 보편적인 칭찬을 받았으며, 토번 민족이 더욱 큰 이익을 얻게끔 했다.
문성공주의 아름다움과 지혜로운 자태에, 토번왕의 첫 번째 부인 대비가 강한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많은 돈으로 무당을 불러 공주를 위해하려 했다. 그러나 공주의 정기는 늠름하고 자비로워 신령의 보우를 받았다. 대비는 공주를 상하게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오히려 신의 징벌을 받았다. 갑자기 괴상한 질병에 걸렸는데, 대낮에 늘 주위에서 귀신을 보며,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날마다 쇠약해져, 나중에는 호흡도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문성공주가 이 사정을 알고는 자신을 따라 토번으로 들어온 당나라 의원에게 대비의 병에 대해 물었다. 의원이 말했다. “이 병은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공주가 물었다. “무슨 약입니까?” 의원은 난색을 표하더니, 공주가 재촉하자, 마지못해 말을 했다. “금지옥체의 피를 약으로 삼아야 합니다.” 공주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뜬지 얼마 안 되어 한 그릇의 피를 받아가지고 왔다.
“내가 공주로서 금지옥엽의 몸 이니 내 몸의 피를 약으로 쓰시오!” 대비는 이로 인해 질병이 빨리 나았고, 그녀가 병이 나은 원인과, 전후사정을 알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문성공주에게 달려가 죄를 청했다. 공주가 말했다. “당신은 나의 언니이니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합니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대비는 감격하여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공주가 토번에 거주한 이래, 토번왕은 공주가 고원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공주에게 비녀 두 명을 내려주었었다. 그중 한명이, 부친이 중병에 들었으나 돈이 없어 부친의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공주의 황금장식 하나를 훔쳐 부친의 병을 고치려 했다. 나중에 이 일이 들통이 나고 말았다. 토번왕조의 법에 따르면 주인의 귀중품을 훔친 노예는 혹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공주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노비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며, 더하여 의원을 보내 부친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이 두 가지 일은 티베트 민간에 널리 유전되고 있다.
공주는 몇 달에 한 번씩 늘 토번의 민간에 출행하여, 그들의 고통을 살피며 이해하고 생활에 관심을 가지며, 무사무아하게 그들을 도와주었다. 공주의 고상한 품격으로 인해 백성들은 이런 공주를 선녀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나라에는 오래된 관습이 있었다. 만약 부모가 늙어 노동력을 상실하면, 늙은 부모를 들판에 버려 저절로 죽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었다. 공주는 이런 일을 알고 나서 생각 끝에, 토번왕에게 간언했다. “찬보(대왕을 부르는 말), 우리나라는 무엇으로 나라를 세웠지요?”
“불법(佛法)이지.”
“그럼 무엇 때문에 부모를 들판에 버리고 돌보지 않는 그런 일을 합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풍습은 옛날부터 있어왔고, 생사윤회가 있으니, 사람이 죽으면 마땅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공주가 말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인데, 부모에 효성하지 않고 부모를 버리는 것은 금수와 뭐가 다릅니까? 신과 부처는 만물을 창조했는데, 만물은 법도가 있으며 순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일체는 하늘의 이치 속에 있습니다. 천리를 거역하면, 작아도 한 사람이 망하고, 크면 국가가 망합니다. 고금에 이 같은 무수한 사례가 있습니다.”
“임금은 신하에게 기강이 있어야 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강이 있어야 하며… 이것을 인륜이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장차 반드시 하늘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이런 나라는 천의를 위배하는 것이니 얼마 못갈 것입니다.”
“그러니 찬보께서는 재삼 생각하시어, 이런 악습을 고쳐주옵소서. 위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아래로 백성을 돌보면 우리왕조가 만대에 전할 것입니다.”
왕은 깊이 침묵하더니 말했다. “공주의 말이 매우 옳소. 내 즉시 법령을 반포하여, 집안의 어른이 편안한 만년을 누리도록 자손들이 모시게 하겠소.”
이로 말미암아 공주는 불법의 바른 이치로 많은 사람을 구하고 백성의 사랑을 받았다. 문성공주와 함께 티베트에 들어간 장인, 설계사 들은 대소사를 지었고, 농업기술자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종자를 심으며 양잠과 방직을 가르쳤다. 이런 기능은 티베트 백성의 생활을 크게 증대시켰다. 왕은 공주의 건의를 받아들여 귀족자제를 당나라에 관리로 보내었으며 당나라 장안에 들어가 문화를 배워왔다. 문성공주가 토번에 들어온 40년간 해낸 일체 노력은 토번의 경제, 문화, 정치, 군사 등 극대한 상승을 가져왔으며, 토번이 대당의 중대한 변방국가로 성장하게 했다.
문성공주가 토번에 들어온 후 왕조 백성의 생활이 크게 향상되었고, 왕조의 사회의 진보를 이루었고, 당나라의 국경을 공고히 했다. 토번 백성들은 공주를 신으로 모시다시피 했다. 문성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백성들은 청해시, 라싸시 등 많은 곳에 절을 지어 추앙했으며 지금까지 향을 올리고 있다.
2. 하편
중국 오천년 한바탕 역사의 큰 연극은 중원의 무대에서 연달아 막을 내렸다. 극중 인물은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살기도 죽기도 했는데, 모두 역사의 연기를 따라 바람같이 흩어졌다.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들어간 지 1,300 년 후의 오늘, 법륜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져 역사상 저명했던 많은 인물들이 대법제자가 되었다. 한 번 인연이 공교로와 우연히 홍련(가명)이라는 동수를 만나 교류할 때, 홍련의 사존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걸어 지나온 수련의 역정을 보고 나는 깊이 감동했다.
홍련은 2000년 7월 27일 법을 얻었는데, 같은 해 9월 29일 민중을 향해 면대면 대법진상을 시작하고 자료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홍련은 동수에게 자기는 마땅히 호법하러 북경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은, 자기는 법을 너무 늦게 얻었으므로 잘못하면 대법에 먹칠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하자, 동수가 그런 당신은 마음이 매우 순정하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사부님이 도우실거야.” 홍련은 결심을 하고 네 명의 동수와 함께 2000년 12월 1일 오전 천안문에서 현수막을 펴고 대법을 실증했고, 나중에 불법으로 북경 조양간수소에 감금됐다. 그 기간 그녀는 동수를 이끌고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악경(사악한 경찰)은 여자형사범을 시켜 그녀들을 때리게 했다.
그녀는 동수를 보호하기 위해 몇 명 형사범에게 말했다. “내가 사람들을 이끌어 단식을 시작한 것이니, 그녀들을 때리지 말고 나를 때리시오!” 어느 형사범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때리지 않고 바로 그녀들을 때리겠소.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소.”라고 말을 하며 네 명의 형사범들은 끊임없이 한 동수의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상황이 급해지자 홍련은 가장 사악한 형사범을 불렀다. 그녀에게 선악의 도리와 대법진상을 말해주었다. 그 여자는 듣고 나서 고함을 질렀다. “홍련의 체면을 봐서 때리지 마시오!” 이렇게 이 한바탕의 박해는 멈추었다. 기타 환경 중에도 홍련은 동수를 보호했는데, 이런 예가 여러 번 있었다. 마침내 홍련은 단식으로 인해 사악에게 음식물을 강제주입 당하는 등 온갖 혹형 속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줄곧 대법 진상을 말하며, 정념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수고 정정당당하게 마의 굴을 벗어났다.
2001년 10월 사악의 신고로 집 수색을 당하고 직장을 잃었으며,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외지에서 대법을 삽입방송 하는 일에 참여하여 효과가 좋았다. 불행히도 동수가 말을 신중히 하지 못한 탓에 종적이 밝혀져, 악경들이 홍련의 숙소로 급습해 들어왔다. 어느 한 동수는 두려운 마음에 자기 혼자 도망나간 후 단 하나 밖에 없는 출구를 막아버려, 홍련이 도망갈 수 없게 만들었다. 홍련의 마음은 매우 무거워졌다. 그러나 순간 홍련은 대법의 법리로 심태를 조정하여 몸을 돌려 정면으로 체포하려는 악경들을 대면했다. 결국 악경에게 납치되어 불법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사악한 간수소에 강금됐다. 그 소굴은 대법제자를 백퍼센트 전향시킨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그곳에서 잔혹하게 대법제자를 박해한 악행은 인터넷에 여러 번 폭로된 적이 있었다.
악경이 심문하기 전 홍련은 강대한 일념을 내보냈다. “사악이 나에게 전향이란 말을 하지 못 하게 하자.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야 한다.” 연속된 심문 중에서 홍련은 원한의 마음 없이, 오직 자비로운 마음으로 경찰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주었다. 모든 악경들은 조용히 대법의 진상을 듣고 있었다. 매번 심문 때마다 대법진상으로 끝이 났다. 그 후 그곳 간수소에서 홍련의 고향 소재지 공안에게 연락하여, 소재지 공안 세 명의 악경에 의해 소재지로 이송됐다. 홍련은 소재지로 이송된 후 여러 날 단식을 하였다. 홍련을 굴복시키려다 실패하자, 악경이 말했다. “이 사람은 신분이 불분명하며, 우리는 책임지지 않고 상관 않겠다.” 그리고는 그곳 고향지역 경찰은 홍련을 되돌려 보냈다. 홍련은 며칠 굶었지만 여전히 자비롭게 만나는 사람마다 대법의 진상을 이야기 했다.
다음 날 하오 구류소의 악경이 홍련에게만 대고 한마디 했다. “가-보시오.” 이렇게 하여 홍련은 9일 만에 무조건 석방되었다. 그러나 홍련과 동시에 악경에게 체포된 동수는 10년 이상의 형을 판결 받았으며, 최고 긴 사람은 18년까지 되었다. 당시는 2002년 7월 30일 홍련이 법을 얻은 지 겨우 2년이 되는 시간이었다.
2004년 4월 홍련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생구도를 위해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를 돌파하고, 홍련은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 진상을 말하는 수련의 역정을 시작했다. 4개월 기간 해이하지 않게 진상을 했고 부단히 자신을 바로잡아, 원래 있던 직장의 최고위층 대다수와 홍련주위의 동료들이 대법의 진상을 알았다. 홍련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고, 떠돌아다닌 기간의 일체 월급도 지급 받았다. 또 직장에서 박해받은 다른 동수들의 월급까지도 모두 받아다 주었다.
홍련은 늘 신변동수의 가정환경을 돕고 수련환경을 개창한다. 한 번은 주변의 동수가, 평소에 일하면서 이지적이지 못하고, 가정환경을 잘 원용하지 못하는 태도였는데, 이로 인해 그의 가족들이 대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대법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홍련은 이 사실을 알고 즉시 동수와 그 가족들을 음식점에 함께 불러내, 동수 가족의 대법에 대한 오해를 풀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했다.
동수의 가족이 홍련에게 말했다. “당신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 이예요? 집안일을 잘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말도 착하지 못하며 주절주절 하는가요?” 홍련은 상화롭게 말했다. “수련인은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확실히 잘 수련하지 못한 점도 있으니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선타후아 하고 무사무아 하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잘못해도 나중에 잘할 거예요. 우리는 부단히 자신을 고치고 있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대법에 따라서 하기만 하면 반드시 당신들이 만족할 겁니다.”
홍련의 단정하고 선량하며 예의 있는 언행은 그 가족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녀의 정념은 동수 가족이 대법에 대한 나쁜 생각을 바꾸었다.
홍련은 생활 중에서 정념 정행이 없는 곳이 없다. 옷을 입는 것으로부터 사물을 대하는 태도, 생활 습관, 일하는 습관 모두 주위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녀의 선량함과 자비는 대법의 견정함으로 주위 동수를 격려한다.
홍련의 그 찬란한 미소를 보면 마치 1,300 년 전의 문성공주를 보는 것 같다. 새벽녘에 묵묵히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소녀. 그녀는 바로 고원 위에 핀 설련과 같이 조용히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 일각의 신성함, 영원한 역사의 순간은 변함없이 내 기억 속에 응고되어 있으리라.
문장발표 : 2010년 9월 14일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9/14/685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