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벽우(碧宇) 【정견망】
며칠 전 나는 머릿속에 법에 부합되지 않은 많은 사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 것을 “망념(妄念)”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나는 큰 힘으로 발정념을 하여 자신의 사상을 끊임없이 바로잡았다. 그 결과 며칠이 지나자 자기 신체의 한층 두터운 껍질 중으로부터 점점 걸어 나왔으며 껍질을 부수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내 신체를 보니 전체가 수승한 법광(法光)으로 충만해 있었다.
이때 나는 또 알았다. 알고 보니 ‘법광’ 자체도 비할 바 없이 신성한 내포로 충만되어 있었다. 대법의 위덕만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바로 법광의 자신으로 말하면 역시 무한히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내포로 충만되어 있었다.
우주의 매 하나의 생명으로 말하면 대법이 육성한 것이다. 단지 생명의 개체 혹은 군체가 우주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패괴(敗壞)가 나타났고 회멸(灰滅)을 향해 걸어간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의 이번 정법은 바로 가장 순수하고 올바른 대법으로 우리를 다시금 법의 역량으로 동화하여 표준에 도달하게 하신다. 또 우리가 적극적으로 수련하고 대법의 동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수련 과정이다.
법속의 한 입자가 되고자 생각하면 사상에서나 행위상에서 대법에 부합되어야 한다. 법이 부여한 생명의 자비, 지혜 등등 여러 방면의 특징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아(舊我)와 망념(妄念) 등의 불순한 요소로 구성된 껍질에서 나오는 그 순간 마치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아는 듯하다. 다시 삼계와 인간을 보면 원래의 일체의 아름답다는 것이 그리 더럽고 무상함을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수련의 기연(機緣)이 고귀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 후 나는 그 비할데 없이 장관의 미묘한 천국세계를 보았다. 이 일체는 모두 내 당시의 심성 상태에 근거하여 출현한 것이다. 그러니 완전히 사실적인 천상의 장면과는 많은 구별이 있을 것이다.
그 천국 세계는 남색의 광환으로 둘려졌으며 남색의 빛은 그곳에 많은 종류로 나뉜다. 하지만 모두 남색이다. 그곳의 산천초목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가 풍부하다.
여기까지 말하여 나는 천상의 생명이 사는 재미있는 측면을 말해보고자 한다. 인간세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농담하는 것은 분위기를 활기차게 하려는 것이지만 나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일부러 놀리거나 희롱을 한다.
천상에서 신들이 만날 때는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신통을 드러낼 때도 매우 우아하고 신성하며 쌍방이 모두 즐겁게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당시 두 분의 신(한 분은 보련(寶蓮), 다른 한 분은 운외(雲外)라고 하는데 모두 남성 신이다)이 어느 산위에서 만나는 것을 보았다. 두 신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천상의 일과 중생의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보련의 말이 다 끝났지만 운외가 한 곳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무슨 감촉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운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보련이 좀 걱정스러워하는데 뒤에서 운외의 음성이 들렸다. “난 여기 있소.” 보련이 고개를 돌리자 운외는 손에 매우 아름답고 신선한 과일을 들고 있었다.
운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보련은 운외가 보련의 말을 듣고 있음을 알았다.(사실 천상의 어떤 경지 중에서 신이 하는 말은 ‘법’의 펼쳐짐이다) 보련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운외는 하나의 신체를 남겨 듣게 하고 다른 신체를 분체해 내어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과일을 가져온 것이다. 이때 공교롭게 발아래 한갈래의 금빛이 지나갔고 보련이 황금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운외 보시게.”
운외가 보는 순간 보련은 이미 지극히 먼 다른 곳에 도달하여 매우 얻기 힘든 희귀한 여의(如意 황궁에서 쓰던 노리개의 일종)를 가지고 돌아왔다. 운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보련의 손 위에는 그 여의가 들려 있었다. 운외는 더 재미있었다. 몸을 돌리자마자 자기는 진작 이 망망한 넓은 산중에 숨어버렸다. 보련이 그가 사라진 것을 보고 곧 대해(大海)의 용궁으로 가서 그곳의 손님이 되었다.
보련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운외가 ‘불안통(佛眼通)’으로 살펴보니 보련은 용궁에서 놀고 있지 않은가? 그도 갈까 생각했다. 그가 거의 용궁에 다다를 무렵 보련은 그가 오려고 하는 것을 알고 씩 웃으며 원래 파도가 용솟음치는 대해를 순식간에 깎아지른 높은 산으로 변화시켰고 보련은 금방 어린 아이로 변하여 그곳에서 운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측면의 글을 쓰는 것은 신의 세계는 매우 아름답고 재미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신들 사이에서 하는 일체는 시합하거나 다른 관념을 섞어 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한 층차의 법리를 나타내어 생명의 아름다움과 흥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일체를 알고 얻기 위한 전제는 우리가 평소에 우리를 진정하게 수련인으로서 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중에서 ‘무존’을 함께 한다.
무존(無存)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죽어 애석할 것 없네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발표시간: 2013년 11월 2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4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