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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사색: 지나가는 세월 불굴의 영혼

작자/ 대륙대법제자

【정견망】

삼계 내 윤회 중에 우리 생명은 너무나 오래 되었다. 우리는 부동한 옷을 입고 세계의 무대 위를 드나들었다. 부동한 왕조를 이동했으며 생생세세 꽃이 피고 지고 부동한 극본에서 역할을 연기해왔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역사를 걸어 지나오고 기복이 있는 인생을 걸어오며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했던가. 그 관건적인 순간 하늘을 되돌리지 못했고 얼마나 많은 문인묵객이 흥미진진했고 다채로운 산해 풍류의 과객이 기이한 일들이 있었던가.

세월이 지나며 누가 역사를 투철히 아는가, 누가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가?

만일 신의 눈에 접근하여 인류의 역사를 본다면 고금의 일체 안배 중에 모두 궁극적 의의가 있음을 체험할 것이다. 결코 무대 위의 애정과 원한, 이별의 슬픔, 기쁨의 만남 만이 아닐 것이다.

대법 수련자는 난세에 수행하며 번잡한 욕망을 버리고 세상의 겉치레를 수련해 버리며 생명이 법 중에서 날마다 순정해지고 빛은 속세 중에서 점점 노출된다. 속에서 겉으로 자기를 밝히며 세계를 밝힌다.

요원한 대궁(大穹)은 한때 우리의 집이었으며 삼계가 개창되기 전, 우리는 신성한 직책을 맡았다. 층층이 내려오며 층층의 안배를 받아들였다. 우리의 지혜와 영성은 삼계의 제한을 받았고 이지는 속세 중에서 길을 잃었으나 오히려 사유는 완강하게 시공을 꿰뚫어 힘들게 생명의 내원과 목적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정법이 널리 전해짐을 기다렸고 생명은 오래 기다리던 수련으로 들어왔다. 대법은 우리를 깨끗이 씻어 층층의 결박과 오염을 씻고 우리는 생명의 본원과 목적에 접근하여 사명을 짊어진 신의 사자임을 알았고 인류의 휘황한 역사는 한때 우리로부터 쓰여진 것임을 알았다.

나는 오천년 인류 무대에서 기독교도로서 300년간 박해를 받았고 중원에서는 “삼무일제[三武一帝, 역주: 북위의 도무제(道武帝) 북주의 무제(武帝) 당의 무제(武帝) 후한의 세종(世宗) 등 멸불 정책을 편 네 황제]” 멸불의 참담한 시간을 겪었다. 그 고난의 인생을 겪고 소멸의 세월을 생각하며 나는 세월 중에 사유가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음을 보았는데 우리의 일사일념은 모두 구세력이 만들어준 흔적을 지니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처음 소원은 간단히 윤회를 되새기자는 것이 아니라 윤회 중의 경험, 사유, 감정을 빌려 삼계 윤회 중에 이런 문화를 지어낸 진정한 의도와 이런 경험이 현재 수련자에게 가져다주는 영향을 분석하고, 우리가 어떻게 구사유를 승인하지 않으며 연속하지 않고 법 중에서 자신의 사상을 바로잡고 사존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어 대법에 더 잘 동화되고 중생구도하며 미래를 개창하는가에 있다.

1. 박해로 죽은 기독교도

나는 여러 차례 서양에 전생했는데 기독교가 박해받는 삼백년 중에 몇 차례 경건한 기독교도였으며 신앙을 견지하다가 박해치사 당했다.

(1) 네로의 박해를 겪다

나는 한 세에 고대 로마 황제 네로 제위 때를 보았다. 기원 64년 네로는 로마에 고의로 불을 지른 후 그 화를 기독교도에 전가시켜 기독교도를 반사회적인 힘으로 묘사하여 로마 민중을 선동하여 박해에 참가하도록 했다.

박해 중에 많은 기독교도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하거나 짐승과의 싸움에 던져져 로마인의 함성이 들리는 가운데 맹수에 의해 찢기고 잡아먹혔다. 네로는 명령을 내려 기독교도를 화원에 마른 풀과 함께 묶어놓고 야간에 정원의 횃불로 삼았다.

박해에 직면한 기독교도들은 신앙을 지켰으며 죽음을 보고도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을 집행하기 전 여전히 예수처럼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박해가 일어난 지 1년 후 로마에는 역병이 크게 번졌다. 경건한 기독교도들은 사람들에게 신이 죄인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한 세에 기독교도로서 나는 한밤중에 병사들에 의해 집에서 끌려갔다. 나는 아내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았고 9세 딸과 7세 아들이 겁에 질린 모습을 보았다. 박해와 고난 중에 나는 줄곧 박해자에게 선할 것을 권했다. 내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사형에 처해졌는데 형장에서 망나니는 살기가 비등하며 흉악한 눈빛으로 손에 큰 칼을 휘둘러 나를 잘라 죽였다. 그 해가 바로 기원 67년 나는 42세였다.

(2) 아우레리우스 안토니의 박해

로마황제 아우레리우스 안토니는 제위 시에 전국의 기독교도를 박해했다.

그는 기독교도의 가산을 고발한 자에게 준다는 조칙을 내려 이익으로 전국의 사람을 유혹하여 기독교도를 수색하고 고발하게 했다. 정부는 일체의 능력을 이용하여 기독교도를 강제적으로 신앙을 포기하게 했으며 포기하지 않으면 참수, 태워죽이거나 맹수의 우리에 던져 넣어 밥이 되게 했다. 또 사람들이 보고 즐기게 했다.

그 한 세에 나는 연로한 기독교도였다. 화형 기둥에 묶여 불이 눈앞에서 웅웅거리며 타오르는데 그 고통스러운 화염 중에 눈앞에 위대한 신 – 예수가 나타났다.

그는 자비롭게 나와 다른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예수는 흰옷에 하얀 빛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빛 속에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그것이 고통을 감소시켜 주었으며 나는 희망이 가득 찼다.

나는 귓가에 어느 사병이 큰소리로 조롱하는 것을 들었다. “바보들아, 예수가 와서 너희들을 구해달라고 해 봐, 너희들을 불속에서 구출하도록 말이야.” 나는 그 사병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사병은 잔학한 화염 속에서 내가 미소 짓는 것을 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었고 몸을 돌려 떠났다. 67세인 나는 기둥에 화형 당해 죽었다. 그때가 기원 165년이었고 박해는 5년간 지속되었다.

(3) 디오클레시안의 박해를 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안의 통치시기에 디오클레시안은 그의 사위 갈레이우스의 충동하에 기독교 서적을 불태우고 교회를 부수며 재산을 몰수하며 군대와 관리 중에 모든 기독교 신도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중에 직접 신앙으로 선을 그어 기독교를 믿으면 잡아서 혹형으로 다스리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죽음에 처해졌다.

그 일세에 나는 귀족 소녀였는데 이웃에 의해 고발당해 체포되었다. 기둥에 묶여있는데 형 집행자가 흉악하게 웃으며 음란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의 눈 같이 흰 치마는 채찍에 맞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상의는 찢어져 있었다. 집행자가 말했다 “다시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안 믿는다고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귀족 중에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좋은 날이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 악명 높은 이웃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집의 문이 열리며 그 이웃이 들어와 나를 보고 형집행자에게 말했다. “내가 그녀의 영혼을 사려고 하는데 당신은 왜 때리는가?” 하고 내게 말했다. “불쌍한 미인, 당신이 예수를 포기하면 내가 집으로 데려가 안전을 보장할텐데.” 나는 말했다. “당신은 고귀한 영혼을 팔아먹고 욕구를 만족시키려 하는데 부끄러운지 모르는군요. 나는 그런 연민이 필요 없고 당신이 더 불쌍해요.”

그 건들거리는 자는 수치스러움에 더욱 화가 나 집행자에게 눈치를 주었다. 집행자는 불속에서 빨갛게 달은 인두를 꺼내어 나에게 다가와서 내 가슴에 지졌다. 그것은 어떤 고통인가, 몸이 타는 아픔과 함께 피부가 지지직하며 타는 소리가 울리며 지독한 냄새가 뒤섞였다. 그 귀족은 코를 막으며 가버렸다.

며칠 후 온 몸의 상처뿐인 나는 거의 숨이 헐떡거리는 상태에서 맹수의 우리에 던져졌다.

나의 신체는 흐물흐물하여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땅에 누워 있었고 몇 명의 기독교인이 나를 둘러싸고 기도했다. 이때 세 마리의 굶은 사자가 우리에서 풀려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신도가 손을 들어 나를 보호하려했으나 사자는 훌쩍 뛰어 그의 목을 물었다. 나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자는 단단하게 물고 눈은 탐욕스럽게 다른 신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그 굶주린 사자가 기독교도를 산채 찢어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사자가 나의 다리를 물었을 때 내가 한번 움직였고 다른 사자가 나의 목을 물었다. 그것은 한 발로 나의 문드러진 가슴을 밟았으며 나의 사유는 정체되는 것 같았고 느낌이 매우 예민했다. 나는 사자 예리한 발톱이 나의 뼈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으며 내 피가 흘러나오고 사자가 나의 피를 삼키는 것을 뚜렷하게 느꼈다. 나의 생명은 야수에게 삼켜지고 찢기는 중에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그 해는 기원 303년 내가 18세였다. 이 기억이 날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이 글썽거렸으며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한번은 정견망에서 《/span>기독교 순교자 최후의 기도라는 화폭을 보았다. 그림에서 묘사한 것은 로마 제국이 잔혹하게 기독교도를 진압하는 장면이었다. 경기장 주위의 기둥이 있는데 왼쪽은 화형을 당하는 기독교도이고 오른쪽은 십자가에 못 박힌 기독교도이며 중간은 맹수들이 다가오는 중에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림은 나에게 오래된 느낌을 주었고 이것이 마치 오래 덮인 기억이며 요원하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파동이 일어났고 숨이 매우 막혔으며 무의식적으로 이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 화면은 이미 깊이 머릿속에 박혀있었던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사건을 회상하자, 나는 내가 도피하고 있으며 그 요원한 또렷한 기억을 도피하며 봉인 되었던 지난 일을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2. 윤회중에 “삼무일제”의 멸불 폭행을 보다

나는 내가 동방에 여러차례 전생할 때 역사상 유명한 “삼무일제”의 멸불 중에 세 차례 박해당한 것을 보았다. 한번은 증인이었다.

(1) 수려한 비구니

남북조 시기 북위 태무제(탁발도, 拓跋燾)는 북방을 통일하고 전공이 혁혁했다. 그때 불법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많은 사람이 출가 수행했다. 탁발도는 불법을 믿지 않고 한신 최호의 종용으로 멸불을 시작했다.

438년 탁발도는 영을 내려 50세 이하의 승려는 환속하고 병사로 충당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444년 또 명령을 내려 “불교가 미신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승려를 쫓아냈다. 446년 최호의 반복적인 충동 하에 탁발도는 가장 심한 멸불책을 내렸다. 불상을 부수고 불경을 불태우며 사원을 철폐하며 승려를 산채 매장했다.

그 한 세에 나는 비구니였다. 나는 사원이 철폐되는 중에 많은 비구니들이 군인들에게 모욕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병 두목에게 능욕 당했는데 그는 말했다. “내가 너를 안 죽이고 안전한 곳에 데려다 줄 수 있으니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그 두목은 나의 머리를 끌고 여러 번 절 기둥에 부딪혀 나를 죽였다. 그 때가 446년, 내가 25살일 때였다.

(2) 용감한 승려

남북조 말기, 북주의 무제 우문옹은 574년에 불교, 도교를 한꺼번에 없애기로 했다. 불경, 도경을 불태우고 불상 등 조각상을 부수며 화상, 도사를 환속시키면서 보응이나 지옥을 두려워 말라고 큰소리쳤다.

서기 575년 우문옹은 북제(北齊)를 친히 정벌하며 2년 후 북제에서 멸불하고 북방을 통일했다. 우문옹은 북제 경내에서 불교, 도교 모두 금하며 사원 4만개를 빼앗아 저택으로 만들었으며 부처의 자취를 불태우고 300만 승려를 환속시켜 북방 불법이 거의 흔적도 없게 만들었다.

그 일세에서 나는 북제 한 절의 승려였다. 사원이 병사들에게 층층이 포위되어 사원을 지키는 과정에서 다리에 상처를 입고 꼼짝도 못하게 된 채로 병사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사원에는 19명의 승려가 있었는데 9명이 죽었다. 때는 578년 나는 25살이었다.

(3) 죽은 소화상

기원 841년, 당 무종 이염이 즉위하자 도교만을 믿었다. 신변 도교도의 선동하에 불교를 정돈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멸불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으로 이 사건을 ‘회창멸불’이라 부른다.

842년(회창 2년) 당 무종은 도사의 충동 하에 사원의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했다. 843년(회창 3년) 당 무종은 “사문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844년(회창 4년) 칙령을 발포하여 대사원과 불당을 부수라고 했다.

그 한 세 나는 사원의 어린 화상이었고 나는 석가모니의 상을 지키며 다른 사람이 불상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서기 844년 나는 15세였다.

사서의 기록에는 845년(회창 5년) 멸불이 최고에 달했다. 사원 4600여개, 작은 사원 4만여 개를 쳐부수고 강제로 26만 명의 승려를 환속시켰으며 불경을 대량으로 불태웠다. 전국의 모든 폐사된 사원의 동상, 종, 동 그릇 등은 관청에 바쳐 녹여 동전으로 만들고 철기는 농기구로 만들었다. 846년(회창 6년) 당 무종은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했다.

(4) 친병의 견증

후주의 세종(世宗) 시영(柴榮)은 재능이 크고 원대한 계략이 있었다. 계위한 2년째 기원 955년 5월 칙령을 내려 사찰을 크게 훼멸했다, 전국적으로 3만 360개를 부수었으며 불상을 부수어 동전을 만들고 약 백만 명의 승려를 강제 환속시켰다.

진주(오늘의 하북 석가장 정정현) 대자비사에 동으로 만든 대관음보살이 매우 영험했는데 불상을 부수러 간 사람의 손목이 끊어져 죽었으므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시영은 친히 나아가 큰 도끼로 보살의 가슴을 쳐부수며 강력하게 멸불 운동을 밀어붙였다.

959년 시영은 대군을 이끌고 유주를 정벌했다. 어가가 와교관에 이르러 시영이 높은 곳에 올라 군대를 보았는데 백성들이 이곳은 ‘병룡대(病龍台)-병이 줄줄이 생긴다는 뜻’라고 하는 것을 듣고 즉시 말에 올라 돌아갔다. 그날 밤 가슴에 악창(종기)이 생겼고 이 가슴의 궤양이 문드러져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불상을 부수어 받은 보응이라고 했다.

그 한 세에 나는 세종 신변의 친위 병사였으나 멸불에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할 수는 없어 시영이 멸불하는 중에 날마다 더 우매해지며 신불에 불경하는 하는 말을 들었다. 그가 도끼로 보살을 부술 때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보았으며 가슴에 종기가 나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표현을 보고 속으로 탄식했다. 스스로 죄를 지으니 살수 없겠구나.

시영이 벌을 받아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장수와 사병들은 조광윤을 옹립하여 황제로 받들려고 했다. 그래서 “점검하여 천자를 만들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나는 직접 ‘진교병변(陳橋兵變)’을 경험했다. 조광윤이 놀라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황포를 씌웠는데 이것은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계획을 알았다. 당시 그를 옹립한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는데 인심이 그를 향했고 하늘의 안배라고 생각했다.

시영과 조광윤은 모두 제왕의 상이 있어 뛰어난 재능과 웅대한 계략이 있었다. 다른 점은 한 사람은 멸불을 했고 다른 사람은 경불(敬佛)한 것이다. 멸불자는 천의(天意)에 의해 소멸했고 경불자는 천의天意를 얻었다. 조광윤은 정권을 얻은 후 시영의 멸불 정책을 폐지하고 절을 다시 지으며 불상을 주조했다. 시영이 친히 부순 보살상이 있던 진주의 고찰에는 조광윤이 소를 내려 절을 크게 짓도록 하고 원래보다 훨씬 더 큰 천수천안의 관음동상을 만들었다. 진주 백성은 춤을 추고 환영했으며 거리 골목에서 모두 바른 믿음에 대한 기쁨을 전했다. 불법의 부흥을 따라 송나라는 번영으로 향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삼무일제’의 멸불 악행과 그들이 세상을 떠난데 대해 모두 기록이 있다. 태무제 척발도는 환관에게 죽임을 당했고 죽을 때 겨우 45세였다. 그의 두 아들 (태종과 공종) 잇달아 환관의 손에 죽었다. 주 무제 우문옹은 갑자기 병을 얻어 죽었는데 겨우 35세였다. 당 무종은 멸불로 인심을 크게 잃고 갑자기 병사했는데 33세였다. 후주 시영은 장년에 급병으로 죽었는데 39세였고 5살 아들은 왕위를 계승한지 1년도 안되어 나라가 망했다.

후인들이 아무리 제왕의 한창 나이에 죽음을 애석해 하더라도 모두 이것은 그들이 멸불로 초래한 악보임을 알아야 한다. 하늘의 뜻이 악인에게 보응을 하는 것이니 정말 털끝만치도 애석할 것이 없다.

나중의 계승자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고 불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크게 일으켜 국가가 매우 빨리 강성해졌다. 북위 문성제는 452년 자리를 이어받은 후 조부 척발도의 잘못을 만회하려고 불법을 부흥시켰는데 운강석굴은 바로 그가 세운 것이다. 당 무종을 계승한 선종은 제위에 오른 후 처음 한 큰 일이 불법을 ‘명예회복’ 시킨 것이다. 선종은 부처를 존경하여 백성이 부유해지고 나라가 일어나 백성들이 노래 부르며 역사의 영예를 얻었다.

역사는 거울 같아 국가 흥망성쇠의 원인을 비추며 교훈을 남겨 후인들에게 귀감이 되게 한다. 정교(正敎)를 박해한 자는 반드시 하늘의 징벌을 받고 바른 믿음을 부축한 사람은 하늘의 보호를 받는다. 이는 홀시할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천리이다. 집정자들은 반드시 바른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3. 과거와 현재의 연계

서양에서 최면술사는 최면술을 이용하여 수면상태에 들어가 지난 일을 알 수 있다. 최면사는 한 사람의 과거의 경험, 습관, 질병 등이 현재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발견한다.

점오 상태 하에서 나는 개인의 과거와 현재가 긴밀히 상관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과거세의 사유는 현재에 영향을 준다.

과거세 수련 중에 수련인이 박해를 대했을 때의 이념을 만들어주며 대법 수련 중에 이런 이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수련인에게 영향 준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생각했다. 1999년 7월 22일 나는 경찰에 의해 공안국에 끌려갔다. 나는 그들의 무리한 심문에 대해 거절했고 “나는 죄가 없다”고 했다. 어느 악경이 기겁하며 말했다 “네가 믿어 안믿어? 내가 구멍을 파서 널 묻어버리겠다.” 나는 견정하게 일념을 내보냈다. ‘네가 나를 파묻어도 나는 대법을 굳건하게 믿을 것이다.’

이 과정 중에 역사상 정신을 믿어 박해당한 이념과 정신을 견지하여 생명을 지불한 예가 있기에 머릿속에 번쩍이는 일이 있었다. 확실히 말하면 바른 믿음에 견정하다 박해받은 많은 영상이 눈앞에 신속하게 지나갔는데 이런 영상에는 동서양의 박해의 사례가 다 있었다. 나는 당시 나는 바른 믿음을 위해 물불에 뛰어들고 의로운 일에 나설 수 있다고 느꼈다. 이후에 매우 긴 시간동안 나는 나의 심태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한번은 내가 공안국에서 눈앞에 번쩍이는 영상이 생각났는데 일부러 회상해보고 이 장면을 천천히 돌려보니 나는 기독교와 불교도가 박해받은 장면이었고 매 화면을 자세하게 보면 그 속에 더 상세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장면은 과거세에서 내려온 것임을 깨달았다.

현재 생각해 보면 사악이 가한 박해를 대할 때 보기에는 마치 당연한 생각 같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역사상 남겨온 흔적이다. 과거 역사 중에서 수련인은 진정으로 미친 사악의 날뜀을 겪었고 생명을 잃었으며 두려운 일체를 겪었다.

우리는 반복해서 구세력의 극본 중에 걸어 나왔고 반복적으로 그런 이념을 이행하고 있다: 박해 중에 정신을 견지하면 안정된 생활을 잃어야 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사존은 설법 중에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 《/span>미국 플로리다 법회 설법

역사의 과거에 누가 ‘바른 믿음을 견지하면 반드시 박해당한다’는 문화를 만들었는가, 바로 구세력이다. 누가 이런 이념을 이행하는가. 과거 몇 가지 큰 정교의 제자이다. 누가 오늘의 대법제자로 전생하는가, 과거 몇 가지 큰 정교의 제자이다.

역사의 과거에 기독교도가 박해당할 때 당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고 기독교도라고 하면 피살당했다. 비록 이렇더라도 많은 기독교도는 자기의 신앙을 견지했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할 때 역시 이러했다. 대법을 견지하면 곧 노교소, 구타, 판형, 심지어 산채 장기적출 당하고 연마하지 않는다고 하면 곧 자유를 얻었다. 비록 이러해도 많은 파룬궁 수련자는 수련을 견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구세력은 오랜 연대에 계통적으로 대법제자의 생생세세를 안배했다. 그것들은 매 사람에게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 대해서도 이렇게 배치했다. 인류사회의 일체 크게는 상생상극의 이치, 일정일부(一正一負)의 힘까지 만들어 매 사람의 일언일행, 일사일념까지 세심한 배치를 하였다. 이런 배치는 위에서 아래까지 관통되어 엄밀한 체계를 이루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신이 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우연도 없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정법수련을 교란하기 위해 일부러 역사상의 일체를 안배했으며 사람은 이 진상을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수련자의 오늘을 구성한 일체는 오랜 역사 중 일찍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종으로 오늘의 정법 수련 중에 체현되어 나와야 했다. 대법제자가 움직이는 일사일념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전 사회의 매 사람이 자기의 일부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생각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완전히 구세력이 주도면밀하게 조종한 결과로서 전방위적인 엄밀한 운행기제를 형성하였다.

구세력의 이런 안배에 대해 사존께서는 평가를 내렸다.

“당초에 삼계를 만든 목적은 바로 이 시점에서 정법을 위하여 사용하기 위한 것이며, 그렇다면 삼계 안의 중생은 누구이고, 어떠한 생명이 여기에 있어야 하며, 장래에 어떠한 생명과 어떠한 생명의 존재방식이 필요하며, 생명의 사유방식·생명의 행위와 문화 등등을 포함하여, 모두 곧 역사과정 중에서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정법 중에서 보면, 안배한 것이 매우 차(差) 한바, 왜냐하면, 구세력의 형성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년 미국서부법회설법

정법에 대해서 말하면 사존께서는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신다. 대법제자는 역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 갈래 순정하고 금강불파한 길을 걸어야 한다.

4. 미래를 개창하고 신생으로 향하며 참조를 남겨놓는다

우리는 구우주에서 태를 벗고 나왔는데 몸에 아직 구세력이 만든 것을 지니고 있다. 수련이 안 된 부분은 구세력의 이기적인 특성이 아직 체현되고 쉽게 구세력과 공명을 일으키며 무의식 중에 구세력이 안배한 것을 인정한다. 늘 비자각적으로 구세력에게 속으며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는다. 박해 초기에 우리 많은 사람이 일사일념에서 일언일행에서 이런 배치가 나타났다.

99년 4.25 이후 많은 대법수련자들은 사유 중에 이런 박해를 인정했고 구세력 역시 전력을 다해 그것들의 안배한 일체의 한 세트를 밀고 나왔으며 세계에 아주 나쁜 반응을 일으켰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다시 제자를 대신해서 감당하시며 창생을 위해 난을 당하셨다. 사존께서 부단하게 설법으로 미혹을 파헤치고 있다. 제자에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라고 알려주고 계신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예수가 사람을 제도하는, 이렇게 큰 좋은 일을 하는데도 천상의 생명은 이렇게 이 일체를 좌우지하려고 했는가? 게다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놓기까지 했는가? 보기에는 사람을 대신해 죄를 감당하는 것 같지만, 신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대신해 죄를 감당해야 하는가? 더 높은 신은 왜 상관하지 않았는가? 신은 무엇 때문에 직접 사람의 죄를 없애주지 못하는가? 이런 모든 것이 지금까지 우주의 이치였으며 일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구우주의 법은 이 방면의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다음번에는 이렇지 않을 것이다.” 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설법

사존께서 제자에게 알려주셨다: “사실 내가 개창하려는 것, 정법 중에 해결하려는 문제는 오늘 이후 사람을 제도하려고 하세한 신이 다시는 삼계내의 중생에게 박해당할 수 없는 문제를 포함한다.” 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설법

우리가 현재 걷는 길은 바로 사존의 법리를 이행하는 것이며 앞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은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법 중에서 갱신된 생명이며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있고 우주의 보위자이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명확해야한다. 정법 중 우리는 사존의 요구에 따라 수련해야 하며 구세력의 요구에 따라 수련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기를 수련할 뿐 아니라 중생을 구도해야 하며 우리는 직책은 매우 크다.

우리는 진지하게 법공부하며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수련한다.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노력하며 자기를 개변하는 것이 세계를 개변하는 것이다.

지금 많은 동수들이 이미 구세력을 부정함을 인식하고 자기의 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14회 법회교류문장 《/span>유유한 인간세상에 힘들게 법을 얻다는 글 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동수가 어느 키 크고 시커먼 남자가 숲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서 진상을 말했다. 그 사람은 듣자마자 기겁을 했으며 동수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당신은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시오? 나는 공안국장이며 막 퇴직한지 반년도 안되오.” “당신은 공안국에 가서 자수하시오, 아니면 내가 전화해서 당신을 잡으라 할테니, 당신이 선택하시오.” 동수는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거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동수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구세력의 계략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대법제자는 구세력이 제공한 선택 중에서 수련함을 부정하여 박해받는 관념을 되돌리려고 했다. 동시에 자기 신체 중의 일체 낡은 사유와 남겨 내려온 물질을 제거하고 사당 문화가 사람의 거죽에 일부러 주입시킨 ‘두려움’, ‘투쟁’ 등의 사악한 물질과 자기 신체 범위의 그런 부면적인 요소를 제거했다.

우리는 거대한 사명을 지니고 온 신의 사자이며 자기의 내원과 서약을 알고 있다. 동시에 미래에 참조할 길을 남겨놓아야 하는데 이 길은 정념정행할 때 나오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법에서 ‘참조’를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수련 중에 있고, 정법 중에 있으며, 스스로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또한 중생들을 구원하고 있으므로, 당신들 역시 미래를 위해 일체를 개창(開創)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하고 있는 일체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바르게 걸어온 길 역시 미래 생명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며, 동시에 인류사회에도 미래의 생존방식을 위한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다.” 《/span>도항-워싱턴 DC 법회설법

사존께서는 또한 “미래에는, 즉 당신들이 열어놓을 미래에는, 바로 이곳에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을 마련해 놓을 것이다! 당신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속인의 일을 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미래에 참조할 실 예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 설법

위대한 사존께서는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을 안배해 놓으셨고 창세의 초기에 창세주는 바로 최후의 안배를 했다. 가장 좋은 안배는 가장 미시적인데서 본원으로 와서 어떤 것으로도 부가적인 것으로 가릴 수 없으며 막을 수 없다. 대법제자는 단지 사부의 안배만 승인하고 구세력의 안배를 가지지 말며 관건은 자기의 사유를 바꾸는 것이다. 수련 중에 피동적으로 박해를 감당하지 말고 말을 당당하게 해야 비로소 나쁜 생명을 억제하거나 훼멸할 수 있다.

사존께서는 중생에 대해 자비롭고 부단히 설법하여 대법제자의 미혹을 파헤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떻게 자기의 사유를 고쳐서 바른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법 수련 중에 우리는 사존의 법리에 따라 수련하며 무조건 안으로 찾고 구세력의 관념, 사유를 바로잡고, 법 중에서 수련해낸 정념으로 자기를 지도하며 법이 부여한 지혜로 이번 박해를 대하고 불법신통으로 박해를 해체하며 이것으로부터 정법 수련자의 길을 걸어 나와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수련 중에 보고 깨달은 것이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4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