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어떻게 곤마의 교란에서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곤마의 교란에서 벗어날 것인가

작자: 대련 대법제자 혜림(慧琳)

[정견망] 일찍부터 이 문장을 쓰고 싶었지만 각종 사람 마음에 가로막혀 늘 펜을 들지 못하다가 명혜주간에서 법공부, 연공, 발정념할 때 조는 것에 관한 수련생들의 교류를 보게 됐다. 주위 수련생에게도 이런 상태가 늘 있었다.

아래에 나는 자신이 피곤에서 걸어 나오게 된 과정을 써 여러분에게 참고로 드리고자 한다. 개인이 깨달은 바로는 피곤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수련의 한 가지 내용으로서 발정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사부님 “뉴욕 좌담회 설법” 가운데 이런 한 단락 말씀이 있다.

“잠 자체는 마가 아니다. 그는 사람이 반드시 휴식하는 일종 요소로 이 역시 우주를 구성하는 일종의 것, 일종의 요소이다. 하지만 수련인으로 말한다면, 당신이 수련 중에서 잠을 잔다면 그는 일종의 마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 자체는 마가 아니지만 그는 이런 일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한다면 또 당신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의지를 당신 자신이 가서 닦아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의지를 강화하고 그것을 억제함이 바로 의지를 강화하는 것이고 역시 수련이다. 연공할 때 피곤하다는 자체 역시 사상 업력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전 세계 네 차례 정각 발정념이 시작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밤 12시 발정념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에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그저 마땅히 발정념을 잘해야 한다고만 여겼다. 밤 11시 45분(역주-한국시간 12시 45분)에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서 세수를 했는데(목적은 정신을 차리려) 여전히 흐리멍덩해 정념을 잘 발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그럼 발정념 시간까지 아예 자지 말자. 처음엔 견디기 어려웠고 특히 11시 후에 그랬다.

그래서 나는 빨래(그 때는 세탁기가 없었다)를 밤에 했는데 빨래를 하다가 책을 보곤 했다. 아니면 잠자기 전에 씻고 양치질을 여러 번 했다. 방법을 찾아 많이 활동해 정신을 차리려는데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눕지 않았고 집 안에서 오가면서 책을 보았다. 설령 집안이 썰렁하다 하더라도 나는 종래로 침대에 앉아서 이불을 쓰고 책을 본 적이 없다. 옷을 좀 많이 입고 소파나 침대 곁에 앉아 보았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경과해 나는 서서히 졸리지 않았고, 그 때의 주간, “9평”, “해체 당문화”, “장쩌민 그 사람” 등은 모두 밤 12시 이전에 보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집 상황이 특수해 낮에는 아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또 아침 연공을 하게 됐는데 낮에 휴식할 시간이 없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 시 릴레이 발정념 하느라 새벽 2시에 발정념 하지만 나를 놓고 말하면 무척 홀가분한 일이 됐다.

나는 여기에서 내가 어떠어떠하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는 그저 이렇게 실재적이고 실재적으로 걸어왔음을 말하려 할 뿐이다. 이 과정에 나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됐다.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다. 사상 중에 늘 몇 시간 자지 못했다고 따지거나 수면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초상적인 사람으로서 수련 중의 일은 모두 초상적인 이치로 가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사람의 상태이다.

사부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극복하기에 노력해야 한다. 일을 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법의 힘은 돌연히 나타날 것인 즉 그것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있기”(전법륜) 때문이다.

물론 날마다 견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조금만 태만하고 게으르기만 한다면 전철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그 의지를 당신 자신이 가서 닦아야 하지 않는가?”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사부님 한 단락 법에 대해 또 진일보 이해를 갖게 됐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 수련인에게는 안 된다는 것이 없다.

이 글을 써내는 뜻은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드리자는 것이며 부족한 점은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4월 21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print/82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