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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대도(佛光大道)

작자: 대법제자 증삼(曾參)

【정견망】 나는 모든 대법제자는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하지만 이 길은 기다리거나 의지해서는 안되며 사부님더러 지휘하시게 해도 안 되며 대법이 부여한 능력과 지혜로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방금 알게 된 동수 양(楊)씨와 한께 천안문 광장에 가서 대법제자가 플래카드를 펼칠 때 악경(惡警 나쁜 경찰)이 체포하는 장면을 찍었다. 양씨는 길림성 출신으로 1996년에 법을 얻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꿈에 사부님께서 대법 동작을 가르치신게 아주 오래 되었지만 아무리 해도 사부님과 대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 노점에서책을 발견했다. 책을 들어 사부님의 법상을 보고는 곧 눈물이 났다. 다 큰 어른이 책을 안고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늘 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느낀다. “당신은 일찍부터 내 제자다.”

2000년 12월 10일 우리가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 사악의 기세가 등등하여 하늘땅을 덮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광장에는 대법을 실증하러 온 동수들, 군인, 경찰, 사복 특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수들 중에는 가부좌하고 연공하거나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바른 힘에 진감되고 동화되어 머릿속에는 사람의 각종 두려움과 잡념이 없었다. 줄곧 이 기회를 이용하여 법 실증하는 장면과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동수들이 “사부님는 결백하다, 파룬따파 하오” 등의 함성을 외치면 군경과 특무들이 광장에서 멋대로 구타하거나 체포해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문득 대법을 실증하는 플래카드가 사방에 높이 걸린 것을 보았다. 그리고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치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연달아 일어났고 우리의 이 호탕한 기세에 모여 있었다. 광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대법제자로 있었으며 그들은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치는 사람, 플래카드를 펼친 사람 앉아서 연공하며 “파룬따파 하오!”를 외치는 사람. 광장의 경찰은 매일 수백 명이 있었는데 경찰이 너무 많아 광장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다 맞으며 잡혀가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광장에 있던 몇 대 경찰차는 군중을 향해 바로 달려가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갔다. 대법제자를 잡아 차에 가득 밀어 넣었다. 그 후 천안문 주변 파출소로 데려가 불법으로 감금했다.

우리는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를 두 사람 팔 사이에 끼우고 소리가 나면 즉시 몸을 돌려 찰칵 찍었다. 사람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한쌍의 연인처럼 천안문 광장을 거닐었다. 우리는 카메라의 촛첨을 맞출 수 없고 그저 동수의 함성이 들리거나 경찰의 욕설이 들리면 사진을 찍었다. 찍을 때 플래시는 터지지 않았으나 찍는 소리는 컸다. “파룬따파 하오!” 함성이 광정의 여기저기서 일어나 온 세계를 진동시켰다. 두 번째 필름을 다 찍었을 때 어느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달려와 카메라를 탈취했으며 필름을 노출시켜 못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화기로 무전기로 경찰차를 불러 우리를 잡아가라고 했다.

이때 옆에 구경꾼들이 신속히 몰려들었다. 이때 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들에게 결코 잡히면 안 된다. 나는 아직 대법일 실증할 큰 일이 많이 있다. 나는 다급한 와중에 지혜를 내어 우리를 잡으러 달려오는 경찰차 기사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들이 내 카메라 필름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너무 하는게 아닌가!.” 경찰차에 있던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했으나 나는 없다고 하며 몸을 돌렸다.

이때 광장 사이의 공간에 한갈래 불광대도(佛光大道)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야간에 비치는 탐조등처럼 그것은 내 발 아래서 광장밖으로 뻗어 있었다.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으며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여 나더러 다른 공간의 큰 길을 따라 벗어나라는 것임을 것을 알았다. 나는 양씨에게 가자고 했고 그는 즉시 알아들었다. 부득이 주위 사람들에게 빈 카메라를 흔들었다. 우리는 으쓱거리며 경찰 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눈뜨고 보는 중에 벗어났다. 그 몇몇 경찰은 영문도 모르고 눈을 크게 뜬 채 우리가 멀리 갈 때까지 쳐다보고만 있었다.

양씨는 이틀 전 찍은 필름을 내게 주었고 나는 일백 여장을 현상, 인화 했는데 밤이라 그런지 화면이 그리 또렷하진 않았다. 동수의 집에 가서 십여 장의 골라 스캔하여 떠났는데 애석하게도 남은 사진들은 끊임없이 집을 수색당하고 이사하는 바람에 유실되었다.

발표시간: 2013년 11월 2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4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