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며
작자:여나(麗娜)
【정견망 2008년 4월 8일】
나는 흑룡강성 계동현 파룬궁 수련생 유안신(劉晏辰)의 딸이다. 새해가 되어 다른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보호하에 걱정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나는 가장 그리워하는 엄마를 영원히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의 신념이 있어 파룬궁을 연마하다가 한번 또 한번 잡혀갔고, 얻어맞아 장기적으로 연공할 수 없었으며 마침내 뇌혈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았다. 고혈압, 심장병, 두드러기, 풍습병 등이 있어서 엄마는 병을 고치기 위해 집의 모든 돈을 다 썼으며 나중에는 우리가 사는 집도 팔아야 했으나 엄마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1995년에 엄마가 파룬궁을 연마하자 병은 단번에 다 나았다. 1999년 7월 나라에서 연마를 못하게 하여 엄마와 같이 수련하는 이모들은 모두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해 겨울에 엄마는 진상자료를 붙이다가 나쁜 사람에게 잡혀 간수소에 48일간 잡혀있었다. 그때 나는 겨우 6살이었으며 정말 엄마가 없는 생활은 정말 지내기 힘들었다.
2000년 여름에 엄마는 또 나쁜 사람에게 고발되어 간수소에 불법으로 갇혔다. 나중에 엄마가 말하기를, 당시 계동현 국보대대장 이청화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혈압이 200 이상 올라가고 눈이 실명되었으며 병원에 보내져 응급조치를 받았다고 했다. 아빠는 도처에서 돈을 빌려 엄마의 병을 고치려고 했다. 그 경찰은 책임이 두려워 부득불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1년 새해가 오기 전의 어느 날 밤, 파출소와 국보대대 10명의 경찰이 엄마를 강제로 데리고 갔으며 집안을 수색했다. 그들은 파룬궁 서적과 세인들이 보라고 만든 일부 진상자료를 가지고 갔다. 당시 나는 겨우 9살이었는데 돌볼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 엄마는 또 경찰에게 심하게 맞아 엄마의 혈압은 다시 300을 넘었다. 그들은 엄마를 치료한다고 병원에 보내었는데, 병원에서 그들은 또 엄마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 매일 경찰이 번갈아 지켰으며 나중에 엄마는 또 간수소로 보내졌다. 엄마는 그곳에서 또 다른 병이 생겼고 그들은 아빠에게 약을 사서 보내라고 했으나 엄마는 약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엄마를 천리 밖의 하얼빈 노동교양소로 보내려고 생각했다.
엄마의 혈압이 계속 올라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생명에 위험이 있을까 봐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이후 우리 집은 편안한 적이 없었는데, 동네 주임과 파출소 경찰들이 끝도 없이 소란을 피웠고 엄마의 병은 갈수록 심해졌다.
2003년, 엄마의 혈압은 내려가지 않아 세 차례나 뇌출혈로 입원했고 나중에 엄마는 혼미해졌다. 2004년 11월 14일 엄마는 한을 품고 나와 나의 친인들을 떠났다. 그때 나는 12살이어서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몇 년래 아빠 역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신체도 좋지 않았다. 엄마는 세 차례 간수소에 잡혀갔고, 세 차례 입원했는데, 의료비, 보증금, 벌금 등이 합해서 3만 위안이 넘었다. 집에는 빚만 쌓이고 아빠는 압력이 심해져 방법이 없어 고모가 나를 대신 키웠다. 당시 계서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비싼 학비 때문에 고모도 감당하지 못했다. 2007년 여름에 나는 또 계동으로 돌아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생활을 하기 위해 아빠는 부득불 외지에 나가 일을 하며 매월 아빠가 버는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현재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우리는 살 집도 없고 나 혼자서 생활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 모두 엄마가 없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표시간 : 2008년 4월 8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4/8/52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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