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병업’에 관한 약간의 견해

【정견망】

대법제자에 대해 소위 ‘병업(病業)’의 교란이 비교적 엄중하다 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을 말하자면 매년 ‘병업’의 교란이 있었고 심지어 육신이 끌려갔다. 최근 몇몇 동수들이 교란받아 병원에 입원했고 또 육신을 잃었다. 이런 교란은 당사자 본인에게 손실인 동시에 중생구도에도 상당한 손실이다.

사이트에 ‘병업’에 대한 교류문장이 아주 많은데 대체로 ‘병업’이 조성된 원인은 구세력의 박해설, 사악이 틈을 탔다는 설, 자신에게 누락이 있다는 설, 구세력과의 서약이 있었다는 설, 역사상 빚이 있다거나 가상의 고험이 있다는 설 등이다. 귀결해보면 주로 두 방면인데 하나는 표면적인 원인이며 다른 하나는 심층의 원인이다. 물론 성공적으로 관을 돌파한 경우도 많지만 관을 넘는데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자면 병원에 입원한 사람, 이후로 수련하지 않는 사람 또는 육신을 잃은 사람 등인데 전체적으로 손실이 매우 크다.

‘병업’의 교란에 대해 개인이 관을 넘는 외에 일반적으로 많은 동수들이 병업이 있는 동수와 함께 법공부, 발정념, 안으로 찾음 등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병업’을 조성한 원인이 어떤 사람에겐 간단하지만 어떤 사람은 복잡하다. 어떤 사람은 정념이 강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정념이 부족하며 게다가 매 사람마다 수련의 길이 달라 관을 넘는 효과도 다르다.

안으로 찾는 것도 어떤 사람은 한번 찾으면 효과가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한동안 찾아야 효과가 있고 어떤 사람은 날마다 찾으며 어떤 사람은 한 무더기나 찾아도 효과가 없다. 때문에 다른 설이 있다. 누락이 있어도 박해를 불허한다. 수련 중의 사람이 어디 잘못이 없을 수 있는가, 누구든 사람마음이 없을 수 없으니 수련인이 다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것이다. 발정념을 하고 안으로 찾아봐도 효과가 없으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 하며 또 적지 않은 엘리트들이 육신을 잃었다.

‘병업’에 대해 나는 우리가 마땅히 관념을 철저히 개변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수련인은 병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병이란 것을 승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동수는 내가 감기에 걸렸다, 바람을 맞았다고 한다. 어떤 동수는 당뇨병이 있고 어떤 동수는 뇌혈전이나 암에 걸렸다는 등이다.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속인이 병에 걸린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초상적인 사람으로 병근(病根)은 이미 사부님께서 떼어버렸고 우리는 대개 수련을 십여 년 혹은 20여 년 해왔다. 그렇다면 어디에 무슨 병이 있단 말인가 ? 이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문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에서 “당신이 ‘병’이란 이 글자만 제기해도 나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다른 설법에서 우리는 진수(眞修)하는 사람은 병이 없음을 알고 출세간법에 이르면 병업이 없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어떤 동수에게 병이 있다면 이는 세간법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가령 정말 세간법을 벗어나지 못했으면 당신이 수련 원만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1999년 7월 20일 우리를 제 위치에 밀어주셨는데 어찌 아직도 세간법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과위 중에서 수련중이며 다만 수련이 결속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사명은 중생구도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위덕을 건립할 기회를 주셔서 장차 더 큰 과위를 성취하게 하시려는 것이지 결코 개인의 일반적인 원만이 아니다. 당신은 우리가 세간법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려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전혀 병이 없는 것이다.

아마 어떤 동수는 말할 것이다. “그 암이 거기서 자라는데 그것이 병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며 가상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육안으로 보는 탁자는 움직이지 않지만 탁자를 만든 분자는 오히려 꿈틀거리고 있다. 육안으로 본 것은 가상이 아닌가?

예를 들어보자. 어느 동수의 얼굴에 좋지 않은 것이 생겼다. 다른 동수가 “당신 얼굴에 뭐가 자라나요?”라고 묻자 그 동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옆의 동수가 또 몇마디 캐물었지만 그동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결과 병이 날개달린 듯이 없어져 버렸다. 표면적으로 보면 동수는 무슨 병인지 인정하지 않은 것이며 마치 눈뜨고 뻔히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을 부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을 인정한다면 표면 공간에서 정말로 될 것이며 교란받은 동수가 근본적으로 병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사부님께서는 7.20 이래 우리에게 병업을 안배하지 않으셨고 그것은 단지 우리에 대한 사악의 박해일 뿐이다. 왜냐하면 구세력과 기타 생명은 우리가 원만하지 못하게 하려고 소위 ‘고험’이란 명목으로 우리를 박해해 그것들이 중생을 훼멸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사당(邪黨)을 시켜 우리를 박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병업’으로 박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고험할 자격이 없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철저히 부정해야 하며 행위상 더욱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병’이라는 관념에서 철저히 부정해야 하며 용어상에서도 교란으로 박해받는 동수가 이런 병 저런 병이 걸렸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병업이란 말도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한다. 대신 육신의 박해나 부정확한 상태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신수련생의 소업은 제외). 이는 개인의 인식이다. 우리는 사상적으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병이 없음을 인식해야 하며 우리 육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고 중생구도에 대한 교란을 부정해야 한다. 물론 평소 늘 자신을 잘 수련하고 층차를 제고하여 우리에 대해 법이 요구하는 표준을 제고하며 정념정행해야 사부님께서 비로소 우리를 도와 박해를 해소하실 수 있으며 중생 구도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얕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과 보충을 바란다.

http://www.zhengjian.org/2016/02/17/151187.关于“病业”的一点浅见.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