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영매(咏梅)
【정견망】
나는 속인의 일 때문에 산시성 대동현 간수소에 40일 간 갇혀 있었다. 내가 이 열악한 환경에서 파룬따파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법은 신적을 나타내어 나처럼 잃어버린 딸이자 가출한지 19년 되는 길 잃은 양을 일깨웠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내가 대법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자 그들은 나를 잡아 불법으로 3년 노동교양을 시켰다. 3년 후 나를 석방했는데 내가 수련했으므로 사부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는 19년 전 떠났던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대동현 간수소에 갇혀 있는 40일 중에 그 속에 갇혀 있던 대법제자는 모두 기회를 이용하여 날마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비록 연공인이 내게 잘 대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했지만 나는 바로 믿지 않았다 어느 날 내 신체가 온 몸이 마치 뼈가 흩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어느 대학교수가 내게 말했다. “내가 베껴 쓴 경문을 읽어봐, 혹시 인연이 있다면 신체가 나을 수도 있어.” 나는 경문을 받아서 잘 보았다. 한번 보자 머리에 무엇이 도는 것 같았는데 손에도 돌았고 가슴에도 돌았다. 나는 교수에게 이게 어쩐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자매는 정말 연분이 있군. 그것은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이야! 사부님은 너를 몇 년이나 찾고 계셨어!” 하며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그치자 교수는 내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주었다. 이번에 들으니 매우 편안했고 온 몸에 아픔도 사라졌다. 대법이 이렇게 좋으니 나는 수련하겠다고 했고 동수들은 내게 대법을 외워주며 배우게 했다. 나는 나가면 동수들과 함께 북경에 청원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교수는 동수와 연락할 전화번호를 주었다.
다음날 간수소에서 나를 석방했다. 나는 나온 후 바로 연락을 하여 그들과 함께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 북경에 도착한 후 어떤 동수는 나더러 천안문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나더러 법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집에서 법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동으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 후 《/span>전법륜을 아직 보지 않았는데 자료를 등에 지고 나가서 뿌렸다. 어느 날 저녁 7시 내가 한 포대 자료를 지고 거리에 나갔는데 큰 버스에게 부딪혀 날아가 3미터 떨어진 구덩이에 떨어졌다. 나는 두렵지 않았고 두려운 느낌이 없었다. 잠시 후 일어나 보니 신발이 없길래, 혼잣말로 신발이 어디 갔지? 기사가 달려와서 말했다. “당신 아직 살아 있소. 우리는 당신이 죽은 줄 알고 놀라서 차에서 내려오지 못했소.” “나는 연공인입니다. 대법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요. 속인이라면 얼마나 큰 사고가 났을지 모르지요.” 이어서 나는 기사에게 진상을 말해주었다.
나중에 어느 날 내가 자료를 나눠주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하여 2000년 11월 25일 사악에 잡혔다. 경찰은 내 자료가 어디서 온 것인지 겁을 주며 물었으나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사진기를 가져와서 사진을 찍으려 했고 나는 큰소리로 찍지 말라고 했는데 갑자기 사진기가 폭발했다. 몇 명 경찰은 놀라 감히 더 이상 묻지 않고 나를 박해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를 태원의 신점노교소에 3년 보냈다.
나는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법을 알지 못했기에 신점노교소에서 어떤 동수는 내가 가짜라고 하여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괴로워 사부님께 억울하다고 했다. “사부님, 그들은 저를 가짜라고 합니다. 나는 《/span>전법륜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정말 진심으로 대법을 수련하고 싶습니다, 조급합니다!” 갑자기 나는 이불 위에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진정하게 고층차(高層次)로 사람을 이끌다” 《/span>전법륜나는 매우 감동했다. 사부님이 나를 돕는구나. 나는 이불의 글자를 보며 법공부했는데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20여 분간 보았다. 어느 전향된 동수가 교란하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수에게 베껴 쓴 경문을 몰래 배울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번은 경찰이 내 이불에서 경문을 수색해내고 몇 경찰이 나를 때렸다. 나는 큰 소리로 “사부님 구해주세요”하고 외쳤는데 그들은 놀라서 옆으로 물러나며 감히 때리지 않았다. 한번 경찰이 식당에서 회의를 열어 대법을 모함했다. 나는 일어서서 말했다. “당신들 하는 말 모두 거짓입니다. 파룬따파 하오, 사부하오!” 이때 동수들이 다 함께 소리쳤다. 그러자 7,8 명 경찰과 마약범들이 나를 둘러싸고 때렸고 나는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사부님 구해주세요!” 나는 쉭하며 단번에 풍선처럼 떠올랐는데 3장(9미터) 이상이나 떠올랐고 (당시 식당은 공사 중이었으며 지붕을 아직 덮기 전이었다) 그 후 내려왔다. 이 순간 대법의 신적이 나타나서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몇 명의 멍청한 마약범은 여전히 나를 때리려 했는데 경찰이 제지했다.
나를 때린 사람들은 돌아가서 두통, 복통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구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장, 중대장 모두 나를 찾아와 담화를 했다. 내가 그들의 방에 들어가자 경찰들은 아직 두통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가자마자 그들이 말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우리에게 준 것이오.” 어느 여경이 아직 토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투덜거렸다. “구토가 너무 심해서 죽을 것 같아!” 이 경찰들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가 상관하지 않겠으니 다른 사람을 선동하지만 마시오. 우리가 수습할 수 없으면 밥그릇을 잃게 될 것이요.”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들도 그녀들을 전향시키지 마시오. 연공인을 철장에 가두지 말고 당신들이 돌아가며 숙직하되 마약범에게 연공인을 때리라고 암시하지 마시오.” 경찰은 “당신은 배운 게 없지 않소. 만약 배운 게 많은데다 《/span>전법륜을 학습했다면 정말 대단할 것이요. 그럼 우리는 당신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경찰은 매번 나를 불러 담화했으며 그들은 내가 그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두려워했고 그녀들은 놀라며 손을 흔들며 후퇴하며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우리를 보지 마시오, 이렇게 우리를 보지 마시오.”
마침 사스가 유행할 때 경찰은 동수들에게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나는 동수들에게 모두 거절하라고 했다. 경찰은 내가 말한 것을 알고도 나를 찾아와서 뭐라 하지 않았다. 어느 대대장은 매우 나빠 마약범에게 동수를 때리라고 지시했는데 그날 그녀는 열이 났다. 그녀는 매우 겁이 나서 나를 불러서 말했다. “당신들 사부가 사스를 걸리게 한 것 아니요?” 나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은 사람을 구하러 왔으며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이치를 말해주었다. 대장은 진지하게 듣고 나서 말했다. “나는 당신 말을 듣겠소. 나는 내 월급만 받을 것이며 관직을 이용하여 돈을 벌지 않을 겁니다. 평안을 보위하면 그만입니다.”
노교소에서는 나를 3년 박해한 후 2003년 11월 25일 석방했다. 석방 후 나는 과거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나는 그 집을 떠난지 이미 19년이 된다. 과거의 고통스런 생활이 또 내 눈 앞에 떠올랐다.
나는 원래 호북사람인데 여섯 자매 중 내가 막내다. 어려서부터 작은 오빠와 사이가 아주 나빴는데 오빠는 아버지의 직업을 받기 위해 내가 15살 되던 해에 나를 억지로 하남으로 시집보냈다. 나는 시댁 사람들이 못됐음을 느꼈으나 떠날 능력이 없어 참고 화를 삼키며 지냈다. 식구는 형제가 넷인데 첫째 셋째는 모두 처를 욕하고 때리며 학대해 두 올케는 모두 약을 먹고 죽었다. 내 남편은 거친 사람이라 나를 돌, 벽돌, 곤봉, 쇠파이프, 심지어 칼로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들고 때렸다. 나는 이런 폭력적인 가정에서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았다. 나는 이렇게 하면 가정에 기쁨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야만적이었다.
나는 이 가정에 완전히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파출소에 고소했다. 파출소에서 관여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나중에 법원에서 사람이 나와 그를 교육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법원의 사람은 이 사람은 안되겠으니 이혼하라고 했다. 나는 야외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며 하늘에 대고 말했다. “하느님, 내가 사는 이 마굴을 떠나야 합니다!” 나는 모진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가정을 포기하고 가출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떠나자 19년이 되었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옳았다. 왜냐하면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심했으므로 사부님 말을 들어야 한다. 일을 만나도 법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9년 전 하남의 시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얼른 현지 동수에게 연락를 취했고 동수에게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 도와달라고 했다. 동수들은 그들의 인식을 이야기 했는데 나는 많이 제고 되었다. 나는 법공부를 잘하고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심성을 지키고 가정의 마난을 맞이하여 냉정하게 대했다. 법공부를 하며 제고를 함에 따라 나는 남편의 야만적인 폭행에 대해 세 가지를 했다. 하나는 안으로 찾고 먼저 원망하거나 화내지 않고 그를 용서하고 선하게 대했다. 둘째는 발정념으로 그 배후에 조종하는 사악한 귀신을 제거했다. 셋째는 긴급할 때는 사부님께 부탁했다.
한번은 남편이 손에 문고리를 가지고 나를 때렸다. 나는 얼른 사부님께 외쳤다. 그러자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리고 이를 드러낸 흉악한 몰골을 하고 “아야, 아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나를 때리려 해도 때리지 못했다고 했다. 또 한번은 그가 벽돌을 들고 내 어깨를 찧었다. 나는 사부님을 외쳐불렀다. 그는 수중의 벽돌이 떨어졌고 두 손이 아파서 펴지 못했다. 나는 당신이 사부님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며 다시 사람을 때리지 않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선악에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것이 농담이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남편은 감히 나를 때리지 않았으며 현재 그는 나를 두려워한다. 내가 세 가지 일을 해도 그는 과거처럼 그리 방해하지 않는다.
비록 남편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대법의 위력 하에 적지 않게 변했다. 과거에 재난이 겹친 가정에 희망을 가져왔다. 우리는 지금에야 비로소 정상적인 집처럼 되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