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마음을 수련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2년이라는 세월을떠돌아 다니다 결국 경찰의 박해로 생명을 잃은 길림성 노인: 11월 4일 밤 경찰은 온갖 시달림을 받아 간신히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법륜공 수련생 유순해 노인을 길림시 좌가진 마장촌 한 농가에 압송하여 주고는 가버렸다. 이 노인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돌아 왔지만 3일이 지나자 세상을 떠났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로 길림성에서는 최소 108명의 수련생이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 중 길림시는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천성 농민 장총명은 경찰에 맞아 생명을 잃었다. 진(동사무소)은 단 돈 300원을 주고 이 사건을 마무리지려고 하였다. 사천 위원현 고석촌 농민 장총명은 법륜공을 수련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교도소에 구속되어 경찰에게 맞아 생명을 잃었다. 그는집에 돌아왔지만 2003년 8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이 면의 부당서기 료영이가 장총명을 직접 때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 지역 주민을 분노하게 하였다. 고석촌 (정부사무소 0832-8122001)에서는 단돈 300원(한국 돈 5만원미만)을 가족에게 喪(상)을 치르는 비용으로 보상하려 하였다. 지금까지 사천에서는 최소 54명의 법륜공 수련생이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었고 중경에서는 24명의 수련생이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었다.
하남성 진황도시 청용현 경찰은 착한 사람을 학살하였으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14일 동안의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은 법륜공 수련생이 2003년 12월15일 청용현 구치소내에서 사망하였다. 경찰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에게 3일 내로 유체를 가져가라고 명을 내리면서 가져가지 않으면 화장을 강행하겠다고 하였다. 청용현 국보대대대장 장수군, 정보 이장흥, 유장하, 청용현 토문자 향 파출소 유연문, 진소호, 유장국등 악경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하북성에서는 최소한 86명의 수련생이 박해에 의하여 숨졌다는 소식이 확인되고 있다.
하남성 정주 18리하 교도소에서 잔혹한 형벌로 또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38세의 하남 나양현 인쇄공장 직원 법륜공 여자 수련생 원향번은 <약소이>이라는 잔혹한 형벌로 교도소에서 폐인이 된 후 2003년 9월 8일 죽었다. 통계에 의하면 하남성에서는 약 25명의 법륜공 수련생이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 중 4명이 정주시 18리하 교도소에서 죽었다. 정주에 있는 18리하 교도소 뿐 만아니라 나양 교도소, 낙양소년 수용소도 원향번에 대한 박해에 참여하였으며 그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공포로 쌓인 석유도시 대경에서 22번째로 목숨을 잃은 37세의 좌국청은 교도소에서 국가 안기부의 경찰에 의하여 시달림을 받고 수차례 생명을 잃을 위기에서 벗어나 10월3일 갖은 고생 끝에 호남성 소동현 고향에 돌아왔다. 집 사람이 그를 데리고 병원에가 검사를 받은바 의사는 그의 대장이 큰 손상을 입어 더 이상 치료 할 수 없다는 진단 결과를 내렸다. 결국 그는 10월 27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료에 의하면 그는 대경 석유회사에서 7번째 박해 받아 죽은 직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박해에 참여한 대경국과 안기국 대경 건화파출소, 대경교도소, 순화 교도소는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산동성 통전부의 정년퇴직 간부 마귀림은 임파선암으로 법륜공을 수련하여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제남시에서 불법으로 구치되어 고문과 쇠뇌등 시달림을 받아 2003년 3월 세상을 떠났다. 통계에 의하면 산동에서 박해 받아 사망한 사람은 97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조원현에서 발생한 첫 번째 사망사건 조금화 사건과 <WSJ보도>에 보도된 진자수 노인을 포함하였다. 오관정은 산동에서 임직하는 기간동안 이 성을 법륜공 박해가 제일 심한 성으로 만들었다. 10월27일 오관정은 세푸루스를 방문하는 기간 중에 법륜공 수련생에게 기소 당하였다. 기소 내용은 혹형죄, 반 인류죄 등이었다.
광동 삼수 교도소에서도 죄행을 저질렀다. 이량은 45세로서 법륜공에 대한 수련을 포기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삼수시 교도소에서 잔혹한 고형으로 생명을 잃었다. 이량은 간염에 걸렸으나 법륜공을 수련한 후 건강을 얻었다. 올해 5월30일 모명시의 610사무소 팽견,양위결, 오과, 이빈과 인사국의 요강신 등은 불법으로 이량의 집을 수색하고 그를 모명구치소에 감금하였다. 후에 부당하게 도형 강제 노동교양 3년 징역을 심판 받아 삼수시 교도소 3교도소 5대대에 있게 되었다. 경찰은 잔혹한 고형으로 그를 고문하였으며 심하게 고형을 받아 죽음에 임박하여 병원에 실려 갔으나 병세가 중하고 간이 파열되어 피가 나와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치료하였지만 결국 1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2년 전의 사건이다. 착한 사람에 대한 살인 사건으로서 정주시 화공화자 직원인 법륜공 수련자 하국중은 진 선 인에 대한 신앙을 믿는다는 이유로 정주 백묘교도소에 구속되었다. 악경의 박해로 팔 다리가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경찰은 병원에 보내지 않고 쇠뇌의 강도를 높여 하국중의 복부에 물이 차 혼미 상태까지 일으키게 하였다. 악한 경찰 한홍도, 장문중은 오히려 “죽지 않어! 죽을 려면 아직 멀었어!”라며 소리 질렀다. 집에 보내졌을 때는 이미 늦어 치료 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01년 11월 29일 그는 돌아갔다.
발표시간: 2003년 12월 25일 목요일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12/25/25074.html
문장분류: 대법진상>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