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력을 끌어올려 조사정법하자
작자: 종고루
[정견망] 션윈 프로그램 중 “금후항요(金猴降妖)”는 손오공이 법을 수호하며 요괴를 굴복시킨다는 이야기다. 손오공은 당승(唐僧 현장법사)의 취경(取經)을 보호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줄곧 요괴와 마귀를 제압하며 백성들을 위해 해악을 없애는 중대한 소임을 맡았다. 왜냐하면 그가 고강(高强)한 법력(法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법제자는 마찬가지로 강대한 공력(功力)을 지녀야만 비로소 조사정법과 중생을 구도하며 사악을 제거하는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주 고층의 구세력의 각종 교란하에서, 형형색색의 소위 사악의 “고험” 하에서, 대법제자 자신도 보호하기 어려우니 “조사정법”과 “중생구도”는 공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진상알림도 마찬가지고 발정념도 마찬가지인데, 서로 다른 제자 사이에서 다양한 항목 사이에서 일으킨 효과는 서로 다른 것으로 이것이 바로 조사정법의 힘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표면적인 형식에 달린 것이 아니며 보다 많은 것은 여전히 법력의 차이, 다시 말해 공력의 차이에 달려 있다. 대법제자 공력의 높낮이는 자신의 심성(心性)에서 결정되며 법학습에서 결정된다. 법학습을 잘하는 제자일수록 심성이 더욱 높으며 공력도 더욱 강하고 조사정법의 힘 역시 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학습을 잘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법학습은 단지 경서를 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대법에 동화(同化)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법제자가 만약 시시각각 곳곳에서 모두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고 주동적으로 대법에 동화하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그럼 공력의 제고는 반드시 나는 듯이 빠를 것이다. 반대로 만약 경서를 내려놓기만 하면 사상이 또 속인 속으로 돌아가 일에 부딪히면 사람마음으로 대하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신의 길에서 걷고 있는 대법도(大法徒)로 간주하지 못한다면 그럼 경서를 아무리 많이 읽었을지라도 여전히 대법 중에서 위로 제고하기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공력의 높낮이는 경서를 몇 번 보았는가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심성이 소재한 위치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공(功)이 바로 법(法)이고 법이 바로 공인데 정신은 본래 바로 물질이다.”(휴스턴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수련 중에서 우리의 정신이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우리의 법력(공력)도 곧 그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조사정법 중에서 우리의 작용 역시 이 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바로 이 한 경지의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이 한 경지 중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사악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조사정법의 과정 중에서 어떤 일이나 어떤 항목은 뜻대로 되지 않는데 어떤 제자는 자신은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유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가 말한 전력을 다했다는 것에서 다한 것은 어떤 힘인가? 만약 다한 것이 사람의 힘(人力)이라면 그럼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 세계 모든 속인의 힘을 하나로 합한들 사악의 저지를 타파할 수 있는가? 구세력이 오래고 먼 역사 속에서 계통적으로 층층 안배해 오늘날 대법제자를 고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런 것들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사람의 힘은 보다 높은 층차의 것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대법제자가 오늘날 하는 일체는 보기에는 모두 속인사회의 표현형식이지만 진정으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표면 형식이 아니라 대법제자의 법력이다. 다시 말해 대법의 위력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조사정법 중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 진정으로 사악을 타파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것은 항목의 표면형식이 아니라 대법제자의 법력이며 대법의 위력이다.
법학습을 통해 우리는 우주 중의 그 어떤 층차의 물질과 생명도 모두 자신의 극한(極限)이 있으며 아무리 크다해도 역시 이 우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 우주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낡은 법리 속에서 최후로 나아갈 때 우주 중의 일체 생명은 그 누구도 되돌릴 힘이 없다. 왜냐하면 중생의 힘은 모두 각자의 극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이 있다”(홍음2-사도은) 우주정법에 필요한 힘은 우주 자체를 까마득히 초과한 것이라 우주 중의 일체 생명은 근본적으로 구비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오직 사부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동시에 사부님과 서약하고 내려온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부동한 방면에서 부동한 부분에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이렇게 중대한 사명을 부여했으니 다시 말해 반드시 우리에게 상응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잘 학습하는 과정은 끊임없이 자신의 공력을 제고해 자신으로 하여금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대법제자가 인간세상에서 부딪힌 각종 모순과 곤란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우리와 모순이 생겼고, 사람이 우리에게 곤란을 만들어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인은 아주 약한 것으로 수련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다른 공간의 저령(低靈)조차 모두 속인을 좌우지할 수 있는데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대법도는 말할 나위도 없다. 진정으로 대법제자에게 모순을 만들어주고 마난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주의 부동한 보다 높은 층차의 생명으로 심지어 극히 높은 층차의 신이다. 대법제자가 조사정법 하는 과정 중에서 부딪힌 각종 교란과 저애는 이런 고층생명들로부터 오는 것으로 그것들의 힘이 오늘날 대법제자가 하는 일을 교란하고 가로막고 있다.
만약 우리 자신이 강대한 법력이 없고, 산을 가를 수 있는 정념이 없다면 설사 속인 중의 방법과 수단을 모두 사용한다 해도 이런 교란과 저애를 돌파하거나 국면을 타개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할 수 없다. 속인의 방법이 제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보다 높은 층차에 대해서는 모두 작용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강대한 공력이 없다면 아무리 재간을 피운다 해도 그런 높은 층차의 생명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물리학에서는 역학(力學)을 말하는데 사실 분자, 원자, 양성자, 중성미자 등 매한 층의 입자가 구성한 경지는 모두 그 힘의 극한이 있다. 오직 이 한 층 입자의 경지를 돌파해야만 비로소 이 한 층 힘의 극한을 돌파할 수 있고 보다 높고 보다 강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경지를 돌파할 가장 좋은 법보(法寶)를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안으로 찾는 것이다. 오직 자신을 개변(改變)하고 대법에 동화해야만 비로소 부동한 층차에서 대법의 강대한 법력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는 과정은 실질적으로 생명이 끊임없이 경지를 돌파하고, 끊임없이 보다 고강한 법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필경 구(舊)우주는 이미 성주괴멸의 최후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일체는 모두 이미 안 되게 되었다. 구우주의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안으로 찾는 것은 가장 어려운 것으로 모두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 하며 자신이 개변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역시 구우주 일체 생명의 가장 큰 장애이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누가 일에 부딪혀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는 패괴(敗壞)된 구우주 중에서 걸어나와 불패(不敗)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오늘날 대법제자가 조사정법 하는 것은 우주 중에서 가장 신성하고 가장 위대한 일이자 뭇신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영광이다. 대법제자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는데 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교란이 있고 그렇게 큰 저애력이 있는가? 우리는 정말 안으로 잘 찾아봐야 한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지금의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의 마음이 촉성한 것이 아닌가? 진정하게 안으로 찾을 수 있고,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걷는다면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다. 대법의 힘은 이 구우주의 그 어떤 생명이나 그 어떤 요소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안으로 찾고 대법에 동화하면 할수록 대법의 끝없는 지혜와 힘이 대법도의 생명과 통과할 수 있고 우리의 행동을 통해 체현되어 나올 것이다. 그것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것이니 무엇이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가 조사정법 중에서 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보다 큰 작용을 발휘하려면 그럼 반드시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자신의 법력을 끌어올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니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발표시간: 2011년 9월 17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9/17/77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