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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된 영아가 부축하여 걷다

작자 : 죽청

【정견망2008년 4월13일】

아들은 음력 6월 19일 출생했다. 아들이 태어나기 십 몇 분 전 병원 밖의 하늘에 예포가 한발씩 이어서 터졌으며, 내가 아들을 낳고 영아실로 돌아올 때까지 예포는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이 말해주었는데, 원래 네덜란드 여왕이 전 세계 야구 대회의 폐막식에 참가하러 이곳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 년에 한번 있는 성대한 일이고, 남편은 원래 초대에 참석하려 했는데, 아들이 곧 태어나려고 해서….

 

꽃차를 타고 있는 아들

아들이 태어난 지 12시간 후 우리는 전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린지 5일이 되도록 남편이 아직 거주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는데 주인이 중국인이었다.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우리 전 가족은 여기에서 반년 남짓 머물렀다.

나로 말하면 처음 해외에 온 것이었고, 또한 첫 아이였는데, 말이 통하지 않고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으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정말 돌아가고 싶었는데, 다행히 법이 있었다. 이때 바로 사악한 당이 미친 듯이 대법을 진압하기 시작했고, 나는 하루 종일 울며 귀국하려고 했다. 잠깐 동안, “아들의 출생 증명과 여권이 아직 안 나왔는데, 울어도 소용없고, 이것은 나더러 수련하라는 것이 아닌가?” 납득하게 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를 데리고 홍법을 시작하고, 그곳의 중국인에게 진상을 말했다. 나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옛날 어린이 모양으로 잘랐는데, 보는 사람마다 좋아했다. 왜냐하면 아들은 옛날 그림속의 아이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또 하얗고 통통했다. 관건은 아이에게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어, 마침 내가 입을 열어 진상을 말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원인은 아들이 태어난 첫날, 이 작은 것이 나를 물어서 정말 화나게 했다. 피가 나고 너무 아파 나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그를 한번 때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데, 아이는 여전히 웃는 것이었다. 본래 나는 귀국하려고 했는데, 아이를 낳음으로써 남아 있었는데, 아이가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아마 전세에 지은 것을 이번에 갚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처가 낫기도 전에 아이는 또 다른 쪽을 깨물었다. 우유를 주면 먹지 않았고 모유를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복분이 있어, 모유가 충분했다. 방법이 없었다. 이쪽이 나으면 이쪽을 먹고 다른 쪽이 나으면 그쪽을 먹었다. 나의 심성도 부단히 제고되었고, 천천히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될 수 있는 한 아이를 선하게 대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겨우 열흘 됐을 때, 나는 남편과 아이를 안았는데, 아이는 아주 힘을 써서 남편을 한번 밟았다. 우리는 그녀석이 힘을 써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쿠, 아이는 정말 일어섰다. 우리는 또 손에 손을 잡고 아이가 우리 손등을 부축하여 걸어가게 했다. 아마 당신은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어린 녀석은 정말 걸을 수 있었고, 이는 정말 우리를 즐겁게 했다. 아이는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매우 만족스럽게 어른처럼 행동했다. 그를 어린이로 대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그를 너무 얕본 것이다.

15일 됐을 때, 아이는 손으로 내 손가락을 끌어 두 작은 발로 조금씩 앞으로 걸었다. 우리의 문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집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당시 몇 명의 속인이 그곳에 있었는데, 모두 너무 신기해했다. 겨우 15일이라니! 일 개월이 안 되어 아이는 작은 침대 난간을 붙잡고 왔다 갔다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만 한 달이 되자 남편은 은혜를 갚으려고, 그곳 중국 음식집에서 중국인을 초청했는데, 대다수 사람은 현지에서 매우 위망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십 명 모두가 아들을 보고 마치 6개월은 된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무엇을 먹으려 해서 내가 바다가재를 부셔서 주었더니 많이 먹었다.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달라는 대로 주지 않자 곧 크게 울었다. 아이를 안고 식탁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3개월이 됐을 때, 아이는 이미 보행기에 앉을 수 있었고, 곳곳에 왔다 갔다 했다.

4개월에 말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처음 외친 소리는 “누나”였는데, 마트의 여자아이를 아주 기쁘게 했다. 나중에 우리가 늘 가는 마트에서 어느 한의사가 아이를 보더니 “너무 잘 논다, 너무 잘 논다” 고 했다.

대법의 초상적이고, 신기한 것을 나는 모두 보았는데, 이것이 우리를 정진실수하게 했다. 그런 나날 속에서 우리는 매일 신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교류했으며, 거의 하루에 3강의를 읽었다. 때로는 9강 한권을 다 읽었다. 점점 이성적으로 일체를 대했으며, 곳곳에서 모두 법으로 헤아리며 심중에는 모두 법리였다. 어린이의 증명서는 잘나왔고, 기회가 성숙되어 우리는 어린이를 데리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올랐으며, 대법을 실증하는 행렬에 참여했다.

이상은 그 중 일부분의 이야기이며, 대법이 신기하게 펼쳐 보여준 것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이 있는데, 다음번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발표시간: 2008년 4월 13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4/13/523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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