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중국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시간이 연장됨에 따라 어떤 수련인은 점점 정진의지를 상실하거나 심지어 사람에 빠져 깨우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필자는 수련인들이 더 정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수련시간이 아주 길었던 윤회이야기를 써낸다.
아주 오래고 먼 역사 속에서 삼계 내의 한 층에서 형아(馨兒)와 나는 함께 사부를 만났다. 아울러 사부에게 우리의 수련을 이끌어 달라고 간청했다. 사부는 우리의 성심을 보고 단지 한마디만 했다. “자네들이 수련하면 끝까지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하겠습니다!”라고 확고하게 대답했다.
이때 사부님이 땅에서 그리 크지 않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손에 놓자 갑자기 비할 바 없이 거대해졌다. 사부님은 나를 왼손에 놓고 형아는 오른손에 놓으셨다. 그리고 신통을 움직여 우리를 거대한 암석의 양 끝에 놓았다.
사부님은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이 바위는 ‘단금석(鍛金石)’이라 한다, 자네들이 바위의 양끝에서 시작해 중간을 향해 수련해서 다시 만날 때가 바로 공성원만 할 때다. 단 시간이 몹시 길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 만약 자네들이 수련 중에서 퇴보한다면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이 거대한 암석을 보고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사부님은 우리의 마음이 굳건한 것을 보시고 한마디 하셨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들은 정식으로 수행 상태에 들어간다.”
이 바위는 보통 바위가 아니라 ‘단금석’이다. 그 뜻을 생각해보면 수련인에게 고험과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와 형아가 각자 한쪽에 앉아 진정으로 수행을 시작했을 때 이 바위의 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내가 앉았을 때 눈앞에 늑대, 벌레, 호랑이, 표범 등 맹수가 나타났다.(다른 공간에도 맹수가 있다. 하지만 인간세상의 맹수와는 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일부 명사는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일 뿐 엄밀히 말하자면 구체적인 그런 야수가 아니다) 그것들은 번갈아가며 나를 위협했고 나를 퇴각하게 했다. 나는 처음에 놀랐으나 나중에 이런 것들이 다 고험임을 알았다. 그 이후 직접적으로 놀라게 하는 이런 형식으로 나를 교란하는 정황은 거의 없었다.
한편 형아가 만난 첫 교란은 각종 벌레, 나방이었다. 어떤 벌레는 나방보다 독성이 매우 심했고 구역질이 났다. 목적은 바로 퇴각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아는 퇴각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 첫 번째 관을 지나왔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는 이 바위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진입은 동굴에 들어가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산 속에 끼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바위의 미시적인 일부 상태에 들어갔다. 바위의 전체로 보면 마치 그 중에 끼어 있는 것과 같다.
왜 이러한가? 바로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만일 수련이 퇴보하면 징벌을 받는다(만일 수련이 퇴보하면 신체 입자가 거칠게 변하고 사상 경지도 떨어진다. 그러면 거친 암석 입자의 제한과 각종 형식의 벌을 받는다. 징벌 방식은 신체가 고생을 겪고 정신적 고생을 겪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상세히 쓴다.)
첫 번째 관을 지나왔다고는 하지만 사실 두려움, 공포, 더러움, 번뇌, 근심 등을 지나오는 것은 수련 입문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다 통과한 후 우리 앞에는 각자 전에 관을 넘긴 것에 대해 잘한 점과 못한 점의 “총결”이 숫자로 나타났다. 이때 우리는 서로 볼 수 없었고 잠시 소통할 수도 없었지만 각자 이런 정황을 보고 더욱 고무되었다.
제 1관의 처음부터 끝까지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만일 인간세상의 시간으로 말하자면 거의 백년이 지났다.
제 2관은 희호(喜好) 관이었다. 다른 공간의 생명도 역시 다양한 선호가 있다. 어떤 것도 모두 부동한 형식의 집착이다. 예를 들어 나는 특정 형태의 머리장식을 좋아하고 형아는 특정 질감과 색깔의 목도리를 좋아한다. 바위는 내게 먼저 각종 머리 장식을 변환해냈다. 매 하나의 머리장식은 천변만화 했는데 색채뿐만 아니라 양식과 재질도 다 달랐다. 심지어 각종 신이 나타나 각종 머리 장식을 들고 와서 자연스럽고 소탈하게 돌아다녔다. 내게는 애초 머리장식을 좋아하는 집착이 있었기에 외재적인 장면에 좀 미혹되었다. 이때 신체 입자가 단번에 거칠게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바위의 징벌이 곧 표현되어 나왔다. 그 공간 중의 내 머리에 ‘돌 머리장식’이 박혔다. 완전히 돌로 만들어진 머리장식 형상인데 나의 두뇌 속을 마구 돌아다녔다. 내 몸은 ‘돌 머리장식’에 얻어맞았다. 그 느낌은 정말 매우 괴롭고 아팠다. 형아가 처한 상황도 나와 별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목도리에 집착할 때에 목도리가 돌로 변해 눈을 가리고 목도리가 신체로 파고들었다. 점점 단단하게 죄어와 형아 역시 매우 괴로웠다.
이번 차례 교훈을 거쳐 우리는 애호에 집착하지 말아야 함을 알았다.
생명의 애호에는 다양한 방면에 다 있기 때문에 모든 애호는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 아주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지구의 시간으로 말하자면 1,500년 정도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제 2관을 지났을 때 또 총결산에 해당하는 한 막을 보았다.
제 3관은 정(情) 관이었다. 다른 공간의 정관은 인간세상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의 정과 욕망은 어떤 방면에서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의 본능적인 그런 욕망은 없다. 단 어느 정도 사심(私心)이 있다.
제 3관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 그때 사상 중의 모든 좋고 나쁜 기억들이 다 떠올랐다. 나와 형아를 포함해서 부동한 생명 사이에 피차 교류한 역사와 과정 등등. 지난번 교훈이 있었기에 사상 중에 어떤 것이 아무리 반영되어 와도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단 부동심(不動心)은 여전히 아주 부족했다. 정말 진정으로 ‘무념’이어야 했다. 마음 중에 오직 사부님에 대한 믿음만 있고 다른 염두는 거의 없었다.
생명이 삼계내에 들어오면 곧 정(情) 속에 있기 때문에 이 정은 철저히 수련해 버려야 한다. 그 공간 중에서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인류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5만년 정도 될 것이다.
정관을 지난 후 우리는 피차 우리 신체와 생명이 정말 일종 ‘환골탈태’의 질적인 비약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었고 심지어 외출해서 놀러 다닐 수 있었다(주로 수련 중의 일을 교류했음).
제 4관은 정신관(正信關)이다. 이 관은 처음 입문했을 때의 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막 입문을 시작했을 때는 외부의 저급한 교란을 어떻게 배제하는 가에 대해 굳건한 수련 의지와 결심이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관은 수련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시시각각 수련에 대한 초기의 충심을 견지할 수 있는가가 매우 관건이다. 처음에는 수련을 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어떻게 수련하느냐의 문제이다. 당시는 어쨌든 일부 그 경지 생명의 저능한 사유 표현이 있었다. 시간의 느낌은 이미 많이 길어졌는데 아직 예상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때 아직 다른 생명(신선을 포함)과 접촉할 수 있고 각종 수행 방면의 교란과 고험이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들 둘은 그렇게 오래 수행했는데 아직 우리보다 못하군, 우리는 얼마나 자재한가. 아니면 우리와 함께 수련하는게 어떤가. 나는 당신들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나처럼 도달할 수 있게 해주겠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각종 법보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목적은 모두 우리더러 중도에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관 역시 종합적으로 매우 강한 관이었다.
이 관은 또 아주 긴 시간동안 지속되었는데 지구의 시간으로 말하자면 800만년 정도 되었다.
이 관은 요구가 높았다. 행위상 다른 생명의 유혹을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상 중에서도 조금의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었다. 우리 둘은 모두 약간 누락이 나타났고 보검으로 신체를 자르는 징벌을 받았다. 나중에 우리는 그것을 계로 삼기로 결심을 내렸다. 다행히 비록 넘어지긴 했지만 마침내 지나올 수 있었다.
제5관은 구함이 없는 관(無求關)이었다. 정을 제거하고 바른 믿음을 견지하고 나면 수련의 결과에 대해 확고하게 믿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구함이 없어야 빠짐이 없다.
바위는 우리 앞에서 우리가 성취하려는 각종 결과로 전시되었다. 결과는 매우 많았는데 어떤 것은 자재롭게 돌아다녔고 어떤 것은 지혜가 끝이 없었고 어떤 것은 위덕이 매우 큰 것 등등 각종 깨달은 자의 상태였다. 이전에 다진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지 일념에 근거했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안배에 따른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았다. 이 일념이 나오자 그 바위가 연화해낸 대각자의 상태는 모두 없어졌다. 이때 우리 사상은 비할 데 없이 순정한 상태에 도달했다.
단지 사상 중에서 이런 상태에 도달해도 아직 안 된다. 실천 중에 검증해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고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왜 볼 수 없었는가? 우리가 철저히 원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의식하는 순간 이 거대한 바위는 순간 사라졌다. 사부님은 그곳에서 하하 웃으시며 우리를 보고 계셨다. “자네들은 이미 가야할 길을 걸어지나왔다. 나머지 아직 걸어야 할 길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생명 중에 사부가 인연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을 도와 장래에 필요할 때를 준비해야 한다. 이 역시 자네들이 개인 원만에 도달한 후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하고 분량의 제한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히 말하지 않는다.
우리 둘이 함께 수련을 시작하여 개인원만에 도달한 후 그 단락의 길을 걸은 것까지 전반시간을 인간세상의 시간으로 말하면 수십 억 년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진실한 경험을 써내는 이유는 인간세상에서 20여 년이 매우 길다고 느끼겠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일순간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때 그렇게 만장한 역사를 걸어왔다. 이번 생에 우리는 반드시 지금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장래 수련시간이 얼마나 더 길던지 집착하지 말고 이 시간을 잘 이용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바로 다음과 같다.
동심으로 법을 위해 내려왔으니
인간세상에 더 배회하지 말지니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하여
용맹정진하여 연화대에 오르리
同心下走爲法來
勿在人間多徘徊
萬古機緣需珍惜
勇猛精進乘蓮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37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