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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가 주역이다

대법제자가 주역이다

작자: 평심(平心)


[정견망]

천목(天目)이 열려서 수련하는 한 수련생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전에 구세력(舊勢力)이 열려서 수련하는 대법제자에게 올가미를 설치해 장차 이들 대법제자들을 포위해 교살(絞殺)하려 했다. 이들 대법제자들도 아주 능력이 있어 쌍방 간에 각기 신통(神通)을 펼쳤는데 전투가 아주 참혹했다. 결국 그와 다른 몇몇 소수의 제자들만이 겹겹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고 나로 하여금 중공사당의 맹량고(孟良崮)전투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열려서 수련하는 그런 대법제자들은 동수들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사악은 자신들이 정법(正法)에 의해 도태될 결말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그것들이 미친 듯이 이지(理智)를 상실하고 이 부분 대법제자들에게 손을 쓰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는 공산사당(共產邪黨)은 바로 인간세상에서 구세력의 대표임을 깨달았다. 정의 인사들은 공산사당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전략(戰略)에서는 이성이 없지만 전술(戰術)에서는 아주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산당은 소위 전략에서는 상대방을 무시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아주 중시한다는 뜻이다. 무시하기 때문에 미쳐 날뛰며 중시하기 때문에 이성적이다. 과거 맹량고 전투는 바로 공산사당의 전술이 이성적인 결과이며 후인들에게 아주 중대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최근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중에서 사악의 표현 역시 마찬가지인데 전략적으로는 미쳐 날뛰고 전술적으로는 이성적이다. 내 생각에는 이는 바로 구세력의 한 가지 특징이다.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정법을 좌우하려 시도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미쳐 날뛰는 것으로 이성이 없으며 극단적인 과대망상의 결과이다. 그러나 정법을 어떻게 좌우하고, 대법제자를 어떻게 박해할 것인지, 구체적인 설계와 실시에서 구세력은 또 아주 세밀하게 배치했다. 이는 구(舊)우주 생명의 지혜와 능력이 극치에 달한 것으로 그것들이 가장 주도면밀하다고 여기는 배치를 했다. 그러므로 오직 구(舊)우주의 일체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대법만이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타파할 수 있으며 오직 진정으로 법공부를 하고 법을 얻은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대법을 실증할 수 있다.

당시 나는 그 수련생에게 대법제자가 법에 있기만 하면 사악이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으며 그것들이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대법제자는 그것들을 소멸시킬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법(法)에 있는 대법제자는 바로 대법과 함께 하며 대법은 위력이 무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또 한 가지를 의식하게 되었다. 만약 구세력이 정말로 그렇게 사악한 배치를 했고 열려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들에게 손을 쓰려 한다면 그것들의 유일한 기회는 바로 이들 대법제자들을 유혹해 대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오직 대법제자가 대법(大法)대도(大道)에서 벗어나야만 대법의 거대한 보장을 잃고 사악은 비로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당초 맹량고 전투에서 사당은 국군(國軍 국민당 정부군) 정예부대를 험지로 유인해 국군의 포병이 힘을 쓸 수 없게 했다. 그런 후에 상대의 10배나 되는 병력을 동원해 겹겹이 포위하고 잔혹한 인해전술로 국군의 힘을 소모시킨 후 최후에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정법(正法)은 선(善)과 악(惡)의 최종 결전으로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지만 단지 사람 이 일면이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성패(成敗)의 관건은 대법제자가 사악에 이끌려 기로(岐路 갈림길)로 들어가 대법대도에서 벗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때문에 대법제자가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정법시기(正法時期) 대법수련 중의 점오(漸悟)는 수련이 일정한 표준에 도달해야 하며, 또 정법 중에서 일정한 사명을 짊어진 제자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부분 제자는 상당히 능력이 있다. 그러나 능력이 클수록 일반적으로 말해 담이 더 크기에 모험을 하기 쉽다. 소위 화(禍)와 복(福)이 서로 의지한다는 말처럼 변증법적으로 보면 두드러진 장점이 바로 두드러진 결점이 된다. 사악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만약 구세력이 정말 열려서 수련하는 이런 대법제자들을 훼멸하고자 한다면 이들의 두드러진 장점을 어떻게 두드러진 결점으로 전화시켜 사악이 참견하게 할 것인가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밑천을 아끼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열려서 수련하는 그런 대법제자들이 다른 대법제자들과 다른 점은 그들이 어느 정도 다른 공간을 볼 수 있으며, 다른 공간의 생명이나 심지어 고층의 불도신(佛道神)과 소통할 수 있고, 다른 공간에서 신통(神通)을 운용할 수 있거나 심지어 이 공간에서 속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대법제자가 대법수련 중에서 얻은 능력으로 만약 정법 중에서 바르게 사용하고 선(善)하게 사용한다면 당연히 아주 큰 장면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짊어진 사명일 것이다.

그러나 진상을 일부 볼 수 있기 때문에 열려서 수련하는 이들 대법제자들이 걷는 길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욱 좁으며 이 길을 반드시 아주 바르게 걸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발아래 놓인 길이 더욱 좁기 때문이다. 이들 열려서 수련하는 제자들에 대해 말하자면 밖으로 한걸음만 빗나가도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모두 바르게 걷지 않은 것으로 모두 법에 있지 않은 것이다. 만약 더 많이 빗나가고 더 멀리 벗어난다면 그럼 점차 대법대도에서 벗어나 사악이 자신에게 설치한 사지(死地)로 향하게 된다. 정법을 좌우하려는 그런 구세력은 바로 이런 기회를 타고 이들 대법제자들을 훼멸할 최대의 구실을 잡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대법을 벗어났고 그들이 이미 법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송(北宋)의 대문호는 “인생에 글자를 아는 것이 우환의 시작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의 선지자 소크라테스는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신은 오히려 그가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왜 가장 총명한 사람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을까? 왜냐하면 생명은 본래 의심덩어리로 외면 세계 역시 의심덩어리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나 외부세계에 대해, 인식이 있고 안다고 여길 때면 우리는 이미 이런 의심덩어리 속에 빠진 것이다.

구우주의 일체 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정법은 가장 큰 일이며 또한 가장 큰 의심덩어리다. 이 생명이 얼마나 높든, 아직 구우주의 생명이기만 하다면 곧 정법이 대체 어찌된 일인지 모르며 정법 이후의 신우주가 어떤 모양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장 큰 천기(天機)이기 때문에 구우주의 그 어떤 생명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사람이 세상에서 얼마나 유명하건, 그런 신들이 천상에서 얼마나 유명하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명하다는 명(名)이 꼭 명백하다는 명(明)은 아니다.”(전법륜) 누가 진정으로 정법의 이 일체를 알 수 있겠는가? 오직 가장 위대한 정법자(正法者)이신 우리들의 사존(師尊)뿐이시다.

나는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서 전체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험장으로 만드셨으며 정법은 구우주의 일체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한 차례 가장 관건적인 시험으로 매 수험생 앞에 놓인 답안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시험의 성적은 매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다행히 “전법륜”이 있는데 모든 표준답안은 모두 이 책 속에 있다. 오직 우리가 이 “전법륜”을 잘 배우기만 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하물며 또 많은 다른 경문들이 우리의 “전법륜” 학습을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이번 시험은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모든 표준답안이 다 “전법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시험을 앞에 두고 모든 대법제자들이 오직 법에서 답안을 찾기만 한다면, 오직 법 학습을 통해서 사부님께서 지시하신 3가지 일을 잘하기만 한다면,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다른 수험생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모두 표준답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지 참고로 할 뿐이다. 이 수험생이 시험장에서 얼마나 유명하든, 상대방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답안이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이든 막론하고 말이다.

정법은 구우주의 이런 일체 생명들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수수께끼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미혹시켰다. 구우주의 아무리 높은 신일지라도 모두 미혹 중에 있고 모두 정법에 의해 가늠되며 장래 위치를 놓게 된다. 왜냐하면 현재 대법제자의 주체는 아직 정법홍세(正法洪勢)가 도래하기 전의 구우주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높은 층차에서 열려 수련할지라도 모두 신우주를 보지 못한다. 열려서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본 다른 공간이라도 좋고, 접촉한 고층생명이라도 좋은데, 모두 아직 정법홍세가 도래하기 전 구우주 및 그 생명일 뿐이다. 구우주의 아무리 높은 생명일지라도 보는 것은 모두 구우주의 법리(法理)이며 신우주의 법리는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구우주의 신 그들이 대법제자더러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 것은 그들이 본 구우주의 법리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미래 우주의 요구에 부합하는가, 사부님께서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에 요구하는 것에 부합하는가? 내가 보기에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많은 신들은 확실히 진심으로 대법제자를 돕고자 하며 정법 중에서 정면작용을 일으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이런 신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의 세계와 중생에게도 아주 좋기 때문이다. 누가 이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대법제자를 돕는다면 그는 바로 아주 좋은 일을 한 것으로 마땅히 큰 복을 얻어야 한다. 이는 법리이며 우주 중의 그런 불도신들은 모두 알고 있다. 우주 중의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의 뭇신들은 모두 다양한 배치가 있고 모두 자신의 배치가 정법 중에서 선택되고 이를 통해 구도받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아주 많은 것을 감당했고 아주 오래 전부터 했으며 아주 세밀하게 배치했다. 그렇다면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이들 신들이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물론 천방백계로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대법제자에게 주고자 하며, 자신의 것이 정법을 위해 사용되게 하고자 하는데, 이를 통해 정법에 참여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수련과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다.

매 대법제자는 모두 자신이 대법 중에서 수련할 한 갈래 길이 있고 매 대법제자가 걷는 길은 모두 다른 대법제자와 다르다. 대법제자들이 원만으로 나아가는 이 한 갈래 길은 바로 우리 자신이 대법 중에서 증오(證悟)한 도(道)이자 다시 말해 우리가 조사정법 중에서 미래 우주를 위해 개창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매 대법제자가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는가 여부는 극히 중요하다.

이 우주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 역시 하나의 생명이다. 구우주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낡은 법리가 최후의 일보에 도달할 때는, 다시 말해 이 생명이 이미 곧 안 되게 될 때다. 그렇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대법제자가 정법수련 중에서 넘어온 하나하나의 관은 인체수련 중에서 혈(穴)을 여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걸어온 매 한 갈래 대법을 실증하고 원만으로 나아가는 길은 주천(周天)을 통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대법제자가 더욱 바르게 갈수록 우리에게 열리는 길은 더욱 넓고 에너지도 강해질 것이다. 우주 이 생명 중의 한 갈래 맥 역시 더욱 밝아질 것이다. 만약 매 대법제자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면 그럼 전체 우주는 곧 하나로 연결되고 이미 안 되는 구우주의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갱신되고 무량한 중생들도 이로 인해 대법에 동화되어 구도될 것이다. 이 우주의 가장 중요한 시각에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오직 대법제자뿐이다. 미래 우주에 남겨줄 모든 길은 오직 대법제자만이 걸어갈 수 있으며 오직 대법제자만이 걸어갈 자격이 있다.

우주정법(宇宙正法)이란 이 거대한 연극 중에서 총연출은 오직 사부님뿐이며 주역은 오직 대법제자뿐으로 다른 생명은 아무리 높을 지라도 모두 안 된다.

열려서 수련하는 많은 대법제자들은 다른 공간의 고급생명을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모두 아주 수승하고 위대한 신이다. 그러나 법리로 본다면 그런 천상의 불도신은 모두 정법의 주역이 아니다. 이 호한(浩澣)한 우주 중에서 너무나 많은 신들이 내려와서 대법제자가 되고 정법 중의 주역이 되고자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이런 기회가 없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정법 중에서 이 주역과 조역의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한다. 오직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근거해 하고 대법에 따라 해야 하며 어느 신이 무엇을 말해줬다고 하여 곧 그런 신들의 배치에 따라한다면 그럼 아주 위험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신들 자체는 호의일 수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곧 정법을 좌우하려는 그런 구세력이 기회를 타게 되며 점차 대법에서 멀어지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 멀어져 사악이 자신을 훼멸할 가장 큰 구실을 잡게 되는데 그때는 후회해도 늦는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의 “자심생마”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다른 문파(門派) 중의 각자(覺者)를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오직 한 문(門) 중에서 수련해야 한다. 무슨 불(佛), 무슨 도(道), 무슨 신(神), 무슨 마(魔)이든,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대법제자는 단지 개인수련 단계에서만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反)박해와 대법을 실증하는 단계에서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대법은 불변(不變)부동(不動)하며 금강처럼 영원히 순결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대법대도는 사악의 박해로 인해 조금도 개변되지 않으며 대법제자 역시 반(反)박해로 인해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니 열려서 수련하는 모든 제자들이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 공동으로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자.

발표시간: 2012년 1월 20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2/1/20/80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