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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 귀향길에 서약을 실현해 중생을 구하다

작자:대법제자

【정견망】

내 고향은 운남(雲南)이다. 중국내 소수민족인 우리 민족은 고산준령 사이에 은거하고 있다. 민족의 인구는 비록 적지만 역사는 유구하며 모든 사람이 불교를 믿는다. 민족의 족장은 세습되며 나는 족장의 딸이다. 어려서 하얗고 통통하여 보는 사람들 마다 좋아했다. 관상 보는 사람이 나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현재 아이가 저렇게 좋다고만 하지 마세요. 자라서 매우 먼 곳으로 시집 갈 텐데 당신이 이번 일생에 아이에게 물 한 모금 밥 한 끼 먹이기 힘들거에요.”

대략 내가 4,5 살 때 아빠 오빠가 모두 집에 없었고 그저 나와 엄마만 있었다. 엄마는 꿈에 수염이 긴 백발노인을 만났는데 키가 아주 컸으며 머리에 틀어 올린 상투가 눈같이 하얬다. 그는 모친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일어나 아이를 안고 산채 밖으로 가거라. 토비(산적)들이 곧 온다.” 모친은 펄떡 일어나 나를 안고 밖으로 달려가 숲속의 어느 곳을 찾아 숨었다. 그때 나도 깨어나서 소리를 내지 않고 모친을 따라 멀리 내다보았다. 불시에 한 무리의 인마가 불을 들고 산채에 도착하더니 한바탕 후루룩 하는 소리와 함께 온통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 후 이 사람들은 또 얼른 떠나버렸다. 다음날 산채에 돌아와 보니 십여 명의 식구들이 전부 죽었으며 건물도 모두 타버렸다. 우리는 친척 집에 의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신기한 일로 인해 게다가 나는 출신이 남달랐기 때문에 친척들은 나의 내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나를 매우 존중했다. 나중에 정말 그 관상가의 말대로 나는 매우 먼 곳으로 시집을 갔는데 고향과는 만 리나 떨어진 곳이었다. 출가 전날 밤 십여 명의 친척과 많은 다른 산채의 주인들이 다 왔으며 밤새 노래로 나를 환송해 주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이러했다.

“대나무 집 밖에서는 죽엽이 울리고 달빛이 죽엽에 비추어 바람이 나무 그림자 흔드네,

딸은 어디에 있는가? 산 높고 강은 긴데 멀리 타향 시집가니 돌아와 어머니 잊지 말고 꼭 만나 보거라.“

수십 년의 비바람이 지나고 고향에 대한 기억이 갈수록 담담해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고향에 대한 일편단심이 남아 있었다. 나는 늘 한 가닥 선이 나와 나의 민족 사람들을 묶어 놓은 것을 느낀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나와 고향친척들의 그 선이 인연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우리 민족 중 유일한 파룬궁 수련자다. 나중에 갈수록 더 알게 되었는데 내가 내륙으로 시집 간 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기 위한 것이며 내 개인이 법을 얻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민족의 대법과 관계되는 일이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곧 가족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고향에 돌아와 나의 민족 사람들에게 대법을 널리 전하는 것이 나의 최대 심원이었다. 그러나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자 나는 여러 번 불법으로 잡혀 노교소에 처해졌다. 감옥을 나온 후 고향에 돌아가 친척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려는 소원이 갈수록 강해졌다.

나는 천목이 열려 있어 과거 100세(世)의 전생을 보았다. 많은 경우 나는 이 민족과 관련이 있었다. 한번 내가 《전법륜》을 볼 때 “대각자들이 사람을 제도함에 모두 자신의 천국이 있는데, 석가모니・아미타불・대일여래 등등, 이런 여래불 그들은 사람을 제도함에 모두 자신이 주재(主持)하는 세계가 있다. 우리 이 은하계에는 이런 세계가 백여 개 있으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역시 法輪世界(파룬쓰제)가 있다.”를 보았는데 그 때 나는 우리 민족 사람들이 나와 천상에서 같은 세계에 속함을 보았는데 그곳은 흰 구름이 유유하며 푸른 수풀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고향에 돌아가 진상을 말하려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고향에 돌아오는데 기차만해도 이틀 밤을 타야하고 쿤밍에 도착하여 다시 몇 번 차를 갈아타야 하고 버스를 내려 또 삼륜차를 타야 한다. 급히 집으로 가야 했으므로 나는 밤인데도 삼륜차를 불러 나를 삼림 속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차주는 매우 주저했다. 나는 진상을 알려주고 말했다.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당신이 나를 숲으로 데려다 주면 어떤 위험도 없을 것을 보증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신불(神佛)의 가호가 있습니다.” 그의 부친이 옆에서 듣더니 마침내 말했다. “춘아야, 저 분을 태워 드려라. 내가 보니 이 아주머니는 정말 수련하는 사람이다. 진정 수련하는 사람을 위해 한번 태워 드리는 것은 우리 온 집의 복이야. 가봐라 내가 집에서 너를 기다리마.”

깊은 숲속의 밤은 매우 무섭다. 한 갈래 산길이 삼림 속에 가느다란 선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삼륜차는 캄캄한 산속에서 달리는데 문득 이따금씩 늑대나 원숭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며 바람이 불면 삼림속에서 철퍽 철퍽하는 소리가 울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일반적인 정황에 급한 일이 없으면 누구도 야밤에 산길을 가려 하지 않는다.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真善忍好)를 외우면 대법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실 거예요.” 기사는 대담해졌고 삼륜차의 등도 더 밝아졌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하고 그에게 말을 나누며 그의 두려운 마음을 없앴다. 한편 진일보로 진상을 알려주었다.

많은 산을 넘고 수십 킬로미터의 거대한 삼림을 지나 산채의 어느 여관에 도착하니 이미 새벽 한시였다. 기사는 꼭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며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이번에 아주머니를 모시는데 두렵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삼림 속의 일체의 것이 모두 우리 두 사람을 두려워하며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신이 말한 파룬궁을 정말 믿습니다.”

나는 또 그에게 9자 진언(眞言)을 외우면 사악을 멸할 수 있는 법리를 말해주었고 파룬따파하오를 믿고 가는 길에 외면 평안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삼퇴도 했으니 신불이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새벽 4시 경 내가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감사합니다. 이미 큰 삼림을 지나 집에 거의 다와 갑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그는 전화를 걸어, “매우 고맙습니다. 아버님께서 당신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십니다.”라고 했다. 또 “당신처럼 진정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보았다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면서 다시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투숙한 여관 주인과 아주머니는 우리와 함께 자란 친구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친척 친구, 또 그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많은 동창들을 알게 되었고 부근 8개 산채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사촌이 와서 맞이할 때 나는 어느 산채로 가서 친척들을 함께 모이게 했다. 사람들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처녀가 집을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며 매우 흥분했다. 많은 이들이 나를 보고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예절로 존경하는 연장자나 족장을 보면 모두 이런 예를 행한다. 나는 마음이 매우 잠잠했다. 그들이 내게 꿇어앉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세생생의 갈망하던 대법 진상이 그들에게 왔으니 그들의 본성의 일면이 감격한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사부님은 오히려 나에게 이런 영광을 주셨다. 민족의 예절이므로 나도 사양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들이 예를 행한 후 그들에게 나는 단지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보통 제자이며 여기 온 것은 진선인(真善忍) 복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수련 경력과 박해 당한 경과를 다 말해주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좋은 사람임을 압니다. 당신은 우리 민족의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내 사촌이 그녀의 산채로부터 차를 몰고 와서 나를 할머니 댁에 데리고 갔다. 이전에 이 산채에는 네 집의 친척만 있었는데 현재는 30여 호로 많아졌다. 친척들은 이미 큰 죽루(大竹樓)에 가득 들어찼으며 바깥에도 사람이 있었다. 남녀노소 함께 내 곁으로 에워쌌고 무릎을 꿇고 절하거나 껴안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울면서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 마침내 돌아오셨군요.”

근 백 명이 되는 사람들이 할머니의 낡은 대나무 집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채소를 씻고 밥을 지어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 민족은 손님을 매우 좋아하며 나같이 집을 나간 지 수십 년이 되어 친정에 돌아온 경우는 날마다 사람들이 식사 초대를 했으며 매번 5,6 군데서 초청이 들어왔다.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체면이 깎였다고 매우 화를 냈다. 어느 날 어느 나이든 아주머니가 문 앞에 와서 노래하듯이 큰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세상에 어느 노파가 거짓말을 하겠소. 내가 그녀를 다섯 번 불렀는데 한 번도 오지 않았소. 내가 다시 초청하는데 또 거짓말을 하면 믿겠소? 그녀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요!” 하고는 웃었다.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우리 민족의 이런 관습은 무슨 일이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어떤 일이든 모두 노래 소리로 표현하는데 보면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거의 백 살이 다 되어 가는데 귀가 먹었다. 나를 보자 정신이 들어 보자마자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큰 손녀가 오는구나!”하며 노래를 불렀다. “큰 손녀가 좋구나 좋아. 큰손녀는 우리 민족의 금원보(金元寶)야.”

80이 가까운 노부부가 있었다. 친척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네댓 번 왔으며 꼭 자기들 집에 초청하겠다고 했다. 나는 선물을 들고 그들의 죽루로 갔다. 그들은 매우 기뻐하며 탁자에 바나나와 과일을 차려놓고 차를 따랐다. 노인은 감격하여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몇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너를 많이 생각했단다.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우리를 잊지 않았어, 우리 민족의 좋은 딸이야. 네 복 덕택에 우리가 평안히 지내고 있어.”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주자 두 노인은 울기 시작하며 말했다. “우리는 네 말이 다 진실임을 안다. 네가 우리에게 준 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 오랫동안 외지에 있으면서 바로 우리에게 경을 가져다 주었구나.”

어느 날 정오 내가 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가 머리를 툭 치며 또 욕을 한마디 했다.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허리가 굽은 80대 노인이었는데 눈이 크고 입술이 안으로 말려 보기에 이빨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는 내 손을 끌고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치며 말했다. “너 잊었구나! 나를 잊었어. 날마다 너를 기다리며 생각했는데. 하지만 너는 돌아와 우리 집 옆에 있으면서도 보러 오지 않는구나. 네가 어렸을 때 어느 날 폭우가 내려 내가 너를 업고 나무 아래로 피했지. 너는 업히지 않으려고 내 어깨를 깨물었지. 내가 누군지 알겠니?” 그가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나도 울며 말했다. “오라버니 생각났어요. 미안해요. 오늘 꼭 댁에 가서 뵐께요.” 뭐라 말하려 하는데 목구멍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 나는 선물을 들고 그의 죽루로 갔다. 노인은 매우 기뻐하며 나를 온가족에게 소개했다. 가장 풍성한 반찬으로 나를 대접했다. 나는 그의 온가족에게 파룬따파와 박해받는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모두 들었어, 네가 박해받아 고생을 했다고. 공산당은 나빠. 우리 나를 당원에서 퇴당시켜주렴. 이후에 네가 돌아와 우리를 보겠니.” 내가 말했다. “꼭 돌아와서 찾아뵐께요.”

이 오라버니는 매우 선량했다. 내가 진상을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고 들으면서 끊임없이 말했다. “파룬궁은 정말 좋아. 공산당은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니 겁이 나서 반대를 하는 거지.” 나는 그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우선 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먹거나 점유하지 않아요. 사부님께서는 심성 수련을 가르치셨는데 내 것이 아니면 가지지 말고 자신의 것이면 잃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이치야! 파룬궁은 정말 좋아.”

어느 날 점심 때 내가 어느 친척 집에 가다가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 그래서 집집마다 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우리 사람은 모두 이런 규범이 있는데 누가 물건을 주워 아무도 가지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 것이 됩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수련인이니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지갑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걱정이 되겠어요.”

내가 오빠를 만나 지갑에 관한 일을 말해주자 그가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백 위안짜리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고 카드도 2장 있었다. 그가 자세히 보고 세어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아, 이건 내 지갑이군. 천위안에다 카드 두 장이 있으니 족히 수만 위안의 돈이 있지. 파룬궁과 리 스승님께 고마워. 나는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더욱 믿어.”

오빠의 여섯 째 아들이 현에 입원했다. 그는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점심 먹는데 그가 돌아왔다. 인사를 하고 나서 그가 말했다. “1주일 동안 밥도 못 먹고 물만 마셨어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고모 말을 들어, 우리 함께 밥을 먹자.” 나는 밥을 먹으면서 대법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다. 밥을 다 먹고나서 그가 말했다. “정말 너무 편해졌어요, 병원에 있어도 치료하지 못했던 병이 고모 이야기를 듣자 다 나았어요. 몇 년 간 이렇게 즐겁게 밥을 먹어보지 못했어요.”

나는 조카와 함께 그의 집에 갔다. 그에게 진일보로 진상을 말해주었다. “지금 사람은 도덕을 말하지 않고 오로지 돈만 말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고 손해를 끼친다. 신과 부처는 없는 곳이 없어 누가 나쁜 짓을 하면 모두 갚아야 한다. 온가족의 평안을 위해 이후부터 진선인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 공산당은 나쁜 짓을 하여 하늘이 멸하려 하는데 만일 네가 그것과 같은 일원이라면 하늘이 그것을 멸할 때 같이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니 평안을 위해 반드시 삼퇴해야 한다.”

내가 그에게 지갑을 주운 일을 말해주자 그가 말했다. “고모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나쁜 짓을 하나 했어요. 작은 딸이 방과 후에 지갑을 주웠는데 확인해보니 이천 위안이 넘었어요. 내가 그 돈을 다 썼어요. 3개월도 안되어 딸이 전신에 황달이 생기고 힘이 없어졌어요. 병원에 입원해도 안 되고 지금 삼년이 넘었고 치료비만 해도 많이 썼어요. 아이는 지금 학교에도 다니지 못해요.”

그래서 아이를 불러 오라고 했다. 아이가 온 후 진상을 말해주고 9자 진언을 외우라고 했다. 아이는 조용히 듣더니 잠시 후 정신이 확 돌아온 것 같았다. 나중에 날마다 뛰어와 우리와 함께 지냈는데 이렇게 말했다. “고모와 함께 있으니 너무 편안해요.”

작년 여름 오빠의 이 아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큰 고모 고마워요. 리 사부님께도요. 그제 차를 몰고 가다 산꼭대기에서 뒤집혔어요. 차가 다 부서졌는데 나는 차에서 튀어나와 강물에 떨어졌어요. 길 가던 사람이 나를 병원으로 보냈는데 하루가 지나서 깨어났어요. 의사가 검사해보니 하나도 다친 데가 없고 그저 눈꺼풀에 작은 상처만 생겼어요. 소형차는 다 망가졌는데 보험회사에서 배상해 준 돈이 새 차를 살 정도가 되었어요. 의사도 어느 귀인이 나를 보호해주어 난을 피할 수 있었고 큰 복이라고 합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을 알아요. 반드시 사람들에게 말해줄 것이며 그들에게 파룬따파 하오, 진선인하오를 기억하라고 할께요. 리 스승님께서 생명을 구해주셨으니 감사드려요.”

비록 지금은 교통이 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산에서 꼬불꼬불 도는 길은 정말 겁이 난다. 산속 길은 매우 험준하며 어떤 것은 정말 우뚝 솟은듯하다. 내가 다른 산채에 가서 친척에게 진상을 말하려고 할 때 젊은 사람이 나를 오토바이를 태워 주었다. 나는 비록 60대가 되었지만 내 책임을 생각하고 진상을 기대하는 중생을 생각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나의 사촌 올케는 숨을 헐떡거렸다. 그녀를 앉으라 하고 함께 9자 진언을 외웠다. 반시간 후 그녀가 말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편안하고 가벼움을 느껴 전신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아. 또 무엇이 몸 밖에서 돌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정말 인연이 있네요. 이건 좋은 일이니 파룬따파를 잘 믿어보세요!” 그녀는 침실로 들어가더니 두 손으로 쟁반을 받쳐들고 나왔다. 쟁반에는 몇 개 향과 노란 베로 싼 사례금이 들어 있었다. 두손으로 쟁반을 받들고 이마 높이로 하여 내 앞에서 꿇으며 말했다. “나를 도와 재난을 없앤 것은 당신의 덕택입니다. 파룬따파에 감사드리니 이 성의를 꼭 받아주세요.”

나는 말했다. “우리 사부님은 위대하고 자비롭습니다. 우리에게 돈을 받지 말고 사람을 제도함에 명예와 이익을 따지지 않으며 무사무아(無私無我)하라고 하셨어요. 모두 스승님께서 하신 일이고 그저 파룬따파가 좋음을 믿기만 하면 평안해질 것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선물을 받았으면 했다. 나는 또 이 일체는 대법 사부님이 주신 것이니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대법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진수제자가 되겠습니다.”

그가 행하는 이런 예절은 우리 민족이 융성한 기념일에 신불에게 경배하거나 특별히 감사하는 은인을 만났을 때 행하던 예절이다. 나는 이런 일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나는 일일이 거절했다. 그들은 말했다. “돈을 받지 않으시면 특산품이라도 가져가세요.”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그저 그들에게 9자 진언을 외우라고 부탁했다.

어떤 친척은 내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나를 보러왔다. 그들은 많은 경우 7,80세 정도며 많이 늙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만 하면 모두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가는 장소마다 파룬따파는 좋다. 수련인은 진실한 말 바른 일을 하며 속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잘해주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심성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네 말을 들으니 모두 사실이다. 공산당 말은 다 거짓이다. 파룬따파는 불가(佛家)의 공법이며 우린 모두 부처를 믿으니 이후에 반드시 파룬궁을 믿으며 리 스승님을 믿는다.”

내가 산채에 갈 때마다 많은 아이들이 둘러쌌으며 학교 가기 전에 인사하고 방과 후에 나에게 먼저 와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늘 산에 가서 꽃을 따가지고 왔는데 온갖 색이 다 있었다. 그들도 진선인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했다. 어떤 아이는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할머니 얘 이름이 무엇인데 아직 퇴단하지 않았어요.

때로 나도 친척과 함께 삼림 속으로 나물을 캐러갔다. 산속의 공기는 매우 시원하고 각종 꽃이 경쟁적으로 피어 있었다. 내가 천목으로 보니 나무며 풀이며 꽃이며 모두 내게 달려와 진상을 들으려 했다. 나는 그것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모두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해라. 두 그루 나무가 매우 기뻐했는데 다른 공간에서는 그것들은 사람의 형상을 나타냈는데 매우 늙었다. 내가 그들 둘에게 진상을 말해주자 그들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6천년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진상을 들었군요”.

어느 날 시장에 갔는데 맞은 편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자세히 보니 낮은 익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쌀국수 팔던 사람이야, 잊었어?” 그러자 생각이 났다. 그후 그녀에게 내가 시댁에서 진정한 불법을 얻었는데 바로 중공이 박해하는 파룬궁이며 내가 십여년을 수련했으며 이번에 돌아온 것은 사람을 만날 뿐 아니라 대법을 소개해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나를 잡고 울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다른 민족 사람에게도 진상을 말해주었다. 어느 날 조카의 친구가 그를 찾아왔기에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3퇴시켰다. 조카가 돌아온 후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이제 방금 새집을 샀는데 조카를 초청한다고 했다. 그리고 조카에게 말하기를 큰 고모 정말 좋으시며 함께 오시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사촌은 한주일 동안 나를 떠나지 않고 수련 공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가부좌를 한 적이 없었으나 시작하자마자 30분간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하니 매우 편안하고 아파도 하고 싶으며 내려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리를 튼 후 온 몸에 힘이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9자 진언을 외웠으며 호신부를 지니고 늘 내려놓지 않았다.

고향에서 아는 사람이면 모두 찾아가 진상을 말하고 삼퇴 시켰다. 물론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만나서 말을 건네면 모두 친근함을 느꼈다. 모두 고향 사람이며 같은 사투리를 쓰고 풍속이 같아 진상을 하기가 쉬웠다.

나는 어느 동창이 월남과 이웃한 어느 작은 성내에 산다는 말을 듣고 전화로 연락을 하고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소도시는 야자 숲 속에 있는데 길옆에 붉은 열대 나무인 번지화가 많았다. 이곳은 어느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동창의 딸, 사위는 모두 이곳 현의 간부였다 그들은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대나무 밥통과 죽을 대접하고 그곳의 경치를 구경시켜주었다. 가는 길에 나는 수련 후의 변화와 대법의 좋은 점 사당의 죄악을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들 전가족 9명이 모두 순조롭게 삼퇴했다. 동창의 아들은 병이 있었기에 끊임없이 9자 진언을 외웠다.

고향에서 지낸지 한달이 넘게 훌쩌 지나갔다. 나는 매우 감격했다. 고향 사람들은 순박하게 손님을 좋아하고 특히 파룬따파를 믿으며 거의 아무 간격도 없어 마치 그들은 내가 와서 그들에게 알려 주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다음 날 내가 떠나야 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시 한번 그들을 보러 오라고 부탁했다. 또 어떤 사람은 돌아와 노인을 모시라 했다. 저 산에 있는 차나무를 모두 주어 이 도시에서 사는데 잘 살 수 있도록 보증하겠다고 했다.

달이 솟아올랐고 우리 민족의 노래도 시작되었다:

파룬궁 진상을 들으니 마음속에 등불이 있구나.

일생 동안 다투며 고생했는데 9자 진언을 마음에 기억하네.

내일 기차 경적 울리면 언니는 길 떠나니 오늘 밤 과일을 드시게

언니 새소리 들리면 그게 고향에 돌아오라는 소리라오.

야자수가 열매 맺으면 즙도 많은데 고모가 돌아와

사람을 구하고 원만공성하여 불과를 맺기를….

발표시간: 2013년 12월 2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5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