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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돼”를 말함

작자 :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동수와 교류할 때, 늘 “나는 안 돼”라거나 “나는 수련을 잘 하지 못했다”란 말을 듣곤 한다. 겸허한 말이거나 혹은 이로 말미암아 잘 하려는 게 아니라 예전에 무슨 “보증서” 같은 데 서명한 것 때문에 매듭이 엉켜 있거나 아니면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 부족함이 존재해 자신이 안 되고 어떠어떠하다고 여기는데 원인은 여러 가지로 모두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마땅히 어떻게 봐야 하는가? 아래에서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말해 보고자 한다.

1. 과거를 집착함은 구세력에 대한 승인

어떤 수련생은 박해 초기에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위 “보증서”에 서명했다. 비록 나중에 엄정성명을 발표했고 법 실증도 괜찮게 했지만 늘 그것을 오점(汚點)이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면서 자책과 부끄러움이란 음영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작은 면에서 말하면 이는 집착심이다. 자신이 한때 잘못을 저지른 것에 집착함으로써 생겨난 자책과 후회심이라 할 수 있다.

큰 면에서 말한다면 이는 구세력에 대한 승인이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각 지역 설법 4 –2004년 시카코법회 설법)

그렇다면 우리가 “보증서” 때문에 생겨난 집착심에 의해 교란을 받는다면 이건 구세력이 우리를 박해하려는 목적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이건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고 또한 구세력을 승인한 게 아닌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으로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 수련 중의 부족을 감히 직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지금 그것은 이미 실질적인 의의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도 많건 적건 당신을 교란하고 당신의 심성에 영향을 주며 간접적으로 당신의 법 실증을 교란하고 있으니 설사 조그만 교란이라 해도 마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깨끗이 제거해야 하고 이 일을 이용해 내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2. 자신의 일사일념을 잘 수련하는 것을 중시해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魔難) 중에서 바르게 걷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전법륜)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

그렇다면, “나는 안 돼”라는 염두가 나올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이 일념이 법에 있는가? 정말 내가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교란인가? 이 일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을 분명히 보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대법제자는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대법제자가 안 된다고 하면 대체 누가 되는가? 잘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무엇을 잘 하지 못했는가? 사실 내가 알기에 이런 말을 하는 수련생은 줄곧 잘하고 있다. 비록 나중에 인식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 나타난 번거로움 역시 불필요한 것인 아닌가? 반대로 말해 우리는 자신이 잘한 면을 많이 본다면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나는 꼭 잘할 수 있고 나는 꼭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상유심생”을 알다시피 하나의 강대한 정념이 나오게 되면, 조사정법의 이 길에서 우리가 더욱 잘 걸어갈 수 있으리란 것은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3. 안으로 찾고 더 정진

수련인이 늘 자신을 검사해 보고 수련 중의 부족을 살펴보는 것은 확실히 수련 중에서 제고하고 법 실증을 더 잘 하기 위해서이지 그런 부족을 보따리로 여겨 등에 짊어지고 그것에 연루되려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하지 못했다 해도 괜찮다. 그럼 다음번에 그것을 잘하도록 하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라.”

“나는 당신들이 자책(自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조금도 쓸모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한 마디 말이다. 넘어졌다면 엎드려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사실 때로 우리는 사존의 법리를 모두 아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부족을 붙잡고 내려놓지 못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때때로 신심을 잃는데 그게 어디 수련인의 정념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사람 마음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사부는 사부의 방식이 있고, 그것들은 그것들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들이 빈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하며, 수련 중에서 자신을 많이 보아야 한다.”

“수련인이 안으로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法寶)이다”(2009년 DC국제 법회 설법)

내가 이해하건 대, 안으로 찾는 것은 제고를 더 잘 하기 위함이지 부담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이를 간파했으면 내려놓자!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는데 더는 자신의 과거가 어떠했다거나 지금 어떠하다는데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큰데 착안해야 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그런 부정적인 요소를 자양하지 말고 정념이 주도하게 하여 미래의 매 한 걸음을 안정적으로 잘 걸어가자.

수련 층차에 제한이 있으니 부족한 곳은 삼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8월 6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node/112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