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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간에서 집착심의 체현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하나의 진리를 알려주겠다. 전반 사람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다”라고 하셨다. 우리 대법제자는 수련 과정 중에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있으며 자기의 집착을 끊임없이 인식하여 버리고 대법에 동화된다.

그렇다면 이런 집착은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사실, 최근 몇년간 줄곧 내가 사장이 되고 우두머리가 되는데 집착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매번 주의하면서 없애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완전히 버리기란 정말이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사람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 사부님께서는 내게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여주셨다.

‘나는 높지 않은 산위에 있었다. 이 산의 사면은 붉은 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산 위에는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내가 앉은 곳이었다. 붉은 담의 높이는 내 시야를 가로막을 만큼 높았다. 그래서 나는 바깥을 볼 수 없었다. 내 손에는 문짝이 하나 있었는데 길이는 사람 키 만했고 폭은 팔뚝만 했다. 문짝은 낡고 붉은 옷칠을 했는데 마침 내 팔에 걸 수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담 속에 갇혀있는 것이 옳지 않으며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낡은 문짝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원래 대문밖에는 좌측에 그리 높지 않은 인공산이 있었고 우측에는 큰 못이 있었다. 나는 원래 문짝을 들고 인공산을 오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인공산에는 길이 없었고 기암괴석과 각종 웅덩이 등 함정이 많이 있었다. 설사 이 산을 오르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아주 큰 모험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한걸음 내디딘 후 되돌아왔다. 아울러 손에 든 문짝을 못 옆에 내려놓았다. 바로 이때 기적이 나타났다. 문짝이 순식간에 수십 미터 길이로 커지더니 못 반대쪽 언덕까지 걸쳐졌다. 그건 정말 길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했다.’

이때 문짝위에 몇 개의 생명이 나타났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가벼웠고 문짝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은 상의하더니 말했다. “봐! 그는 더는 무슨 사장이나 시장 같은 건 안할 거야!” 그 뜻은 바로 이런 것이 대법제자를 곤란하게 할 수 없으며 그것들의 이번 안배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제자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역주: 앞에서 낡은 문짝은 중국어로 사장(老板)을 의미하고 문짝이 아주 길다는 것은 시장(市長)과 발음이 유사하다. 즉 대법제자가 사장이 되고 시장이 되고자 하는 집착심을 내려놓았음을 의미한다. )

이것을 보고 나는 10여 년 전을 상기했다. 그때 나는 원래 있던 직장에서 승진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부서로 옮겨가 중생을 구도할 것인지 주저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당시 다음과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주셨다.

‘내가 고향 논밭에서 벼를 수확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3미터 높이의 사다리가 나타났다. 내가 애 써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겨우 3미터밖에 불과했고 또 작은 지역의 경치만 볼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만일 내가 눈 앞의 사다리에 집착한다면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또 멀리 보지도 못한다. 만일 내가 눈 앞의 사다리를 포기하고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새로운 높은 산을 오를 수 있고 새로운 강을 볼 수 있으며 위대한 경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대법제자가 정념을 내보내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승인하고 가지해주시며 대법제자 역시 실천 중에 소원을 이룰 수 있다.

이번에 발생한 일을 생각해보니 낡은 우주의 그런 생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교란과 파괴를 일으키며 소위 각종 고험을 배치한다. 인간세상에서의 표현은 온갖 방법으로 대법제자의 틈을 타는 것이다. 각종 이익을 비는 소원이 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역시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원인이며 수련해 나와야 제고할 수 있다.

우리 다시한번 사부님의 《대만 법회를 축하한다》 중의 설법을 복습하며 더욱 정진하도록 격려하자.

“대법수련은 역사상의 어떤 수련과도 형식상에서 모두 같지 않다. 이는 당신들에게 대법제자의 책임—인류의 관건적 역사시각에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진상을 세인들에게 전함은 보기에 간단하지만 중생의 미래에 관계된다. 이 일을 잘 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발표시간: 2013년 7월 1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9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