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수제자인가?”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수제자인가?”


작자: 대륙 대법제자 두인(杜仁)

[정견망] 요즘 아침저녁으로 사부님의 신경문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를 배운다. 매일 일찍이 일어나 눈을 뜰 때와 저녁에 자기 전, 나는 모두 안으로 찾으면서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수제자인가? 당신 몸에 담당한 책임, 역사적 사명, 이런 것을 당신은 모두 분명히 알고 있는가? 했는가? 어떻게 했는가?”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세인을 구도함에 있어 그들이 깨어나게 하고 그들을 구도하려면, 당신들 자신 역시 깨어나야만 하고 또한 깨우쳐야만 한다. 일만 많이 하다 보니 자신의 수련을 잊어버렸는데, 이것도 안 되지 않는가. 당신들은 수련인이다. 이 말은 당신의 과거, 예전 한 때, 혹은 당신의 표현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니며, 이 말은 당신의 본질, 당신 생명의 의의, 당신이 진 책임, 당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마치 사존께서는 바로 나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지적해 깨닫게 하시는 것 같았다. 대법제자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며 원만하지 못한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자신이 수련 중에서 일종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나타났는데 바로 매우 많은 정황 하에서 속인사회 형형색색의 가상에 미혹되어 대법으로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가늠하는 표준을 잃어버렸다. 주요하게는 세 가지 방면에서 표현된다.

첫 번째는 수시로 속인과 비해 자신이 이미 매우 괜찮다고 느끼고, 매우 고상하며, 대단하고, 자아에 대한 느낌이 괜찮은 것이다. 한번은 한가위를 보낼 때 직장에서 위로금을 주기에 나는 재무부에 돈을 받으러 갔는데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업무를 보는 사람이 빠뜨린 것이다. 그때, 비록 나는 단지 웃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갔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소동을 일으켰을 테지.” 사실 이것은 여전히 속인과 비교해 속인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대법표준으로 가늠하지 않는 것인데 자신의 내심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를 낮춘 것이다.

또 하나는 늘 자신의 과거와 비기는 것인데 내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떠어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작년에 어떠어떠하고 등등이다. 수련 전 자신과 비교해 괜찮다고 여겨 자신을 완전히 속인과 혼동하고 자신을 대법제자이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인 것을 잊어버린다. 자신의 책임과 역사사명을 잊어버린다. 진선인(眞善忍)의 대법표준을 잊어버린다.

다른 한 가지는 가장 엄중한데 바로 사람의 관념으로 만든 공식을 즐겨 사용하고 일종 표준으로 형성되어, 대법표준과 동떨어져 우리가 법공부를 하는 것을 교란하고 발정념을 하는 것을 교란하며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구도중생 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8시간 임무제”를 모방하는 것인데 자신에게 “매일 법공부 1시간”을 규정해 남는 시간이 있어도 많이 배우지 않고, 마치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하는데 오랫동안 이미 한 가지 표준을 형성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도 잠재의식에서 “임무감”이 있었고 자아만족하고 적지 않게 탈퇴시켰으니 괜찮다고 느껴 득의양양해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는 누가 어떠하든 법은 오로지 하나이며, 오로지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표준이다.”

“수련의 일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속인 중의 기능도 아니며, 매우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心性(씬씽)을 어떻게 제고하는가에 달렸다.”(전법륜)

우리가 표준을 낮추면 바로 사람의 염두를 움직인 것이고 대법 표준을 벗어난 것이다. 사람의 관념은 수련자가 문제를 정확히 대하는 장애이며 이 장애는 우리 이 공간, 미혹 중에서 보면 무형이지만 다른 공간에는 확실히 물질로 존재한다. 층층 관념의 장애는 우리를 미혹하고 구세력은 기회를 틈 타 소란을 피우며 게다가 현재 사회도덕은 급속히 하락하고 이런 것에 대면하여 “사람껍질”을 돌파해야 하는 갖가지 관념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속인의 관념, 뼛속에 형성된 이치, 자신의 관념에 집착하고, 생생세세 형성된 관념을 갖고는 근본적으로 원만하기 어렵다. 때문에 반드시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귀정(歸正)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후천관념의 일체 행위에 순응하면 아마도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고 앞의 공로가 모두 허사가 되고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사람과 신의 일념의 차이,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최근 몇 년간 자신이 걸은 길을 되돌아보니 관념과 정념, 정과 자비, 위사와 공익, 자아를 견지하는 것과 자아를 내려놓는 것, 자기를 실증하는 것과 대법을 실증하는 것, 그 속에 정사대결과 충돌, 득실을 취하고 버리는 것을 고려하는 매 일보는 모두 대법의 지도를 떠날 수 없었다. 만일 100%로 신사신법하지 못하면 사부님의 법신도 100% 당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데 이 이치가 아닌가? 당신이 법에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이니 속인상태에 부합되어야 하고, 법신은 당신에 대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 대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최저한도로 그 방면, 그 문제에서 당신은 바로 속인이고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다. 100% 신사신법하지 않으면 바로 수련에 누락이 있고 원만하기 어렵다. 때문에 나는 늘 자신에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고, 자신이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으며, 자신이 문제를 만나면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아도 안으로 찾으라고 주의를 준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반성한다. “나는 진정한 대법제자인가? 내가 대법을 배우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묻지 않으면 괜찮은데 물어보니 깜짝 놀랐고 자신의 심령 깊은 곳을 찾아보니 집착심이 한 더미나 됐다. 증오심, 사심, 안일심, 환희심, 쟁투심, 사업심, 일하는 마음, 허용심, 자존심, 과시심, 질투심, 분별심, 경쟁심, 의심, 급한 마음, 원망, 두려움, 고집, 타성(惰性) 및 세상에 형성된 각종 관념이다. 어떤 집착심은 비교적 선명하고, 어떤 마음은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어떤 것은 매우 깊이 감추어져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습관이 됐는데 장기간 대법표준에 벗어나도 스스로 전혀 알지 못했고 자신을 신속히 청리하지 못했다. 매우 두렵다! 한편으로 대법을 수련하고 한편으로 이런 좋지 않은 마음과 더러운 사상으로 추구하는데 당신은 승화해 올라올 수 있겠는가?

대법에는 근본적으로 이런 것이 없고 당신이 추구하면 대법을 빗나간 것이며 당신이 추구하면 좋지 않은 것을 초래하고 당신이 추구하면 번거로움을 가져온다. 시간이 길어지면 또 큰 문제가 나타난다. 우리 신변 정반(正反) 방면의 사례도 우리의 중시를 충분히 일으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바로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으로 이는 역사상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다. 각자(各自)의 길을 잘 걸으려면 곤란이 있기 마련인데, 곤란에 직면하여 맞받아 나아감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낡은 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박해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과거의 역사 수련 중에 없었던 것이다. 대법제자는 개척자[開創者]이므로 수련 중에서 어떤 때는 잘하고, 어떤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곤란이 있을 때 여러분은 앉아서 법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라. 오직 정념정행 한다면 넘기지 못할 관(關)이 없다.”(페루대법제자들에게 전하는 답장)

나 개인은 지금 층차에서 깨달았다. 한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신사신법, 정념정행 해야 한다. 정념정행은 먼저 마음이 똑발라야 한다. 마음이 똑바르려면 바로 마음속에서 자신을 하나의 진수제자로 간주해야 한다. 마음이 바르려면 시시각각 진선인(眞善忍) 이 유일한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마음이 바르면 득실에 고심하지 않는다. 대법제자, 특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일사일념이 모두 반드시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 요구는 대법제자 신구의(身口意) 각 방면에 관통되고 심지어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이와 같으며, 우리가 대법 일을 한다고 해서 표준을 낮추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설령 대법의 일을 하더라도, 법에 부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법의 힘이 없게 된다.”(맨해튼 설법)

생각해 보면 법의 힘이 없으면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겠는가? 밍후이왕과 정견망의 수련생 문장도 이것에 대해 공감과 공통된 인식이 있다. 법을 벗어나, 정념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사오(邪悟)하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초래하고 비통한 교훈을 초래하는데 이런 사례도 많아 우리를 일깨워 주기는 충분하다.

발표시간: 2011년 9월 19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9/19/774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