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을 부르는 것”에 대한 얕은 깨달음
작자: 성악(醒樂)
[정견망] 대법 속에서 수련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건 사부님의 보호가 없을 때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위기에 부닥쳤을 때 긴급한 상황에서 사부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건 수련인의 정념이 강한 표현이다. 이에 대해 사존께서는 광저우 설법에서 명확히 밝히셨으며, 위기 때 사부님을 부른다는 것은 믿음과 깨달음 문제에 관계된다. “전법륜”에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오로지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은 그 한순간에 생각날 수 있으며, 당신은 곧 자신을 단속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 관(關)을 넘을 수 있다.”
수련을 십 몇 년을 했다면서 이 한 법리에 대해 오히려 잘 깨닫지 못했다. 특히 꿈속에서 나는 늘 나쁜 놈에게 쫓기지만 위기 속에서 사부님을 부를 때가 오히려 매우 적다. 그래서 어떤 때는 놀라서 깨나서도 가슴이 여전히 쿵쿵 뛰었고 꿈에서 깨고서는 늘 자신이 수련을 착실하게 하지 못했고 위기 때 사부님을 부를 줄 모른다고 자책하곤 했다. 이에 대해 나는 법공부 중에서 신사신법 방면에 대한 의식을 중점적으로 강화했다. 한 번은 꿈에 내가 넓은 곳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먼 곳에서 나쁜 놈 둘이 나에게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때 나는 이놈들이 나에게 접근하면 나는 사부님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두 놈은 두 곳으로 갈라서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사부님! 사부님!”하고 불렀다. 내가 사부님을 부르는 순간에 그 두 놈은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사부님을 부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나는 대법제자는 시시각각 사부님의 보호 속에 있으며 단지 관건적인 시각에 당신에게 신사신법하는 정념이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는 것을 즉각 알게 됐다.
이번 꿈의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공간과 “한 순간”의 법리에 대해 진일보의 이해가 있게 됐다. 이로부터 다른 공간의 진실한 존재와 “한 순간”법리에 대한 이해에 더 확고히 믿음이 있게 됐다. 또한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노인 수련생이 자동차에 부딪힌 후 왜 아무데도 다친 곳이 없는지 알게 됐다. 그건 그녀가 차에 부딪히는 순간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심성이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으므로 그 한 순간에 사부님께서 그녀의 몸을 조정해 주셨던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한 순간은 속인 공간을 앞선 다른 공간에서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련 중에 부딪힌 여러 방면의 마난은 모두 우리를 제고하게 하는 요소이며, 오직 우리가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심성이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한다면 얼마나 큰 마난이든 한 순간에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제자 정념이 강하거늘 사부에겐 회천력(回天力) 있노라”(홍음2)
개인의 깨달음이니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8월 1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