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를 학습한 심득
작자: 무사(無思)
[정견망]
협력이 필요한 일은 반드시 잘 협력해야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당신은 아무튼 어쨌든지 간에 대법 일을 내가 했다고 느끼는데, 사실은 아니며, 당신은 단지 형식에만 치우쳤을 뿐이지, 마땅히 구해야 할 그런 사람을 구도하지 못했고, 여러분이 공동으로 협력해서 작용을 일으켜야 하는 그 일에서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절대 이렇게 하지 말고,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며, 진정으로 대법제자답게, 대법제자가 문제를 보는 각도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서로 협력해야만, 비로소 잘할 수 있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깨닫게 됐다. 협력할 필요가 있는 일은 반드시 잘 협력하여 정체적인 힘을 합쳐야만 마땅히 있어야 할 작용을 진정으로 일으킬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잘 협력하지 않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일을 잘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농구를 하는 것과도 같이 장내에는 다섯 사람만 필요한데. 파워포워드, 포인트가드가 있고, 팀을 조직하는 스몰포워드도 있다. 한 사람이 적어도 할 수 있지만 이기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정법 중에서 일체는 모두 아주 세밀하게 안배됐는데 당신이 무엇을 하며, 어느 곳에서 작용을 일 것이 필요한 지는 사실 모두 안배가 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럿이 협력해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을 그 중의 매 한 사람마다 우선 먼저 가서 전심전력으로 잘해야 한다. 또 농구로 비유한다면, 당신은 5명 중의 한 사람이므로 당신은 탈퇴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바둑을 잘한다면서 농구를 하지 않고 바둑을 하겠다고 한다. 아무튼 나도 이 일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건 “형식에 치우친 것 뿐”이지 자신이 마땅히 일으켜야 할 작용을 일지 못한 것이며, 아마 전체 일을 다 망가뜨릴 수도 있다. 단체 발정념과 마찬가지로 어떤 수련생은 내내 중시를 일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 한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여기는데 그건 너무 거리가 먼 것이다.
참여만 하는 것은 너무도 부족하다. 당신이 시합에 나가서 힘을 내지 않는다면 그건 형식에 치우친 것이다. 여럿은 또 힘을 한 곳에 모으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더욱이는 일의 인식에서 법의 요구에 부합돼야 하고 하는 일의 요구에 부합돼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대륙에서 단체로 협력하여 수련생을 구출하는데 성공한 사례들이 매우 많고, 실패한 사례도 매우 많다. 성공과 실패의 배후에는 사실 모두 원인이 있는 것으로 관건은 바로 협력의 질에 있다. 박해 당한 수련생에게 정념이 있는가, 정념이 강한가, 이는 협력 가운데서 지극히 관건적인 부분이다. 참여에 필요한 수련생이 전체적으로 에누리 없이 참여했는가, 수수방관하는 사람이 없는가, 또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관념과 인식을 귀정했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참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슨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참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수련생을 책망하거나, 참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쟁론이 그치지 않는다면 그건 내부손실로서 정념의 발휘를 크게 교란할 것이며, 심지어 그 일이 실패하게 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발산한 이러한 것들은 전 세계에서 끈적끈적한 것으로 형성되어, 아주 적은 사악이라도 당신들을 교란할 수 있는데, 그러나 당신들은 오히려 청리하지 못하며, 직접 대법제자의 매표와 진정하게 발정념하는 대법제자를 가로막고, 청리할 수가 없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교훈은 심각한 것이다. 오늘에 와서 사악한 생명, 사악한 요소는 정말로 아주 적은데 그럼 왜 어떤 곳의 박해는 여전히 창궐하고, 어떤 곳은 중생구도 국면이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는가. 관건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수련생 사이의 협력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분명하지 못하여 어떤 일은 자신이 참여해도 참여하지 않아도 다 되며, 오직 세 가지 일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튼 어쨌든지 간에 대법 일을 내가 했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님 최신 설법 공부를 통해 나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아울러 참답게 잘해야 하며, 특히 관념상에서 철저히 귀정해야지 내 마음대로 하거나, 독단 협객이 되거나, 속인의 사상, 생각으로 문제를 보거나 처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한 점을 해내려면 법공부를 잘하는데 관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을 가지고 사람을 구하며 중생구도 할 것인가
이렇게 여러 해가 되도록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는 것과 3퇴를 권하는데 대해 아직도 매우 마비돼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관건적인 때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장래에 알게 되면, 당신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의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 가지 일이 되는데,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가령 우리가 그래도 여전히 마비돼 간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 가지 일”일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법은 진행 순서가 있는 것으로 각 진행과정에 구도해야 하고 구도할 수 있는 중생을 부동하게 배치했다. 이는, 생명이 구원받아야 할 때 구원받지 못하면 아마 영원히 구원될 기연을 잃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그 구원될 기연은 바로 당신의 몇 마디 말이거나 소책자 한 권, 전화 한 통일 수도 있으니, 일단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로 이 사람 그리고 그의 배후의 무량한 중생을 훼멸하게 될 것이다. 기회는 영원히 있는 게 아니며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기회는 희소할 수도 있다.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어서는 매우 부족한 것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법공부를 잘하여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한 그 일이 만약 법에 있지 않다면, 만약 법의 힘이 없다면, 당신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기에, 당신은 그 일을 잘하지 못한다. 아마 그 일을 당신이 했을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악의 요소를 해체하는 데 당신 역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는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늘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진상도 분명히 알려 주었지만 그(그녀)는 태도 표시를 하지 않는다. 구할 수 없고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그런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주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그 때 아마 법에 있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사람의 사상으로 일을 했으므로 법의 역량과 위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모두 명백한 일면이 있는데, 우리가 법에 있지 않으니 그의 명백한 일면을 건드리지 못한 것이며, 단지 사람이 사람에게 말한 것뿐이므로 그럼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누구의 배후나 모두 무량한 중생과 연계되어 있고, 모두 심지어 아주 크고 아주 높은 천체와 대응되어 있으며, 그런 고층차의 생명은 모두 구원받으려 하나 그들은 또 모두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그들을 구할만한 위덕이 있는가 없는가, 그들을 구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낸다. 속인에게 “다이아몬드 드릴이 없으면 수리 일을 맡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역시 같은 도리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하고 중생을 구하려면 반드시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 승화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 이익과 자아를 충격하는 일에 부딪힐 때, 당신이 능히 안으로 보고,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의 누락을 찾고, 모순 중에서 당신이 설사 무고(無辜)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오, 나는 알았다, 내가 반드시 무언가 잘하지 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더라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하고, 마땅히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아직도 무엇이 우리의 중생구도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더는 일을 얼버무려 하지 말아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한 것이지, 오히려 정념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대법제자의 위덕이 그 속에 없다. 다른 말로 바꿔 한다면, 신의 눈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을 얼버무려 한 것이고, 위덕이 아니며, 수련도 아니다. 비록 했지만 말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것은 헛되게 한 것이 아닌가? 반드시 법공부를 잘해야 하며, 그것은 당신들이 귀위(歸位)하는 근본 보장이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사부님의 새 설법을 학습하고 나서야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더 깊이 체득하게 됐다. 자신과 다른 수련생 중에는 부동한 정도로 모두 일을 얼버무려 하는 현상이 있으며, 심지어 비교적 보편적이며, 연공, 법공부, 심성 닦기, 발정념, 진상 알리고 3퇴를 권하는 중에 모두 있다. 아래에 그것들을 폭로하겠는데 수련생들께서 중시를 일으켜 이를 거울로 삼기 바란다.
연공방면, 어떤 수련생은 몇 년이 되도록 별로 연공하지 않거나, 아니면 5장 공법만 하거나, 아니면 2장 공법은 하지 않거나, 5장 “신통가지법”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연공하기만 하면 졸거나, 아니면 공을 연마하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손가락을 만지며, 긁거나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1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아픈 것이 두려워 가부좌 하려 하지 않으며, 혹은 30분을 하고 약간 아프기 시작하면 다리를 내린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도 동작이 형편없이 틀리지만 고치려 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는 5장 공법 전부를 늘 다 하지 않는 것이다.
법공부 방면, 법공부 할 때 사상이 딴 데 가 있고 정신이 집중되지 않으며, 입으로는 법을 읽으나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 강을 다 읽어도 인상이 없다. 단체 법 공부 때 잡담을 하고 형식에 치우치고, 어떤 사람은 수련생이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몰라 자기 차례가 와도 이어서 읽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틀리게 읽어 몇 번이나 일깨워 주어도 고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단체 법공부만 하고 집에 가서는 법공부 하지 않고 완전히 속인의 일만 한다. 어떤 사람은 39권 책을 통독해 본 적이 거의 없고, 신경문은 한 번 일고는 다시 더 공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도 대법 책의 글자를 고치지 않고 있다. 등등.
심성방면, 어떤 사람은 집착심임을 뻔히 알면서도 내려놓지 않고 고의로 저지른다. 어떤 수련생은 생강, 마늘, 생것을 맛있다고 게걸스레 먹는데 몇 년이 되도록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장아찌를 잘 먹는데 그야말로 밥처럼 먹는다. 다른 수련생이 아무리 말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또 수련을 몇 해나 했다는 노 수련생이 담배를 피우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황은 특수하다고 변명한다. 술 마시는 것도 비슷한 정황이 있다. 더 엄중한 것은 지금도 도박을 놀고 다단계를 하며, 심지어 남녀관계 문제도 나타났는데 그건 그야말로 더 어떻다 말할 방법도 없다.
발정념 중시, 평소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발정념을 교란할 수 있는데 집에서 식사하는 그런 것들처럼 모두 놓쳐 버릴 수 있는 빌미로 될 것이다. 단체 협력으로 발정념하여 수련생을 구출하거나 검은 소굴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는데 어떤 수련생은 아주 적게 참여하며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발정념할 때 잡생각을 하고 감각을 추구하며, 손이 기울고 연화수인이 한데 붙으면서도 자신의 상태가 아주 좋다고 여기며, 강렬한 증오의 마음을 품고 발한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발정념의 위력을 믿지 않으면서 줄곧 발정념 효과를 의심한다. 심지어 극히 개별적인 사람은 걸핏하면 몇 날, 몇 달씩 발정념을 하지 않는다, 등등.
진상 알리기에서 어물쩍 넘겨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오늘까지도 진상 알리기를 별로 하지 않았으며, 3퇴도 지금까지 0인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진상 알리기 방식은 매우 많고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오직 사람들이 알게 하고 사람을 구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예 가서 하지 않으면 그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말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진정으로 사람에게 알게 하는 것만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수 있다. 3퇴 수량이 보건대 적지 않은 것 같지만 대륙 대법제자의 숫자와 대비해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진정 장기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고를 견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써 내는 것은 책망하려는 뜻은 없고 그 중의 많은 것은 여러 시기의 자신의 상태이므로 자신을 찾아보면서 찾아낸 것이다. 예전에는 늘 이런 현상은 모두 정진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에 속한다고 여기면서 그래도 그다지 엄중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는 모두 수련하는가 안 하는가, 진짜 수련인가 가짜 수련인가 하는 문제이며, 사부님을 믿는가 안 믿는가 하는 문제로서 모두 근본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게 됐다.
대법 수련, 정법 수련은 예로부터 가장 엄숙한 일로서 추호의 거짓이 섞여도 안 됐으며, 어느 경지에서 원만하든지를 막론하고 100%로 표준에 도달해야지 그 어떤 조그마한 사람 마음이든 모두 지니고 갈 수 없으며, 그 어떤 눈가림도 모두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있으므로 우리는 분발해야 한다. 수련생들이여, 정말이지 더는 일을 얼버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부님의 법으로 서로 격려하자. “방금 말한 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절대 수련을 느슨히 하지 말고, 절대 법공부를 느슨히 하지 말며,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해야 한다. 이전에 잘 배우지 못했다면, 오늘 사부가 또 한 번 당신에게 말해 주었으니, 당신이 돌아간 후에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책을 보고 수련하며, 사상이 딴 데 가 있어서는 안 된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개인의 법공부 심득이니 부족한 곳은 시정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8월 6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6/764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