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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協助) 중에서 자신(自信)과 정념(正念)을 수련해내다

협조(協助) 중에서 자신(自信)과 정념(正念)을 수련해내다


작자: 대만 가의(嘉義)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이 협조업무를 담당하는 가운데 체험한 수련심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 한길에서 걸어오면서 마난도 매우 많았고 어떻게 걸어 왔는지 본인도 다 모른다. 단지 사부님께서 발탁해주셨기 때문에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거대한 난 중에 협조의 중책을 담당하다

남편의 사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관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가의(嘉義) 수련생이 나더러 가의 지역의 협조인을 하라고 하였다. 당시 나의 첫 일념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족들과 상의하고 또 수련생들과 교류한 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을 수락했다. 나는 가의 대림(大林)진에서 가의 시내로 이사했다.

처음 협조하는 과정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비평하는 말이 내겐 큰 충격이었고, 나는 본래 자신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의에는 교사, 의사, 교수의 직업을 가진 능력 있는 수련생들이 많은데, 왜 그들을 찾지 않고 하필 지식수준도 높지 않고 가정주부인 나에게 협조인을 하라고 했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해 원망하는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수련생들의 비평을 들으니 자신이 더욱 없어졌다. 전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남편과 상의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사망한 후로는 스스로에 대해 더욱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인도 하에 협조인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관을 넘을 수 있었으며 또 협조인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정념이 생겼다.

인각하는 일에서 정념정행

나는 수련 과정 중에, 대법을 언제나 우선순위로 놓았고 자신을 뒤에 놓았다. 많은 일이 나를 고험했지만 시종일관 대법일을 늘 가장 중요한 곳에 놓으니 정념정행 할 때면 일이 모두 순조로웠다.

내가 간정(墾丁)에서 다른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인각업무를 협조할 때의 일이다. 막 임무를 완성하려 할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천을 모두 날려 보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교란이 아주 많은 것을 보았고 나는 수련생들과 협력해 어떻게 교란을 대할 지 생각했다. 수련생이 도시락을 사 왔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24시간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직 한마음으로 이 장소를 잘 배치하려 했다.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곧 날이 밝는데 어떻게 하면 천을 잘 배치해 수련생들이 “전법륜” 글자를 잘 인각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인각에 참가하러 온 수련생이 이 과정을 모르고 우리가 천을 땅에 잘 깔아놓을 때 천을 들어올리는 바람에 천이 또 날아가버렸다. 나 역시 협조인을 처음 맡았기 때문에, 많은 일에서 수련생들과 어떻게 원만하게 교류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수련생이 천을 날려버린 후 몇몇 수련생들과 다시 묵묵히 천을 깔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옷을 준비해 인각에 참가 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각한 것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 전반 과정 중에서 사람을 구하는 항목은 모두 고험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의로 돌아오는 길에 졸다가 하마터면 절벽에 부딪칠 뻔했다. 다행히 사부님의 보호 하에 무사히 가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인각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다. 대중(台中)에서 다른 수련생들과 연계해 인각에 참가했다. 원래는 수련생들이 모두 해놓아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가보니 바람이 불어 천이 휘날렸고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다시 못질을 해서 고정시켰다. 이렇게 하고 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그날 가족으로부터 시아버님이 위독하니 병원에 가보라는 전화가 왔다. 시아버님은 양로원에 계셨다. 여러 가지 일이 함께 몰려왔다. 매번 내가 진상을 알릴 때에도 이런 상황이 나타났는데 그날도 이런 상황이었다. 밤새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수련생과 다른 방을 썼기에 기타 수련생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다. 결국 정념정행하자 일체 교란이 사라졌다.

신념(神念)으로 시간관념을 타파

한번은 수련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구슬을 꿰는 일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작년에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을 불러 이튿날 다른 시로 배우러 갔다. 구슬을 가져다 수련생들에게 분배해주고 나서 일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구슬 한 줄이 더 남아, 내가 꼭 해야 했다. 사실 그때 나는 이 일을 담당하기 어려웠다. 토요일 저녁 대중(臺中 타이중)에서 협조인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매우 긴박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맡기로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신념(神念)이 생각났다. “그래, 신념으로 이 일을 담당하자, 자신이 세심하게 안배하면 꼭 해낼 수 있다.” 라고 생각하였다.

이 과정 중 많은 전화가 걸려와 협조 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을 안정시켜, 일을 잘 처리하고 교류에 참가하였다. 결국엔 시간 내에 일을 완성했는데, 수련생은 내가 어떻게 하였는지 의아해 하였다. 그들은 가서 교류하기는커녕 시간 내에 일도 완성하지 못했다. 사실 견정한 일념을 보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잇달아 손수건을 꿰매는 일이 급하다는 전화가 왔다. 단시간 내에 완성해 미국에 보내야 하니 수련생들을 찾아 도와달라고 했다. 수련생을 찾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거절했고 두 명만이 응해 대북(臺北 타이베이)에 가기로 했다. 대북에서 3일간, 하루에 3,4시간씩 자며 일을 했다. 내가 구슬을 절반 꿰맸을 때 협조인이 안된다며 전부 다시 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시 하는 과정 중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이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깨달았는데, 수련의 매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 삼가고 조심스럽게 해야 일을 잘 할 수 있다.

마음을 합쳐 진상을 알리다

중공악당의 관리가 대만에 올 때, 가의의 다른 협조인 두 사람이 출근을 했기 때문에 나 혼자 협조인의 책임을 맡았다. 수련생의 표현에 따르면 경찰이 우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주부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와 성원활동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하였다. 그들은 대법의 위력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수련생들이 함께 정념으로 한 결과이다.

이번 활동은 세인들에게 파룬궁수련생의 역량을 보여 주었고, 경찰마저 감탄하게 했다. 우리는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서 있었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고, 먹지도 않고, 다만 번갈아 화장실을 다녀오고 식사를 하고 다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여기에 나이 많은 노인과 부녀자가 있었다. 경찰은 무슨 힘으로 이렇게 규율을 지키는지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수련을 통해 대법에서 이익을 얻고 신체가 건강해 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는데 오직 중국대륙에서만 아직도 박해를 당하고 있다. 중공의 관원 중에도 파룬궁을 박해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외 파룬궁 수련상황을 알려주어 이런 소식을 국내에 가져가게 하려한다. 우리는 단순히 박해를 중지하라는 것이지,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렸다.

아무런 관념 없이 단순하게 협력

나는 션윈 무대 협조업무를 맡았는데, 첫해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매우 두려웠다. 경험이 없어 걱정하던 중, 수련생들과의 교류와 격려 하에 마음을 놓고 협조인을 맡았다. 수련생들과 장소를 청소하고 공연장 직원과 교류할 때, 사람의 선한 일념이 상대방을 감동시키며 협조 중의 말투와 선념(善念)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대 뒤에서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아를 내려놓고 전력을 다해 협력했으며 션윈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협력했다. 나 자신에게 아무런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첫해에는 전체적인 조율이 아주 순조로웠다.

이듬해 다른 두 명의 협조인이 직장에 나가는 관계로, 내가 무대 앞과 뒤를 모두 책임지게 되었다. 션윈 악단이 법공부와 교류할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극장 측 담당자에게 선의적으로 요청하자 극장에서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악단의 악기가 손상을 받을 때면 나는 수련생들이 적당한 악기를 찾아 대체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렇게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나중에 협조하는 가운데 이 일은 좋은 결과를 얻었고 션윈 역시 안심하고 공연할 수 있었다.

다른 수련생을 도우니 자신이 이롭다

협조인을 맡기로 한 직후 인연이 있는 어떤 사람이 대림(大林)에 있는 우리 집을 샀다. 나는 이 돈으로 빚을 갚고 가의 시내로 이사할 수 있었으며 법공부장소와 협조인 일을 하는데 아주 편리해졌다.

사실 수련을 시작한 후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나는 본래 속인 중에서 비교적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수련 이후 더욱 다른 사람에게 협조하고 도와주게 되었다. 내가 마난을 겪을 때, 가령 내가 가정 형편이 곤란하거나 남편이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사망하기 전까지 돌봐야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을 홀로 마주해야 했다. 남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누나가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어려운 관을 넘어왔기 때문에, 수련생이 마난에 부딪히거나 혹은 심성관을 넘기지 못할 때, 나는 늘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이며 나더러 수련생들을 도와 법에서 교류하고 정념(正念)으로 관을 넘게 하신 것이다.

한번은 너무 의기소침해져서 협조인 일을 그만 두려고 수련생과 간정(墾丁)에 기분 전환을 하러 갔다. 하지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나더러 병원에 가서 수련생과 교류하라고 했을 때, 나는 또 자신을 내려놓고 즉시 돌아왔다.

종종 수련생들이 관을 넘지 못할 때면 나를 찾아 교류하는데, 심지어 나더러 고생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실 내가 정념(正念)이 없을 때면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 대한 교란이다. 하지만 수련생을 가련히 여겨 시종 거절하지 못했다. 하루는 협조인 일을 밤늦게까지 하여 이튿날 연공하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일찍 수련생이 전화를 해서 “좀 나와 보세요. 당신과 교류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금방 이를 닦고 세수를 한 후 문을 나섰다. 왜냐하면 수련생들이 진심으로 교류하려는 사람을 찾고,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정념을 주는 것을 바라기에, 설사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자신을 잊고 수련생을 생각하며 이렇게 관을 넘었다.

전에 가의의 주요 법공부장소에는 사람이 가득했는데, 내가 왔을 때는 오히려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일념을 움직여 가의 법공부 환경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법공부에 나는 반드시 참가했다. 이 법공부 환경에서 나는 주동적으로 자신의 일부 심득체험을 말했으며 수련생들이 걸아나오도록 격려하고,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수련생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교류했다.

나중에 션윈 홍보를 할 때는 발정념 팀을 구성했다. 나 자신도 발정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껴 목요일에도 발정념 팀을 만들었다. 나는 수련생들을 격려해 35분 발정념을 하게 했는데 참가한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이 많이 제고했다고 인정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수익을 가장 많이 얻은 것은 바로 나였다. 이 한 해의 협조과정 중에서 나는 자신이 늘 사상업의 교란을 감당하면서 고통 속에서 또 수련생을 돕는 협조인 일을 했다. 그러나 수련생들을 조직해 단체 발정념을 하는 과정에서 무형중에서 나의 사상업이 점차 제거 되었다.

협조 중 심성이 제고되다

최근 1~2년간 협조업무를 하는 중에서, 나는 본래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했기 때문에 비평하는 말을 들을까 몹시 두려워했다. 협조과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런 마음을 많이 제거해 주셨다. 매번 어떤 항목을 한 후 수련생이 나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때면 나는 매우 억울함을 느꼈고, 자신은 능력이 없으니 협조인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수련생을 찾아가 교류할 때 그는 협조하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알려주었다. “책임”이라는 두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머릿속에서 이것은 나의 서약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이 서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졌고, 수련생의 부동한 의견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수련생이 더 심한 말을 했을지라도 금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 협조과정에서 나는 수련생들이 나에게 맡긴 항목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또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자신에게 일을 하려는 마음과 과시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았다. 왜 수련생들이 맡긴 일을 거절하지 못하며, 심지어 바빠서 연공과 법공부 할 시간조차 없을 때는 법공부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신체에도 일부 현상이 나타나는가? 나중에 나는 협조인이라고 하여 모든 일을 일일이 다 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감당하도록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혼자 묵묵히 끝까지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일하도록 협조하는 것이 옳다.

대법은 끝이 없으니 고생을 배로 삼자

남편이 사망한 후 경제적인 수입이 없어 나는 반드시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내가 책임진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초과했다. 매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아프고 몸과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귀가하는 차에서 나는”소화상은 고생을 겪을수록 더욱 쉽게 개공하며, 그 대화상은 향수(享受)할수록 개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업력의 전화(轉化)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전법륜)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나는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시며 나더러 제고하라고 이런 고생을 겪게 하시는 것임을 안다. 다시 말해 미래에 더욱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또 더 많은 업을 제거해주시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련의 길을 걸어오면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끝으로 “홍음 2-견정”을 읽으며 여러분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깨달은 자 세속 벗어남을 높이 보나니
정진하는 자 마음 독실하여 원만할 수 있도다
큰 난 중에서 견정해야 하나니
정진의 뜻은 접을 수 없도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1년 아시아법회 발언고)

발표시간:2011년 12월 11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2/11/791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