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중국대법제자
【정견망】
지난 몇 년간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면 사부님께서 늘 제자를 가호해주셨음을 깊이 느낀다. 제자는 마난 중에 한걸음씩 걸어왔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적지 않은 이익이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대표해 사존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오늘 이글을 써내는 이유는 주로 식구들이 몇 년간 받은 이익을 써내어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다.
1999년 7월 20일 사악은 나를 불법적으로 박해해 벌금을 물리고 월급을 중지시켰다. 당시 나와 온 식구들은 월급 1,100 위안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었다. 아내의 직장은 불경기로 월급을 주지 못했다. 나는 또 대법표어를 썼다는 이유로 월급이 깎여 매달 200위안만 받았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나는 친척들에게서 돈을 빌렸다. 아내는 근처 인쇄공장에서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붙이는 일을 했는데 한 장에 겨우 0.1위안이라 하루 종일 바삐 일해봐도 7~8위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는 회사 공회(노동조합) 대표로 뽑혀 매월 800 위안의 월급을 받았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시급한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내는 또 문맹이라 글을 잘 못쓰는 데도 노조대표가 되었으니 이는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 모두 사부님의 안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한 후 집에서 1년간 쉬다 겨우 2001년이 되어서야 직장을 배치받았다. 아들이 삼일을 출근했는데 정치부에서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이는 나더러 수련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 사장님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나는 생산직 간부로 회사를 위해 큰 공헌을 했고 직장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사장님도 출신성분이 좋지 못해 문화혁명 기간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다)
사장님은 정치공작을 담당하는 부서기(파룬궁 박해 담당자)를 붙잡고 말했다. “부모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그 자녀의 일에까지 영향을 줄 필요는 없소.” 이래서 아들은 또 직장에 나가게 되었고 사무실에 배치되었다. 현재 아들은 회사 중견 간부가 되었다.
아들은 출근 후 업무상 필요에 의해 돈을 빌려 오토바이를 샀다. 겨우 5,6일 정도 탔는데 누가 훔쳐가 버렸다. 아들이 돌아와 울면서 말했다. “누가 오토바이를 훔쳐갔어요.”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훔쳐갔으면 타지 않으면 되지. 이제 잃어버릴 일이 없으니 오히려 좋지 않니?” 당시 나는 이 역시 구세력의 안배이며 내가 마음을 움직이는지 아닌지 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익에 대한 마음을 버리게 한 것이다. 결국 4~5개월이 지나 오토바이를 되찾았다. 사정은 이랬다. 오토바이를 훔친 범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길거리에서 날치기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도망갈 수 없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버리고 도망갔는데 이 오토바이는 파출소에서 장물로 여겨 몰수당했다. 새 오토바이인데다 번호판도 없었으므로 파출소에서 공용 오토바이로 삼았다. 어느 민경이 이걸 타고 직장에 가서 일을 보다가 아들이 우연히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이건 분명 잃어버린 물건이 원주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매우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연이 아니다!
딸이 중학교 일학년 때의 일이다. 2001년 사악이 미친 듯이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파룬궁 비판에 서명하라고 했으나 딸이 거절했다. 한번은 모친이 울면서 내게 말했다. “사람들이 네게 그리 큰 벌금을 매긴 것을 보라!” (내가 ‘파룬따파 하오’를 쓴 것 때문에 5천 위안 벌금을 부과했다. 또 매달 월급을 200 위안만 주었으니 반년 치 월급이 깎인 것을 계산해보면 6,7천 위안이 된다. 둘을 합하면 1만 위안이 넘는다.)
모친은 그게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며 내가 표어를 썼다고 원망했다. 그러자 딸이 옆에 있다 말했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그 글자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거 아시잖아요!” 아이가 말한 것은 대법 표어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나는 사부님이 아이 입을 빌려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딸은 본래 성적이 보통이었는데 반에서 40등 이하였다. 이후 딸의 성적이 훌쩍 뛰어 올라 앞에서 몇등이 되었다. 중3 때는 우수반에 배치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지역 내 일류 학교에 붙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또 의대에 붙었다. 본과 졸업 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졸업 후 좋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의사자격시험 또한 쉽게 통과했다. 현재는 의료기술이 뛰어난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순조롭게 일이 성사됐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손녀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검사해보니 배꼽이 뒤틀려 두 갈래로 얽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들이 내게 이 일을 말했을 때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가급적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들이 불쾌하게 여기며 말했다. “두 갈래로 얽혔다는데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책임지실 거예요?” 나는 묵묵히 사부님께 아이가 무사히 출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청했다. 며느리 모녀는 모두 병원에서 근무했는데 특히 안사돈의 직급이 아주 높았다. 이에 수술을 아주 잘하는 두 명의 의사를 구해 수술을 하도록 준비했다. 또 어느 시간에 수술하면 좋은 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다. 수술 직전 의사가 또 한번 검사를 했는데 기적이 나타났다.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태아는 정상이며 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산모와 아이가 다 평안했다.
지난 수년간 우리 가족들은 나의 수련을 지지해주었고 가정환경도 매우 좋았다. 또 모두들 삼퇴 했다. 아내는 비록 수련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오성이 좋아서 나의 수련에 간섭한 적이 없다. 또 몇 차례 나를 독촉해 법공부 팀에 가라고 권하기도 했다. 연말연시가 되면 아내는 딸과 함께 사부님께 엎드려 큰 절을 올린다. 지난 몇 년간 집안일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했기에 나는 전적으로 법공부, 연공, 대법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두 사부님의 정심어린 안배이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제자와 제자의 가족들을 보호하신다. 오직 수련을 잘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안심시켜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보답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6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