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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교향곡

작자 : 대륙대법제자

[정견망]

서곡

1996년 여름,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저녁에 우리 집 건물 아래에서 나는 학우와 한담을 하던 중, 무의식 간에 우주, 다른 공간 등 화제를 이야기하게 됐다. 그가 하는 말이 자기에게 책 한권이 있는데 책에 말한 것이 가장 전면적이라면서 간단한 소개를 했다. 들을수록 빠져 들어간 나는 이 책과 이 책의 작자에 대해 엄청 호기심이 생겼다. 학우는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 있으므로 나는 일각도 지체할세라 그를 따라 그의 집에 가서 도대체 무언지 알아보고 싶었다. 보지 않으면 몰라도 보고나니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후 학우는 내가 몹시 좋아하는 걸 보고는 나에게 빌려 주었다. 나는 보배를 얻은 듯 받쳐 들고 집에 와서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온 밤 읽었으나 졸음을 느끼지 않았다. 이 책은 나의 일체를 개변했다. “인생관, 세계관……” 이 책이 바로 “전법륜(轉法輪)”이었다.

법을 얻은 후 늘 “전법륜” 중의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단속했으므로 날마다 모두 즐거웠고, 학습, 생활. 언행에는 모두 빛으로 넘쳐나 내향적이고 비관적이며 울적해 기분 좋을 때가 없던 나를 철저히 개변시켰다.

제1악장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남을 도와주기 즐겼고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늘 “3호(三好) 학생”으로 당선됐다. 늘 학생 대표로 되어 발언했고 학습 성적도 제고되어 선생님 눈에는 좋은 학생, 가장의 눈에는 좋은 아이, 학우들 눈에는 훌륭한 본보기로 보였다.

어떤 때 나는 내 학습 등수를 매우 마음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학우가 나에게 어려운 문제 풀이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면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가르쳐 주어 그녀 성적이 제고되어 나의 등수를 앞서면 어쩌지? 그래서 나는 늘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나도 모르겠으니 선생님께 물어봐라 하고 말한다. 오래되니 마음이 괴로웠다. 이건 “진”이 아니고 “선”도 아니다. 이후에 책을 보고서야 이건 이기적(自私)이고 등수를 위한 것으로서 바로 명(名)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
정을 위하는 자 스스로 번뇌를 부르나니
고달픈 다툼에 일생토록 업을 빚는구나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요
이익을 중히 여기지 않으니 인의지사요
정을 움직이지 않으니 청심과욕이라”
(홍음-사람되기).

이후에 나는 이타적으로 다른 학우를 도와주었는데 요구만 하면 반드시 들어주었다. 시험에서도 등수가 내려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몇 명을 앞섰다. 그야말로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었다!

대학 입시가 곧 다가왔다. 내가 시험을 본 학교는 예술 학교인지라 경쟁이 치열했다. 내 마음도 몹시 긴장해 입시가 끝난 후 그 여름 방학에 매우 고생했다. 놀자고 해도 놀 수 없었고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으며 먹으려 해도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전법륜”을 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평소에는 불쾌한 일이 있을 때 책만 보면 즉시 낙관적이 되고 기뻐졌는데 말이다. 어느 날 책 속의 한 구절이 갑자기 머릿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전법륜)

나는 문득 깨닫게 됐다. “맞아, 마땅히 평소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내가 최대의 노력을 다 하기만 하면 유감이 없을 것이다. 설령 낙방된다 해도 가족, 선생님, 학우들도 꼭 이해할 것이다. 나는 이미 무척 노력했으므로 고작해야 1년 더 공부하면 될 것이다.” 학우와 식구들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왜 마음이 이렇게 한가하냐, 걱정이란 전혀 없구나.” 나는 내 생각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더니 그들도 개운해 했다. 드디어 기적이 나타났다. 2500명 가운데서 40명만 뽑는 어려운 경쟁 속에서 나는 합격됐다! 어떤 수험생은 많은 돈을 써가며 아는 사람을 찾아 관계에 의지하려 했다.

이후에야 나는 시험문제가 새어나갔다는 말을 듣게 됐다.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 전에 음악이론 시험 답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시험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시험지를 그렇게 빨리 냈으며, 나는 아직 답안을 채 쓰지도 못했는데 시험장에는 수험생이 몇 명 안 남았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아마 내가 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못했고 남보다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이후에 이런 수험생 가족은 자기 아이가 전 40명 안에 끼어들게 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며 서로 방해했다. 이후에 부정행위를 한 일이 폭로되고 성(省) 교육위원회마저 알게 되어 전 40명을 모두 떨어뜨렸다. 나는 60여 번째였으니 물론 순조롭게 합격됐던 것이다! 역시 그 한마디 법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였다.

제2악장

대학에서 나는 여전히 자신의 언행으로 “진선인” 실천을 준수했다. 군사훈련에서는 훈련 표병(標兵), 학습에서는 학습위원, 생활과 학습 중에서는 모두 이타적으로 학우를 도와주었다. 예술을 배우는 학생 가운데는 남학생이 적었는데 우리 반에는 남학생이 7명뿐이고 그 중에서 내가 생일이 가장 빨라 남학생들은 나를 “큰형님”이라 불렀고 여학생들도 덩달아 나를 “큰형님”이라 불렀다. 나는 또 가장 열정적이어서 학우들은 생활과 학습상 곤란이 있으면 나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들은 “일이 있으면 큰 형님을 찾아가라,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다”고 말한다. 매 번 방학이면 나는 모두 의무적으로 그들에게 차표를 사다 주는데 한 푼도 더 받지 않는다. 여러 번 나는 20여개 학생증을 갖고 역에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차표를 사곤 했다. 매표구에서 매표원은 내가 그에게 주는 차표 명세표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모두 학생표냐고 묻는다. 말 밖의 뜻인 즉 나를 암표상으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20여개 학생증을 내보이는데 그는 먼저는 깜짝 놀라고 다음에는 미안해서 홍조를 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모든 표를 대조 확인한 후 정확하게 나에게 넘겨준다.

대학은 작은 사회여서, 학우 사이에는 모순이 많았는데 어떤 것은 심지어 몹시 격렬했다. 한 학우는 그녀 자신의 침실에서 고립됐는데 모든 나쁜 일이 모두 그녀 탓이라 원망하면서 늘 다툼이 격렬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업신여겼고 반에서 그녀의 명예는 아주 나빴다. 나와 그녀의 피아노 연습실은 벽을 사이 두었으므로 그녀가 연습실에서 우는 소리를 늘 들을 수 있었다. 연습실 잡음이 유달리 컸으므로 일반인은 듣지 못했다. 매번 그녀가 눈이 빨간 채로 연습실에서 나올 때면, 또 그녀가 이미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다 구급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그녀를 도와줄 마음을 갖게 됐다.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내 연습실로 불렀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혐의를 피하려고, 나와 그녀는 모두 연애를 해 보지 않았으므로 나에 대한 그녀의 경계심을 줄이기 위해) 한담을 시작했다. 나는 자신이 “전법륜”에서 깨달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그녀에게 들려주었고, 책망도 원망도 없이 또 나의 생각과 사람이 되는 준칙과 관념을 그녀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완전히 죄다 그녀를 좋게 하기 위해서 그녀 정서에 따라 얘기했다. 드디어 그녀는 마음의 매듭을 풀었다. 나중에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만약 나와의 이 두 시간의 한담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자살했을 것이라고.

이후에 그녀는 자발적으로 나에게서 보서 “전법륜”을 빌렸고, 다 보고난 후에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이 책은 아주 좋다고 느끼지만 지금은 연마할 수 없다 앞으로 꼭 연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멀어져 가는 그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리 선생님의 그 한마디 말씀이 떠올랐다.

“설령 대법(大法)에 따라 수련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저한도로 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유익한 것이다. 사실 당신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이미 알았기에, 돌아간 후에 당신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대법은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제3악장

시간은 99년 7.20에 이르렀다. 그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생명 중의 모든 색깔이 순간에 회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9월 개학이 된 후,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탓으로 얼마 안 되어 학교에서 제명당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우와 선생님들은 모두 울었고 나에게서 자살을 포기하라는 권고를 들었던 그 여학생은 가장 슬프게 울었다. 그들은 학교의 결정에 몹시 분개했다. 이후에 나는 진상을 알리다 중공 경찰의 납치를 당했고 이어서 12년 징역을 언도 받았다. 그 해 나는 대학 2학년에 갓 올라갔고 겨우 21살이었다. 지루한 감옥 생활에서 나는 정신과 육체에서 모두 심한 박해를 당했다. 흑백의 피아노 건반에서 즐겁게 선율을 타던 내 두 손은 매일 14,5시간, 매년 365일, 장장 9년 동안 노역 노동에 시달렸다.

집에 돌아온 나는 서서히 정서를 정리하고 심태를 조절하면서 틈만 있으면 익숙하면서도 낯 선 피아노 흑백 건반에서 거의 잊어버린 곡을 연습했다. 일자리를 찾을 때 나는 “구함이 없이 스스로 얻는다”는 자태를 품었다. 이후에 내가 일자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나를 찾았다. 한 피아노 교실에서 교사로 있으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장은 나의 경력에 개의치 않았다.(퇴학을 당했기 때문에 대학 본과 졸업증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업을 찾았으니 아주 만족했다.

제4악장

수업하는 중 나는 여전히 자신의 언행을 “진선인” 실천으로 준수했고, 서서히 사장과 학생 학부모의 찬사를 듣게 됐다. 한 번은 한 학부모의 무리한 트집을 만나게 됐다. 나는 조용히 참았는데 표현은 아주 평화적이고 이지적이었다. 나중에 그 학부모는 나의 풍모에 몹시 탄복해 그녀 아이에게 마음 놓고 나를 따라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한 아이는 장난이 너무 심해서 다른 교사들은 맡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받아 주었다. 나의 가르침을 거쳐 그는 상을 받게 됐고 피아노를 사랑하게 됐다. 그는 나에게 그가 그린 상어그림(그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려 늘 상을 받았다)을 주었다. 연필로 그려 색깔이 없긴 했지만 아주 보기 좋았다.

또 한 장난꾸러기 학생이 있었는데 아주 총명하여 척척 배워냈다, 하지만 늘 막 배운 곡을 연습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교사들처럼 그를 비평 책망한 것이 아니라 참을성 있게 타일렀다. 이후에 아주 이기적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나의 손에 밀어 넣으면서 나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다른 선생들은 나를 아주 부러워했고, 사장마저 다 나를 우러러 보았다.

또 한 학생은 아주 개성이 있었는데 선생이 그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선생을 선택했으며, 책망할 수 없었고 어투마저 부드러워야 했다. 그는 수업에 협력하지 않았다. 나는 사제지간의 간격이 없이 그를 친구로 대했고 그는 나와 아주 친근했다. 뿐만 아니라 진보가 아주 빨랐다. 그가 전국 경연에 참가하기 며칠 전 그는 교실에서 떠들어 다른 학생의 피아노 연습에 지장을 주었다.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학생들 앞에서 그를 심하게 비평했다.(실은 당시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가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자 나도 마음이 상했다. 이제 곧 경연이 시작되는데 그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상을 받을 희망이 아주 컸다.

나는 자신의 언행을 몹시 후회했고 많은 생각을 했다. “학부모가 화를 내지 않을까” “나의 직장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앞으론 나를 좋아하는 학생이 없을거야”, “내 학생이 적으면 수입이 적어질 텐데”,…… “전법륜”을 보는 것을 통해 나는 나의 불선(不善)을 알게 됐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나는 너무 이기적이다. 그리하여 나는 선생의 틀을 내려놓고 그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학부모는 아이가 말하지 않더라고 하기에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어린애마저 참는데 나는 그래도 교사이고 또 대법을 수련하고 있지 않는가. 그야말로,,,그래서 나는 자초지정을 학부모에게 들려주었더니 그는 잘 이해했다. 나는 또 아이와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솔직하게 사과했다. 아이가 울고 나도 울었다.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고 두 마음은 더욱 가까워지고 친해졌다. 이렇게 되어 그는 가장 좋은 심태와 가장 훌륭한 상태로 전국 경연에 참가했고 돌아온 후 금상을 받았다. 나는 기쁘다 못해 울음이 나왔고 그도 몹시 기뻐했으며 학부모는 더욱 기뻐했다.

한 번은 사장이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원래 파룬궁 수련생을 아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사는 게 아무 의의도 없고 세뇌 당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와의 접촉을 통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견해에 참신한 인식이 있게 됐다.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삽입곡

나의 고모는 7.20 이전에 파룬궁을 연마했고 7.20 이후부터는 연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대법이 좋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으므로 MP3를 남겨 두고서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었다. 이 몇 년간 몸이 아주 건강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날마다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이 아홉 글자 진언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어느 날,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넜다. 그녀는 왼쪽으로 굽어들어 길을 건너 집에 가려고 머리를 돌려보니 택시 한 대가 멀리에 있는 것을 보고 시름 놓고 길을 건너려 했다. 길 중앙에 왔을 때 그 택시가 왜 그렇게 빨리 왔는지 순간에 눈앞에 다가오더니 대번에 그녀를 쳤다. 그녀는 심하게 택시에 부딪힌 후 또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차 유리가 죄다 깨지고 제동을 멈춘 후 차바퀴가 미끄러진 흔적이 10여미터나 됐다. 자전거는 즉시 볼품없이 망가졌고 길가 아파트 주택 사람마저 다 거대한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병원에 후송되어 검사했지만 피부하나 벗겨지지 않았다. 다만 진동으로 좀 어지러울 뿐이었다. 이후에 뇌를 검사해도 모두 정상이었다. 내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때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몰래 속삭였다. 그녀는 길을 건너기 몇 분전에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막 외웠다며 대법사부님이 그녀를 구해주셨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꼭 연마를 잘하겠다고 했다. 이후에 사고를 저지른 기사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돈을 보상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기사의 가정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3천 위안 의료비만 남기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남들이 그녀를 바보라고 하자 그녀는 말했다.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수하고 또 자신을 데리고 가서 각종 검사를 했다. 그의 가정이 몹시 어려운데 더는 그를 난처하게 굴고 싶지 않다. 그의 돈을 뜯어낸다 해도 그 돈은 쓰기가 쉽지 않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아직도 고려감이 있어 대법이 그녀를 구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한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기사의 돈을 뜯어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아주 큰 개변이 있었는데 원래의 반신반의로부터 지금은 완전히 믿게 된 것이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아주 대단하여 수천 수만의 나 같은 수련자와 수련자의 친척친우를 개변시켰다. 내가 대법 중에서 받은 혜택은 많고 많은데 그저 이 몇 가지 사례만 들어 대법 홍전 20주년에 삼가 드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 자신의 교향곡을 쓰고 있다. 나의 교향곡 역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발표시간: 2012년 5월 20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print/110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