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학습반 수련생이 사부님과 함께 했던 날들을 회상
작자:장춘 대법제자
【정견망 2010년 5월 12일】
나는 사부님을 20년 전부터 알았는데 수년간 동료로 지낸 연분이 있다.
나는 일하다가 부상을 당해 어깨에 줄곧 통증이 있었다. 어떤 동료가 사부님이 대단하고 기공을 할 줄 알며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사부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사부님께서 내 어깨를 몇 번 잡아당기시자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통증이 가벼워졌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사부님과 접촉한 것이었으며 나는 사부님께서 기공을 할 줄 알고 공(功)을 내보내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그때부터 나는 새로 온 이 젊은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체격기 크셨고 늘 낡은 회색운동복을 입고 다니셨다. 직장에서는 평범했으며 특별히 두드러지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일을 하는데도 두드러지거나 뒤떨어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프로그램을 연습하는데 사부님은 삼림경찰 옛 전우들을 모두 초대해 대부대를 이루었다.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소집하여 연습했으며 아래에 돌아가 소속 단위에서 연주했다. 사부님은 공력이 높았으나 괴상한 것을 표현하거나 이런저런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셨다.
우리 직장에서는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부님께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든 병이 있어 사부님을 찾아가기만 하면 병을 고쳐주셨다. 어떤 동수는 손이 마비되어 사부님이 조정해주셨는데 손을 대기도 전에 주사로 찌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의 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신체를 여러 곳으로 나누어 한군데씩 치료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사부님의 능력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았다. 박해 이후 공산당이 사부님에 대한 거짓말을 날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불법(佛法)이나 수련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사부님께서 사당(邪黨)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건강이 나빠 폐결핵, 심장, 위장병, 관절염, 두통 등을 앓고 있었다. 병치료를 위해 기공을 연마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경우 사부님을 찾아갔다. 사부님께서는 늘 평화롭고 화기애애하게 말씀하셨다.
기공을 연마하려면 먼저 노궁혈을 열어야만 기를 받아들이거나 내보낼 수 있고 신체의 경락을 열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내 손에서 노궁혈 위치를 한번 비틀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만큼 열겠습니다. 너무 크게 열면 좋은 점이 없고 이정도면 됩니다. 당신은 삼년을 연마해도 열지 못했는데 이번에 해보세요.”
나는 사부님께 우리 아들도 기공을 연마한다고 하면서 시간이 있으시면 아들에게도 한번 열어달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흔쾌히 응낙하셨다. 2기 학습반 때 주천법을 연마할 때의 일이다. 사부님께서 아들 앞에 다가오시더니 그의 손을 들고는 손가락으로 노궁혈을 가리키시며 한번 비트셨다. 아들은 손바닥이 녹두알만큼 시원했다고 했다. 그는 아주 둔감한 편인데도 사부님께서 혈을 열어주시자 체험할 수 있었다면서 매우 격동했다.
기공을 연마하던 많은 사람들이 천목이 열렸다. 사부님께서는 내 이마를 가로로 한번 긋고 또 정수리에서 세로로 코까지 한번 그으셨다. 그러자 나는 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산근(山根)부위를 쳐다보는 천목 연마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한동안 연마하다가 하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연마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기 전에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해 주셨다. 태국에 있는 누이동생을 만나러 가셨을 때 한 노인이 사부님께 병치료를 부탁하셨다고 한다. 당시 집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사부님을 찾으며 바로 수염이 매우 길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긴 수염을 한 사람이 말했다. “내가 아니라 이 젊은 분입니다.”
그가 보니 사부님이 너무 젊어서 의심이 생겼다. “공력이 있을까?”
하지만 사부님은 그의 병을 조정해주었다.
그날 사부님 사무실에 가자 사부님께서는 원고를 쓰고 계셨는데 나중에 책으로 나올 거라고 하셨다. 그때가 91년 겨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카드와 입문증을 만드는 등 전수반을 열 준비를 하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늘 기공협회에 가서 일을 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천목이 열려 이런저런 것들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손을 뻗어 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묻자 어떤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다가 사부님 손에 부처를 받치고 있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때 나는 부처님이 사부님 손에 있다면 사부님은 반드시 일반 부처보다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조상대대로 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에 수불(修佛)수도(修道)에 관한 일을 알고 있었는데 불도(佛道)는 본래 사람들 사이에서 닦는 것이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평소 사부님 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다른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에너지가 일체를 제약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건물이 모두 이득을 보며 다 좋은 점이 있지만 그들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때는 기공을 연마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제고가 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기는 바로 기입니다. 제약작용이 없습니다.”
그때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도 그런 것을 연마하지 말고 자기의 것을 연마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본래 연마하여 신체가 다 열렸는데 어째서 다시 닫혔습니까?”
그래서 나는 사부님께 다시 한 번 열어주십사 부탁하려 했다. 사부님께서는 한참 걸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습반에 참가하세요, 돈은 받지 않을 테니.” 그래서 나는 사부님의 제2기 학습반에 참가했다.
1992년 5월 25일 저녁 6시 사부님께서 장춘시 제5중학 계단강의실에서 2기 학습반을 여셨다. 당시 200여 명이 참가했다. 2기반 수련생들은 앞쪽과 계단 위쪽에 앉았고 1기 반의 어떤 수련생들은 강의를 들으면서 연공했다.
학습반에 참가한 사람들은 노년 부인들이 대다수였다. 대개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고 다른 기공을 연마했던 사람도 있었으며 불교 거사도 많았다. 사부님께서는 두 시간 중 우선 한 시간 이상 법을 강의하셨고 그 후 공법을 가르치셨다.
관건적인 곳을 말씀하실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흑판에 글자를 쓰기도 하셨다. 당시 전반적인 기공형세는 모두 병을 제거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때 사부님은 기공이라는 형식으로 법을 강의하셨다.
깊이 강의 하시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방에 들어섰을 때 일꾼이 작은 책을 주었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연필로 연공 동작도를 그리신 것이다. 연공동작 앞에 공리공법을 소개한 것이 있었는데 <중국법륜공(수정본)>에서 말한 것보다 더 얕은 것이었다.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기제(機制)를 넣어주셨는데 매 사람의 신체 소질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넣어준 사람도 있고 넣어주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많이 넣어준 사람, 적게 넣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뒤쪽에 앉아서 자신이 어느 정황에 속하는지 몰라 사부님께 여쭤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왜 안 넣어주겠습니까? 가장 많이 넣어주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내가 당신들의 원신을 크게 조정해주었습니다. 5,6세 어린이만큼 크게 조정해주었으니 위험이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것에게 잡혀 먹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좋지 않은 것을 만나면 파룬으로 그것을 친다고 알려주셨다.
어느 날 강의하기 전 어느 수련생의 몸에 나쁜 것이 있어서 비정상적으로 표현되어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직장의 한 사람이 물 한 병을 들고 오자 사부님께서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의 몸에 안개처럼 뿜으셨다. 내가 바로 그 앞에 있었는데 내 몸까지 안개가 뿜어졌다. 그리고 나서 사부님께선 그녀의 몸을 “팍팍” 쳐서 청리해주셨다.
전에 물을 뿜어 병을 고치는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절에 가서 물어본 적이 있다. 노스님은 물을 일백일 동안 보존했다가 뿜어야 하며 방금 가져온 물을 뿜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공력이 정말 보통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운동장에서 법륜주천법을 마치고 돌아갈 때 사부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제 손 자세를 봤습니까?” 나는 주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위에서 많은 부처들이 나를 돕기 위해 내려오려고 했는데 내가 그들에게 손짓하며 필요 없으며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 일을 하는데 도와주는 부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나는 두통이 있어서 일이 없으면 곧 잠을 잤다. 강의를 들을 때도 들으면서 한편으로 잠을 잤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이 잠을 자지만 원신은 정신이 또렷합니다. 모두 머리를 내밀고 듣고 있습니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대뇌를 청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마취상태에 처하게 하셨는데 그렇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때는 어떻게 수련했는지 아직도 똑똑히 알지 못한다. 내 아들은 감각이 매우 좋았지만 어떻게 좋은지 말하지 못했다. 강의가 끝나자 사부님이 그의 앞으로 다가오셨고 그는 말했다. “사부님 강의가 정말 좋았습니다!” 사부님의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
9일 강의가 끝난 후 열흘째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수련생의 질문에 대해 사부님께서 해답 해주셨다. 한 가지를 묻자 “또 불교의 것이다”라고 하셨고 또 다른 것을 묻자 “아, 또 불교의 것이다” 고 하셨다. 그때 많은 불교도들이 이때부터 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2기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강의하는 이 건물에 기제를 넣었는데 네 귀퉁이에 다 넣었습니다. 현재 기제의 붉은 빛이 밖으로 비치고 있는데 공능이 있는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 그것을 회수하실 수 있는지 묻자 사부님께서는 “회수하지 않고 여기에 두겠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북경에서 돌아오신 후 손으로 어디를 만지면 그곳에 에너지가 있게 되며 남겨서 좋은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문제는 나중에 각지에서 학습반을 할 때도 사부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는데 아주 구식인 낡은 자전거였다. 장춘시를 한바퀴 돌면서 전체 장춘시를 한번 청리하시고 기제를 놓으셨다. “장춘시에 모두 놓았으니 어디서 연공해도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나는 다른 기공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파룬궁을 수련했으며 점점 무엇이 수련인지 깨닫게 되었다. 반년이 안 되어 원래 병이 다 나았다.
장공(長空)클럽
8월 9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사부님께서 장공 클럽에서 보고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주셨다.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했으며 친척, 친구들 누구든 병이 있는 사람은 다 갈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갔다.
그날 사부님께서 도착하신 후 들것에 실려 온 병자를 강단 위에 올려놓게 하셨는데 손도 움직이지 않고 들것에서 내려오게 하셨다. 그녀를 일어나게 하신 후 한 바퀴 돌고 또 강단에서 몇 바퀴 뛰게 하셨다. 불과 몇분만에 반신불수의 환자가 나아버렸으니 장내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내 딸은 당시 천목이 열렸는데 사부님께서 강단에 앉아 계셨고 아래에 많은 큰부처들이 사부님을 대면하고 있었다고 한다. 밖에도 큰 부처가 있었는데 건물보다 더 큰 부처였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하신 후 이어서 공을 내보내 사람들에게 병을 조정해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당장 효과를 보았다. 우리 온 가족의 신체는 모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나는 가족 중에서 조상을 “신선”을 모셨는데 알고 보니 내가 특별히 그런 나쁜 것을 불러왔고 잠잘 때 너구리가 내 코를 물어 출혈이 났다. 가족들은 모두 심장에 병이 있었다. 고향에서는 뿔이 자란 여우가 있어 그것이 뿔을 땅에 한번 비비면 사람들이 속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내가 제일 심했다.
내가 사부님 댁에 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처리해주십사 부탁드렸다. 사부님께서 응낙하셨다. 나중에 여동생의 말을 들어보니 한 마리의 독수리가 그 여우를 쫓았고 여우는 쫓겨서 셋째 여동생의 부뚜막으로 도망간 후 독수리가 물고 날아갔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그 나쁜 것을 청리해주셨다. 그때 이후 우리 가족의 심장병은 다 나았고 나중에 가족들은 대부분 대법수련으로 들어왔다.
나는 몇 년간 기공을 연마했는데 그저 동작만 공을 들여 그다지 진보가 없었다. 점차 파룬궁은 기타 기공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 특성 진선인에 동화되어야 하며 심성수련을 중시하고 연공인은 매우 높은 덕을 가져야 하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우선 뜻이 성실해야 한다.
이후 사부님께서 장춘에서 설법하시면 나는 모두 참가해 며칠 강의를 들었지만 다 듣지는 못했다. 한동안 늘 어떤 것이 눈꺼풀 위에서 뛰는 것 같았고 두 눈동자를 휘감고 돌았으며 다시 콧등 위로 기어올라 뚫고 들어가더니 콧구멍에 매달려 있었다.
사부님께 이게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사부님이 자세히 보시더니 나의 어깨를 툭툭 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좋습니다, 작은 용을 연마해냈군요.”
파룬궁을 반년 정도 연마하여 이 짧은 시간 내에 생명체를 연마해내자 사부님께서 기뻐하셨고 나도 기뻤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몸 속에 온데를 쑤시고 다녀 아픈 것도 아니고 간지러운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진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와 수련하므로 사람들은 각종 상태가 다 있었으며 그때마다 사람들은 사부님께 가서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장춘 보도원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이런 생명체는 더욱 고층차에도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수련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연환경에서 생기는 것이다. 고층차에서 수련하는 사람의 신체에서 산생되는 용 등의 생명체는 당연히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원만을 따라 고층으로 간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아시며 무엇이든 똑똑히 말씀하실 수 있다.
길림대학정문(해방대로)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가 저번에 길림(吉林)대학에서 학습반을 열 때에, 한 수련생이 길림대학 정문에서 나와 자전거를 밀고 막 길 가운데까지 갔는데 승용차 두 대가 단번에 그를 가운데 끼워 넣어 당장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일들에 부딪혀도 모두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차가 멈췄으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이 사건에서 말씀하신 인물이 바로 나였다. 그때는 1994년 5월 장춘 7기 반(주간반)이 끝나고 내가 맨 나중에 명방궁을 나와 길림대학 정문에 도착했는데 사부님께서 입구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해방대로 차도의 쾌속차선을 건넜는데 마침 자전거를 밀고 중간에 갔을 때 동서 양쪽에서 온 두 대의 차량 사이에 끼였다. 막 부딪칠 뻔했는데 차가 단번에 멈췄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천천히 인도로 가서 고개를 들어보니 사부님께서 대문 동쪽 인도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당시 나는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95년 초 <전법륜>이 출판되어 책을 보자 그것이 내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셨으며 나는 목숨의 빚을 한번 갚게 되었다.
93년 이후 사부님께서는 전국 각지에서 법을 전하셨는데 직장에 하루 종일 출근하실 수 없어 월급을 정지하는 수속을 하셨다.
95년 사부님께서 외국에 나가 법을 전하신 후로는 더는 사부님을 뵙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외국에서 돌아오셔서 지질궁(地質宮)에서 수련생들을 만나셨는데 내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자네 부친에게 안부 전해주게나.”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 하신 후 “부친에게 안부를 전해주게” 이렇게 세 번을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염려하셨고 고향 사람들과 인연이 있는 가까운 분들을 염려해주셨다.
십여 년이 지났고 나는 사부님이 매우 염려된다. 사부님의 모든 소식을 들으면서 박해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며 사부님께서 하루 빨리 돌아오시길 기다린다.
(明慧網)
발표시간 : 2010년 5월 12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12/660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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