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이천검(伊天劍)
【정견망】
중국에서는 예부터 좋은 일에는 길조(吉兆)가 있고 나쁜 일에는 흉조(凶兆)가 있다고 한다. 우선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다. 방통(龐統)과 유비(劉備)가 촉(蜀)을 취했다. 7월 7일 모든 병력이 낙성(雒城)을 공격했고 방통은 유비와 길을 나누어 행진했다. 방통이 병사를 이끌고 간 곳은 두 산 간격이 매우 좁고 잡목이 우거진 곳이었다. 방통이 지명을 묻자 한 병사가 “낙봉파(落鳳坡 봉이 떨어지는 언덕)”이라고 대답했다. 방통은 속으로 ‘나의 도호가 봉추(鳳雛)인데 이곳 이름이 낙봉파이니 내게 불리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각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때 방통은 이미 함정에 빠져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문득 언덕 앞에서 포성이 들리더니 화살이 비 오이 쏟아졌다. 36세의 방통은 이렇게 가련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칠석날 제갈공명은 형주에서 유비, 방통이 촉을 취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문득 서쪽 하늘에서 콩만한 별이 나타나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며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명은 대경실색하고는 얼굴을 가리며 통곡했다. 사람들이 원인을 묻자 공명이 말했다. “오늘 밤 서쪽 하늘에 별이 떨어진 것을 보니 방사원(龐士元 방통)의 명이 다 끝난 것 같구나.” 며칠 후 편지가 도착했는데 공명의 말대로였다.
제갈량과 방통은 모두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를 아는 기인이사(奇人異士)다. 두 사람은 각자 천상(天象)을 볼 줄 알았다. 방통이 본 천상에도 흉조가 있었으나 그는 다만 그 흉조가 다른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방통에 대응한 별이 떨어진 것은 바로 자기 신상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제갈량은 정확히 보았으니 ‘천인상응(天人相應)’ 설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에 나오는 일화다. 조개가 장군과 병사를 이끌고 증두시를 공격했다. 송강은 사람을 데리고 금사탄에서 조개를 위해 송별연을 베풀었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한가닥 광풍이 불어와 조개가 새로 만든 군기(軍旗)를 부러뜨렸다. 사람들이 보고서 다 실색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이 이제 출군하시는데 바람이 불어 깃발을 부러뜨린 것은 불리합니다.” 조개는 듣지 않고 증두시 공격을 고집했다. 결국 얼굴에 독화살을 맞아 중독되어 죽었다.
중국 고대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매우 많은데 특히 유명인일수록 더 그랬다. 근대에도 이런 일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1976년 3월 8일 길림성에 운석우가 내렸다. 특히 3개의 큰 운석이 떨어진 소식이 세계로 전파되었다. 모택동(마오쩌둥)을 옆에서 수행하던 맹금운(孟錦雲)이 신문을 주면서 보라고 했다. 그러자 모택동은 맹금운에게 “역사상 수많은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전조가 있었다. 이것은 바로 ‘천인감응’이다.”라고 했다. 또 “인간 세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대자연에 표시가 나는데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며 길조와 흉조가 있다.”라고 했다. 과연1년 안에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 중공의 3마두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런 조짐이 전부 같을 수는 없다. 일부 예측은 상당히 신비하여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이 사망하기 전 운석 하나가 동군(東郡)에 떨어졌다. 운석에는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시황제가 죽고 땅이 나뉜다”는 뜻이었다. 진시황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어떤 사람이 고의로 새긴 것이라고 생각하여 즉시 운석이 떨어진 곳에 사람을 파견하여 글자를 새긴 사람을 집집마다 조사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분노한 진시황은 명령을 내렸다. “운석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글자가 새겨진 이 운석을 불태워라.” 돌을 비록 태워 없애버릴 수 있지만 표현된 하늘의 뜻은 이미 온 천하에 퍼졌다. 다음해 진시황은 순시하다가 갑자기 사망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또 한 가지 큰 징조가 나타났다. 2008년 복건성 하문(廈門 샤먼) 지메이대교(集美大橋) 개통식 직후 장쩌민(江澤民)이 쓴 비석이 지메이대교 양단에 세워졌다. 그런데 올해 2월 29일 장쩌민이 쓴 ‘지메이대교(集美大橋)’란 한백옥(漢白玉) 비석이 부서졌다. 절반이 풀밭에 떨어져 난간을 부수고 오른쪽 차로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 비석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태풍,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도 없었다. 그럼에도 비석이 저절로 갈라졌으니 이는 분명 하늘의 뜻이다.
여러분 알듯이 한백옥(漢白玉)은 매우 단단하다. 역사상 한백옥으로 만든 비석이 7,8년 만에 갈라진 일은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장쩌민이 누구인가? 그가 제사(題詞)를 쓰는데 사용한 한백옥석 재료는 중공 내부에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고르지 않았겠는가.
세계에 그렇게 많은 비석이 있는데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머리말을 쓴 비석은 말할 것도 없고 옛날 사람들이 쓴 비석도 갑자기 갈라진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장쩌민은 아직 살아 있는데 이 비석이 갈라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생각해보라, 이는 하늘이 내린 큰 흉조가 아닌가?
하문은 현재 중공의 주석 시진핑이 한때 통치했던 곳이다. 지금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중공 고관(호랑이)들 중 자명한 사실은 아주 많은 파벌을 만들던 고위 관료들이 나가 떨어졌다. 그들이 정변을 일으키려 망상했기 때문이다. 중공 매체에서 늘 말하는 호랑이는 바로 중공 전 두목 장쩌민이다. 오늘 마침 하문에서 장쩌민이 머리말을 쓴 석비가 갈라졌으니 이는 둘의 싸움에서 필연적인 결과를 하늘이 미리 알려주는 것 같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장쩌민은 국제 사회에서 “어릿광대”로 불렸다. 그 뜻은 너무나 뚜렷하다. 국가주석이 그렇게 불리는 것은 그가 어릿광대라고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거들먹거리길 좋아했다. 그가 제사를 쓴 숫자는 중공 역대 두목들 중에서도 일등이다. 이번에갈라진 석비의 한쪽은 “집미대(集美大)”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교(橋)”와 “장쩌민(江澤民)”이 있다. “집미대(集美大)”를 거꾸로 읽으면 바로 “大美集(=臭美 잘난척한다는 뜻. 역자 주)”인데 바로 읽던 거꾸로 읽던 모두 이 어릿광대가 잘난척한다(臭美)는 것을 조롱한다.
“교((橋)”는 “초(瞧 보다)”와 발음이 같은데 바로 사람들이 장쩌민의 말로를 본다는 뜻이다.
장쩌민 석비가 갈라진 소식은 신속히 매체에 보도되었으며 인터넷에서 의논이 분분하다. 중공 선전부는 당일 석비가 갈라진 것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고 정치 요언을 퍼뜨리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렇다면 중공이 소문을 피하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진시황이 요언을 피하기 위해 운석이 떨어진 지역 주변의 백성을 모두 도살했지만 멸망의 운명을 막을 수 있었는가? 이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장쩌민의 수치스러운 말로에 근거를 찾지 말라. 우리 함께 장쩌민의 말로를 지켜보기로 하자.
http://www.zhengjian.org/2016/03/20/151691.江鬼下場如何,且看實話石說.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