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1997년 법을 얻어 15년간 비록 다른 공간의 신성한 현상을 보지 못했지만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는다. 때때로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를 느낀다. 수련 중에 적지 않게 신기한 일을 만났으니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수련 후 생활이 부유해지다
수련 전에 남편이 실직했고 얼마 안 되어 아이가 태어났다. 내 직장에서도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남편은 무슨 기술이 없어 잡일밖에 할 수 없어 우리 생활은 매우 고생스러웠으며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남편은 매우 조급해 돈을 빌려 장사를 좀했다. 우선 북방에서 감자를 사서 남방에 팔았는데 그 결과 오히려 두 배로 물어줘야 했다. 또 대출금을 갚기 위해 친척들에게 많은 돈을 빌렸다.
남편은 빌린 돈을 다 갚으려면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돈을 갖고 다시 일을 좀 해보자, 만일 돈을 벌면 대출을 갚는 것은 그리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리저리 궁리하고 친척 친구들에게 부탁해 금을 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서 금을 캐기로 했다. 처음에 한동안 지낼 만했는데 얼마 안 되어 원리합계도 다 물어주어야 했다. 사금장의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었는데 우리는 손해를 보았다. 이 때문에 빈곤했던 우리 가정은 설상가상이 됐다. 그 후 남편은 또 다른 사람과 합자해 장사를 했는데 무엇을 해도 다 손해를 보았다. 아이가 몇 개월 됐을 때 우유 살 돈이 없었다.
그해 음력 섣달 그믐, 시아버지가 와서 돈을 갚으라고 했다. 돈을 주지 않자 떠나지 않으셨다. 설을 쇨 방법이 없어 또 친정 엄마에게 돈을 좀 빌려 갚았다. 그 때는 정말 지내기 힘들었고 가는 곳마다 벽에 부딪혀 생활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우리 생활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때 언니가 ‘전법륜’ 한권을 보내주어 나는 단숨에 다 읽었고 이때부터 나는 수련으로 들어왔다. 마침내 이 모든 것이 인연이 있음을 알았다. 남편도 대법이 좋음을 알고 내가 대법 공부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때부터 가정이 즐거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비록 부유하지 않지만 우리는 탄연했다. 그 해에 형부가 남편을 데리고 가서 공사장에 일을 시켰으며 연말에는 1만 위안을 주었다. 몇 년간 우리 월급이 300위안 이었는데 1만 위안은 매우 큰돈이었다. 그 한 해에 모든 빚을 다 갚았다.
몇 년이 지나자 남편은 나가서 노동을 했는데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매우 높았다. 현재 우리는 월수입이 이미 1만 위안에 달하며 집도 단칸방에서 2층집으로 바뀌었다. 우리 같은 소도시에 1만 위안 월급은 매우 높다. 이것이 내가 대법을 수련하여 가져온 복이다.
비가 내려도 자전거가 젖지 않다
한번은 동수 집에 갔다가 일을 보고 오려는데 이미 매우 늦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 할 때 자전거 바퀴에 공기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공기를 집어넣으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공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해는 이미 졌고 수리할 데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시험해보자는 생각으로 해보자 이번에는 공기가 잘 들어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이 걸려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 도착한 후 눌러보니 아직 공기가 있었기에 타이어에 구멍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누군가 공기를 뺏을 테지만 별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할 때 또 공기가 하나도 없었다. 점심시간에 수리를 하러 가니 수리점 주인은 구멍이 너무 커져 이제 수리할 수 없다고 하며 타이어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태로 공기를 넣고 한 시간을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임을 알았다.
또 한 번은 아침에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직장에 돌아오니 이미 매우 늦었다. 자전거도 차고에 집어넣지 못해 그저 밖에 놓아야 했다. 아침부터 비가 좀 내렸기에 나는 자전거에 털실로 된 받침이 반드시 젖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닐을 가져 덮어씌워야 되겠다고 하며 찾아보았으나 한참 동안이나 찾지 못했다. ‘할 수 없다, 젖으면 집에 가서 바꾸지’하며 그냥 두고 퇴근해 가보니 조금도 젖지 않고 말라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전거는 모두 젖어 있었다.
한 사람이 법을 얻어 온가족이 이익을 보다
아이가 7,8개월 됐을 때 아이 아빠는 그를 안고 놀았는데 높이 들면 아이가 웃으며 좋아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를 놀리느라 하늘 높이 들었다가 잘못하여 아이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는 떨어져 크게 울었으며 남편은 놀라서 얼른 안았는데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니 그저 울뿐이었다. 그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는 사부님께서 돌보시니 아무 일이 없을 것이며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 함께 사부님의 법을 듣자고 했다. 우리가 한동안 설법을 듣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잠잠해졌다.
아이가 서너 살 됐을 때 나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아이의 큰아버지 댁에 가서 놀았다. 그 집 탁자 위에 아령이 있었다. 아이가 손을 뻗어 당기자 굴러 아령이 바닥에 떨어졌다. 꽈당하는 소리에 우리가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아이의 발가락이 아령의 두 쇠구슬 사이에 빈틈에 들어가 있었다, 만약 발 위에 떨어졌더라면 아마 크게 다쳤을 것이다.
남편은 장기간 외지에서 일하는데 작년 여름 오토바이를 타고 공사장에 갈 때 잘못해서 노변의 도랑으로 떨어져 큰 돌 위에 부딪혔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으며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는데 길 가던 사람이 그를 병원에 보내 검사해보니 다리에 외상만 입었고 다른 일은 없다고 했다. 공사장 동료들도 다른 사람이라면 뼈가 부서졌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남편이 몸에 대법 호신부를 지니고 있으니 대법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놀람은 있지만 위험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 진상을 말해주고 삼퇴를 시켰다. 남편이 오토바이를 얼마나 빨리 몰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깊은 도랑인데다 돌에 부딪혀 차는 완전히 못쓰게 됐는데 사람에게는 아무 일 없었다. 남편은 2주간 쉰 후 다시 출근했으니 기적이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우리를 따라 법을 배워 몸이 매우 건강하다. 유행 감기는 여태껏 걸린 적이 없다. 학교에서 독감이 유행하면 학급의 반이 넘는 학생이 휴가를 신청하는데 우리 아이는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아무 병도 걸리지 않았다. 아빠는 늘 외지에 일을 하고 나는 혼자 아이를 키우니 공부에 상관하지 않는다. 아이는 방과 후에 우리와 함께 법공부를 하며 학업성적도 매우 좋다. 학교 중점반에서 늘 10등 안에 든다. 아이의 학우들도 부러워한다. “쟤 좀 봐, 공부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고 우리 보다 더 잘 노는데 성적은 더 좋으니.” 그럼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아이는 파룬따파를 배워서 사부님이 지혜를 주셔서 늘 성적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준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이 최대의 복이다. 나는 대법 수련 중에 주위 친척 친구들이 따라서 득을 보았고 15년 동안 집안에 이로움을 얻은 일이 많은데 여기는 몇 가지 작은 예만 들었을 뿐이다.
발표시간: 2012년 8월 12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2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