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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수련을 잘한 것인가?

어떻게 해야 수련을 잘한 것인가?

작자: 동진(同眞)


[정견망]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99년 7월 20일 이후 수련을 특별히 잘하고 고생을 많이 겪으며 많은 박해를 당하고도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하던 한 무리 수련생들이 불법판결을 당하고 감옥에 감금된 후 “전향”됐습니다. 저는 아주 곤혹스러운데 수련을 그렇게 잘했는데 어떻게 “전향”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비로소 수련을 잘한 것인가? 많은 수련생은 고생을 많이 하고 박해를 아주 엄중하게 당하고도 대법에 확고하면 수련을 잘한 것이라고 한다. 수련을 고생을 많이 겪는 것과 동등하게 보고 수련과 박해정도를 연결하고 있다. 물론 수련하려면 고생을 해야 하고 사악의 엄혹한 박해에서도 걸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물론 대법에 대해 확고해야 한다. 하지만 고생을 많이 겪고 박해를 엄중하게 당했다고 다 수련을 잘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도 이런 이치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가늠하는 표준을 다시 논함(再論衡量標準)”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이 말했다. 사람을 가늠하는 표준은 제자의 心性(씬씽)을 보아야 한다고. 아울러 나는 절대 어떠한 개오(開悟)하지 못하고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 내 제자의 진실한 수련상황을 똑똑히 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정법이 전면적으로 중생구도로 들어선 후 또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심성 경지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과 태도를 가리킨다.”(“따지웬(大紀元) 회의에서의 설법”)

사부님께서 이미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수련을 잘한 수련생은 곧 완전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고 일사일념을 모두 대법으로 가늠할 수 있으며 수시로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고 또한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자신의 힘을 다해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련을 잘한 것과 박해를 당한 것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 이 사부로서 말한다면, 정법 중에서 이번의 사악한 박해를 이용하여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바, 대법제자들도 박해를 감당함으로써 높게 수련할 수 있다는 착오적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대법과 대법제자는 박해를 반대하는바 이 역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이다. 법에서 수련하지 않고, 박해를 감당하는 자체로는 더욱 높게 수련할 방법이 없으며 대법제자의 표준엔 더욱 도달하지 못한다. 그 구세력들이 제공한 소위 이 환경을 승인하지 않는 것은, 정법 중에서 내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대법에 동화되게 할 것이며, 이러한 사악 중에서 대법제자를 단련(錘煉)시키는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정말 수련을 잘한 수련생은 왕왕 차분히 법공부를 할 수 있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다그치며 박해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정견주간”에 한편의 문장이 실렸는데 한 수련생이 불법 노동교양 3년 판결을 당하고 노동교양소에서 늘 정념으로 대법을 실증했다고 한다. 어느 대대에 옮겨 가든지 자기 신변에 어리둥절해하는 수련생들을 깨우치고 접촉하는 죄수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린다. 노동교양소에서 그를 더 감금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몇 달 내 무조건으로 연속 수차례 감형시켰으며 1년 반 만에 그를 풀어주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보건대는 표면적으로 마치 사람의 표현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니다. 거기에로 수련된 것이며 진정하게 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 나는 잡혀 와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여기에 왔다면 나는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럼 그 사악한 그것들은 두려워한다.”(“대(大)뉴욕지역법회 설법”)

이래야만 비로소 수련을 잘한 것이다. 수련생들이 교류한 문장으로부터 볼 때 왕왕 수련을 잘하면 비록 사악이 일시 틈을 타지만 소굴에서도 늘 대법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법에서 부단히 성숙되면 사악은 근본적으로 감히 박해하지 못한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고 대법은 위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 매 수련생 옆에는 일부 수련을 잘한 수련생이 있다. 우리들은 “당(黨)문화” 투쟁철학의 부패된 관념과 속인의 “강자는 영웅”이라는 이치의 교란을 받아 세간에서 소위 기세 드높고 고생을 많이 하며 많은 박해를 당한 수련생이야 만이 비로소 수련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나는 북경의 몇몇 수련생을 보았는데 그 중 다른 성(省)출신 남매가 있었다. 북경에서 셋방을 얻고 대법자료를 10년간 만들었다. 사악의 기세가 가장 사나운 올림픽 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10년 간 점진적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

이 수련생은 “매 대법제자는 다 각기 서약이 있는데 혹시 나의 서약은 이런 형식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 소박한 몇 마디 말이나 사실 경지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또 한 수련생은 ·10년 간 자료를 배포했는데 지금껏 멈추어 본적이 없다. 베이징의 사회구역 관리가 얼마나 엄하고 얼마나 많은 감시 카메라가 있든지 그는 매주 대량의 대법자료를 배표할 수 있었다. 심태가 순정하기 때문에 중생을 구도하는 일은 교란 당하지 않았다.

대법은 그의 위엄이 있고 대법제자의 오늘날 법을 실증하는 길은 미래에 남기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의 진리(如意眞理)를 지니고 와 소탈하게 온 천하를 거니네”(“홍음2-여래”)와 같다. 신적(神跡)을 미래에 남기자! 우리들은 일체 사당 문화와 후천관념의 교란을 제거하고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길을 잘 걸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어긋나지 말자.

천박한 깨달음이니 부당한 점을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9월 27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9/27/776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