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대법제자 소엽(小葉)
【정견망】
들어가는 말
1999년 5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국제법회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온 스완과 미미 두 동수를 우연히 만났다. 공교롭게 마침 우리가 현지에서 같은 동수의 집에 머물렀다.
법회 활동 기간에 북미에서 온 한 책임자가 스완을 보고는 “당신은 스웨덴에서 홍법은 잘하지 않고 도처로 사부님만 따라다니는데 뭐하는 겁니까?”라고 비판했다.
스완이 내게 이 일을 말하자 나 역시 내심으로 압력이 커졌다. 나는 원래 즐겁게 와서 사부님을 뵙고 법회에 참가하려던 것인데 결국 현재는 마음이 엉키고 풀이 매우 죽어버렸다.
어느 날 두 동수가 늦게 돌아와서는 몹시 흥분해서 시드니의 유명 관광지-블루마운틴-에 다녀온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블루마운틴 세 자매봉(The Three Sisters)
스완과 미미는 천목이 열려서 수련한다. 그들이 막 산중턱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이때 현지 동수가 끼어들어 이는 대법 사부님께서 1996년 블루마운틴에 가서 마당을 청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루마운틴에서도 가장 유명한 세 자매 봉에 도달하자 세 산봉우리가 의념으로 그들과 소통했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 억년 이상 존재해왔으며 만약 산봉우리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원신은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 당신들 금생에 사람몸을 얻고 심지어 주불(主佛)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그러면서 재삼 스완과 미미에게 당부했다.
“대법 사부님이 어디서 설법하시든 조건만 된다면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대법 사부님이 인간 세상에서 몇 차례나 설법하셔도 망망한 우주 시공에서 보면 모두 너무나 드물고 드물며 또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이는 비할 바 없이 진귀한 것이니 당신들은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꼭 기연을 잡아야 합니다.”
스완과 미미의 말을 들은 우리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마음속으로 ‘우리는 사람 몸을 얻은 것이 비할바 없는 행운이며 또 사람 몸을 얻기 위해 고생스럽게 기다리는 운운창생들이 무한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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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5년 법을 얻은 제자다. 이십여 년의 내 수련여정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부님을 따라 법을 구하러 다닌 날들이다. 이 기간에 나는 대법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와 고생스런 구도를 직접 목도하고 절실히 느꼈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편득(偏得)일뿐 아니라 천상과 인간세상의 모든 생명의 공동 수익이다.
오늘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이 글을 써서 빛나는 5.13을 기념하며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린다!
북경 국제법회에 대한 기억
1996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하늘은 높고 상쾌한 북경에서 제2회 파룬따파 국제교류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400여 명으로 해외 수련생이 위주였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등등에서 왔다. 법회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미국 애틀랜타에 계셨는데 법회의 원만한 성공을 특별히 다음과 같은 축사를 보내주셨다.
중생을 널리 제도하다
속인 마음 내려놓고법(法) 얻으니 곧 신(神)이로다삼계를 벗어나하늘에 올라 부처 몸을 타고나도다
1996년 10월 16일
심명(心明)
사부 법 널리 전해 중생제도 하나니온 천하 경(經) 얻어 법선에 오르네십악독세에서 대법(大法) 전하고法輪(파룬) 돌리니 건곤이 바르도다
1996년 10월 16일 애틀랜타에서
11월 1일 밤 막 잘 준비를 하는데 머릿속으로 ‘내일 사부님이 오실 것이다.’라는 정보를 받았다.
이에 나는 흥분과 격동으로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나는 막 수련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직접 뵌 적이 없었고 또 무엇이 공능이고 아니고를 알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했다. ‘사부님께서 정말 오실까? 사부님은 미국에 계시는데!’
다음날 오전 지단(地壇) 공원 법회 활동에 참가했을 때 나는 노수련생을 만나 조용히 물어보았다. “오늘 사부님께서 오시나요?” 그들은 사부님께서 이미 법회를 위해 축사를 써주셨고 또 미국 애틀랜타에 계시니 오실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사부님께서 오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단 공원 방택헌(方澤軒)의 작은 정원에서 수련에 대한 교류를 진행하고 있을 때 나는 비록 동수들의 발언을 듣고는 있었지만 눈은 초초하게 마당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 5~6 시쯤 되었을 때 나는 연구회 인사가 한통의 전화를 받은 후 갑자기 무언가를 총총히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속으로 매우 기뻤다. 나는 사부님께서 정말 오실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감히 말을 꺼내진 못하고 속으로만 몰래 기뻐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저녁 때가 되었는데 웬일인지 음식이 나오지 않았고 마치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무료해져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채 가슴이 쿵쿵 뛰었는데 사부님께서 막 회의장으로 오시고 계심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군가 이 말을 하자 모두들 즉시 환호작약하며 일어났으며 벌떼처럼 입구로 몰려갔다. 이때 한 보도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모두 자리로 돌아가 앉아주세요. 이렇게 하면 사부님께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 얼른 자리로 돌아와 서서 박수로 사부님을 공손히 영접했다.
사부님은 미소를 띠며 들어오셨고 나는 사부님을 뵙게 되었다! 사부님은 연한 회색 코트를 입으셨는데 너무나 위엄 있고 친절하면서도 자상하셨다. 사부님은 식당 중앙에 서신 채 우리를 향해 매우 즐겁게 말씀하셨다. “우선 여러분을 보러왔으니 너무 격동하지 말고 식사를 잘하세요. 식사가 끝난 후 대청에 가서 여러분에게 설법을 하겠습니다.”
사부님을 바라보며 나는 있는 힘껏 박수를 쳤고 커다란 행복과 즐거움이 나를 포용했다. 시간과 공간이 마치 응고된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사부님은 왜 이리 내 아버지 같으실까?’ 이 생각이 나오자 나는 놀라 펄쩍 뛰었다. 나는 당시까지 연분이란게 어떤 것인지 잘 몰랐고 단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하고 의아하게만 생각했다.
식사 후 사람들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청에 모여 사부님께서 좀 더 빨리 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설법해주시길 기다렸다. 이 때 연구회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사부님께서 공항에서 직접 바로 오셨기 때문에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속이 쓰렸다. ‘그렇구나, 사부님께서는 매 한 가지 일에서 모두 제자들을 위해 생각하시는구나, 그런데 제자 된 우리는 어느 한 가지 일에서도 사부님을 위해 생각한 적이 있는가?’
뒤쪽 수련생도 사부님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사부님은 의자를 큰 탁자 위에 놓고 그 위에 가볍게 뛰어 올라 앉으셨다. 그러면서 뒤쪽의 수련생들에게 잘 보이느냐고 물으셨다. 사람들은 기쁜 목소리로 긴 음성으로 대답했다. “잘-보-입니다!” 하며 열렬한 박수를 쳤다.
이어서 사부님은 40여 분간 설법하셨고 수련생들은 호흡을 멈추고 기갈 들린 듯이 신경을 집중하여 들었다. 온 회의장은 극히 조용했다. 오로지 사부님의 홍대(洪大)한 음성만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자세한 것은 《/span>각지설법1> (북경 국제교류회 설법)을 보라.)
비록 40여 분간의 설법이었지만 사부님은 매우 매우 높은 법리를 말씀하셨다. 노제자의 체험에 근거하면 이는 사부님께서 국내에서 하신 설법 중 가장 높은 한 차례였다.
사부님께서 북경 파룬궁 국제법회에서 설법하시는 모습
북경 지단공원 방택헌(1996년 11월 2일)
설법중 사부님은 무엇 때문에 대륙 수련생이 먼저 법을 얻도록 하고 해외 수련생이 나중에 법을 얻도록 안배했는지 말씀하셨다. 그것은 해외 수련생의 근기가 좋고 속인 중에 학력이 높고 석사 박사 등이 많아 사부님이 강의하면 잘 알아듣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만일 그들과 대륙 수련생들이 동시에 법을 얻으면 대륙 수련생들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부님은 또 재삼 우리에게 이 법을 소중히 여기라고 당부하셨다. “당신들이 공원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만 보지 말라. 그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설사 들어오더라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곧 나갈 것이다. 이는 그런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인연이 있어 법을 얻은 것으로 그러니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설법이 끝나고 수련생들은 장시간 열렬한 박수로 감사를 표시했다. 사부님은 탁자에서 뛰어내려 수련생들과 친절하게 악수를 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셨다.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둘러싸고 즐겁게 미소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구나 다 사부님을 보내길 섭섭해 했으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했으면 했다.
설법을 마치신 후 제자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사부님
일하는 사람들의 거듭된 재촉 하에 수련생들은 마지못해 사부님이 먼저 나가도록 길을 내어드렸다. 사부님은 몇 차례나 고개를 돌리고 또 손을 흔드셨고 사부님을 간절히 바라보던 우리들과 작별하셨다.
우리는 조용히 입구에 서서 사부님의 커다란 모습이 어둠 속에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전송해드렸다.
지단공원 대문을 나서자 이미 밤 10시가 훨씬 넘었다. 이때 달빛은 물처럼 정적의 대지를 비추었고 잠든 거리를 비추었으며 또 기뻐서 춤추는 우리를 비추었다.
후기
(1) 법회 휴식시간에 나는 북경의 람참장(藍站長 남씨 성을 가진 북경의 보도소장) 등 동수들이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 십대의 한 대만 여동수가 우리 앞으로 달려오더니 손가락으로 우리의 얼굴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말했다. “어, 당신들 얼굴에 모두 파룬이 있네요. 당신(람참장을 가리킴)은 남색이고 그녀(나)는 자색이에요.”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일찍이 대법제자 중 일부분은 수기(授記)제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수기제자는 바로 이마 위에 하나의 파룬 인기(印記)를 받았다.
(2) 이 날 나는 미놀타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공교롭게도 배터리가 다 닳았다. 나는 또 사부님께서 곧 오실 것 같아서 마음이 아주 급해졌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주변 상가는 모두 닫았으며 또 미놀타 카메라는 특수한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구입이 어려웠다. 내가 초조해서 울상을 짓는 것을 보더니 수련을 좀 오래한 한 동수가 내게 알려주었다. “조급할 거 없어요. 이따가 다시 시도해보세요.” 나는 오성이 아주 차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배터리가 떨어진 게 분명한데 시도해서 뭐하나?’ 그녀는 또 나를 점화해주었다. “때가 되면 다시 말합시다.” 결국 사부님이 오셨을 때 나는 정말로 11장의 사진을 찍었다.
(3) 사부님의 설법 후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단단히 에워쌌기에 나는 전혀 끼어들 수 없었고 또 사부님을 뵐 수 없었다. 나는 조급해서 의자 위에 올라갔는데 사부님을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또 사진도 찍었다. 나는 속으로 너무나 기뻤다.
나중에 들으니 연구회으 한 일꾼이 몹시 화를 내면서 “이게 무슨 꼴입니까, 예의라고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매우 억울했고 또 좀 두렵기도 했는데 마음속에 오랫동안 매듭이 생겼다.
1997년 4월 초 샌프란시스코 법회에 막 참가하고 돌아온 한 일본 동수가 있었다. 그녀는 특별히 내게 전화를 걸어 나더러 북경의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자신들이 어느 식당 앞에서 사부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부님께서 또 나의 이 일을 언급하셨는데 이름을 말하진 않으셨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나를 두고 말씀하신 것 같다면서 나더러 환희심을 일으키지 말라면서 말해주었다. 사부님께서 “나는 그녀의 행위를 보지 않고 단지 마음만 볼 뿐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