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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야기 :바닥이 없는 통(無底桶)

수련이야기 :바닥이 없는 통(無底桶)


작자:왕호천(王昊天)

[정견망]

역사 중에서 아주 깊이 음미할만한 일화가 있다. 어느 대도(大道) 법문의 마각진인(摩覺真人)이 두 도동(道童)을 거둬 수련을 시켰다. 두 도제(徒弟)는 바로 자연동자(紫淵童)와 유자동자(維子童)로 근기가 막상막하였고 각기 장점이 있었다. 이들이 산에 올라온 날부터 진인(眞人)은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신통술류(神通術類)의 것을 전수해주었다.

자연동자는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한 자루의 붓을 주어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로 운용하게 했다. 그가 물건을 그리면 색채가 선명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선계(仙界)처럼 그의 손에서 원하는 대로 잘 그리면 만물이 번화(繁華)하고 생기발랄해졌다.

한편 유자동자는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아주 지혜로웠다. 눈앞의 장애나 난관도 그의 생각을 거치면 완벽하게 변했고 지혜롭게 운용해 마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 같았다.

어느 날 마각진인이 보니 이들의 수련이 이미 최후의 고험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그들 각자에게 큰 나무통을 하나씩 주고는 진인이 다 찼다고 말할 때까지 산에 올라가 사과를 따도록 했다. 산 위의 사과는 모두 야생이라 크기가 아주 작았고 또 수분이 부족해 바짝 말라 있었다.

자연동자는 나무통을 빨리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과를 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주 이상하게도 그가 아무리 애를 써서 통 안에 사과를 담아도 통은 가득 차지 않았다. 때로는 곧 가득 찰 것처럼 보였지만 잠시 후에 보면 또 한참 차이가 났다.

진인이 시간을 아주 길게 연화(演化)시켜 놓았기 때문에 하루가 마치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또 시간이 연장됨에 따라 내심으로 느끼기에도 진짜처럼 지루해 마치 끊으려 해도 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외에도 진인은 또 나무통을 가지(加持)해 채우려고 갈망할수록 신통의 작용 하에 나무통이 더 가득 차지 못하게 해놓았다.

자연동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나무통을 채울 수 있기를 정말 갈망했다. 하지만 사과를 담을 때면 늘 이런 저런 문제가 나타났고 또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 지시도 없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점점 불만이 생겼고 갈구(渴求)할수록 더 조급해졌으며 내심의 궁핍과 부족이 두드러졌다. 이는 점차 그에게 아주 큰 장애를 형성했다. 그는 본래 출신입화의 붓으로 나무통에 사과가 가득한 그림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무통 앞에만 가면 그의 붓도 신통법력을 펼치지 못했으며 일반 붓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본래 법기(法器)의 운용 역시 심성수련에 의한 에너지로 가지되는 것이다. 일단 심성이 떨어져 내려가자 붓도 자연히 법력(法力)을 잃게 되었다.

반면 유자동자는 어떻게 나무통을 가득 채울 것인가에 마음을 두지 않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사과를 담았다. 그는 언제까지 가득 채울 것인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라 수련의 과정을 향수하며 소중히 여겼다. 시간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내심의 감수 역시 길어졌지만 그는 여전이 진지하게 대했다. 말라비틀어져 거의 같은 모양이 되어버린 사과를 눈앞에 두고 그는 끊임없이 사과를 담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에게는 이런 체험이 있었다. 통 안에 사과를 가득 채우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득차지 않으면 통도 가득 찰 수 없으며 마음이 가득 차면 통은 자연히 가득찰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에서 닦는 것은 마음이지 통을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연동자는 작은 사과로는 영원히 나무통을 채울 수 없자 지쳐버렸다. 그는 문득 유자동자는 사과를 얼마나 담았는지 보고 싶어졌다. 멀지않은 곳에서 통에 사과를 담는 유자동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통속에 사과가 얼마나 들었는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피로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자연동자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통 안의 사과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유자동자는 여전히 계속 담고 있었다. 다시 보니 유자동자의 통은 뜻밖에도 바닥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자연동자는 호기심이 생겨 “사형, 이미 나무통을 가득 채웠는데 왜 아직도 계속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유자동자가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아직 가득 찼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잖아? 오직 사부님께서 가득 찼다고 말씀하셔야만 정말로 가득 찬 것이다.”

“하지만 사형의 나무통에는 분명 밑바닥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사부님께서는 가득 찼다고 말씀하지 않으실 겁니다.”

“나무통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밑바닥이 없는 이유는 수련의 지혜가 무한하고 법속의 지혜가 넓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마음으로 사부님을 대하고 사부님께서 주신 일체를 대한다면 그럼 영원히 가득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발표시간:2011년 7월 30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7/30/763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