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동 대법제자 심명(心明)
【정견망】
1. 기쁘게 대법을 얻다
1994년 파룬따파(法輪佛法)가 큰이모 고향에 전해져 큰이모 부부 및 큰아들 일가가 모두 법을 얻었다. 큰이모는 파룬궁 연마를 통해 원래 갖고 있던 심장병, 위장병, 요통 등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대법 ‘진선인(眞·善·忍)’ 원칙에 따라 부단히 도덕 수준을 제고했고 심령의 정화와 신체의 건강을 얻었다.
큰이모는 원래 한 글자도 읽지 못했는데 대법을 배운 후 하룻밤 사이에 신기하게 글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되어 그 일은 신화같이 그곳에 널리 전해졌다. 친지와 고향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큰이모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심신에 이익을 본 기쁜 일을 듣고 분분히 신기하다고 하며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파룬따파 수련으로 들어왔다.
큰이모가 수련에 들어온 후 그녀의 집은 대법제자의 따뜻한 대가정이 되었다. 큰이모는 자연히 현지 보도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사부님 설법 영상을 틀면서 9일 학습반을 개최해 그곳 뿐 아니라 백리 밖 마을에서도 달려왔다. 고향 친척들은 파룬궁을 배워 직접 진선인의 이념과 몸이 건강해지는 신기한 효과를 체험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주변 백리의 마을에 수백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을 시작했다.
큰이모 부부는 큰아들 가족 및 셋째 아들 가족과 함께 작은 사합원에 살았다. 큰 아들 대우(大宇 가명)와 며느리 소련(小蓮 가명)은 예쁜 딸과 함께 모두 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모두 모친의 수련을 지지한다. 대우 부부는 장사를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며 근검절약하여 수만 위안을 모았다. 다른 건물을 지으려고 택지를 이미 준비해 놓는 등 모든 일이 아주 번창했다.
대우 부부는 수련에 들어온 후 정진하는데 매일 바쁜 장사 일 외에도 늘 큰이모와 함께 주변 마을에 가서 홍법 활동에 참가하곤 했다. 그들은 집을 짓기 위해 모아놓은 자금도 끊임없이 홍법에 투입했다. 이리하여 집짓기는 늘 뒤로 미뤄졌고 1999년이 되어도 집을 지을 겨를이 없었다.
2. 대법을 수호하다
1999년 7월 20일부터 강택민 집단의 파룬궁 탄압으로 전국 각지에서 매체의 거짓 선전을 통해 파룬궁 수련생들을 모함하고 도처에서 사람을 잡아가거나 때리고 노동교양, 판결…… 등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당시 큰이모 지역의 현(縣) 공안과 진(鎭) 책임자는 큰이모 가족들을 중점 인물로 간주해 늘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곤 했다.
그들에게 책을 바치고 ‘전향학습’을 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큰이모 가족들은 늘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그들에게 연공인은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큰이모는 알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좋은 공법을 정부에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가?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병을 제거해주는 공법(功法)이 대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녀는 파룬궁을 위해 옳은 말을 해야 했다. 1999년 7.20 이후 큰이모 부부는 대우 부부 및 현지 동수들과 두 대의 장거리 버스를 타고 수십 명이 북경에 들어가 호법했다. 그들은 천안문 광장에 갔고 북경 신방국을 찾아가 상방했다.
2000년 12월 27일 큰이모 일가가 재차 북경에 가서 호법하려 하는데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다. 그들은 강제로 큰이모 부부와 대우 부부 등 4인을 잡아 가두었다. 같은 마을의 몇 명 동수도 잡혀갔다. 대우 집에는 6살 난 아들과 10살 난 딸만 있었다. 30일 오후 경찰이 큰이모 일가를 놓아주었다.
사악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큰이모 가족들은 늘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시디, 달력, 소책자 등의 자료를 지니고 다니며 골목이나 시장 상점 등 가는 곳마다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고향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되었고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한다는 것을 알고는 박해받는 그들의 처지를 아주 동정했다.
3. 박해 제지
얼마 안 되어 대우 부부는 마을에서 파룬궁 전단지를 붙이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 당했다. 그들 부부는 간수소에 갇혔는데 한번 갇히자 반년이 지나갔다.
큰이모 혼자 두 손주를 돌봐야 했다. 큰이모부는 파룬궁을 연마했기 때문에 직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연속 3년이나 급여가 중단되었다. 그 몇 년간 큰이모는 경찰의 소란에 대해 골육의 이별, 경제적 단절의 곤란에도 넘어지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줄곧 자비와 착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했다. 그녀는 대법제자는 조사정법의 신성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아들과 며느리는 대법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바른 길임을 알았다. 큰이모는 어디를 가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정당당한 수련인이 되었다.
사악의 박해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장쩌민 집단은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을 만들어 증오를 선동했고 이어서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파룬궁 박해 운동을 일으켰다. 현지 경찰은 대우 부부에게 노교소에 가라는 통지서를 가져와서는 큰이모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큰이모는 노교소 통지서를 잡고 찢어 버리고 경찰더러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느 날 10여 명의 경찰이 또 와서는 큰이모를 찾았다. 당시 큰이모는 십여 명의 동수와 함께 감옥에 갇힌 동수를 구할 일을 상의하고 있었다. 어떤 동수는 기지를 발휘하여 떠났고 어떤 동수는 경찰에 잡혀갔다. 나중에 경찰은 또 큰이모도 데려가려 했다. 큰이모는 어린 손주를 데리고 사다리를 잡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어린 손녀가 울면서 할머니! 하고 소리 지르며 따라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할머니와 손주 등 셋이 옥상에 함께 서 있었는데 두 손주는 놀라 할머니 품속에 꼭 기대있었다.
큰이모는 마당에 있는 경찰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당신들이 내 아들과 며느리를 잡아가서 두 아이는 아빠 엄마도 없는데 또 나를 잡아가서 어쩌자는 것이오?” 마을 사람들이 큰 이모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경찰이 할머니와 손주 세 사람을 지붕 위로 밀어붙인 것을 보고는 크게 화를 냈다. 경찰은 성난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자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곧장 달아났다.
4. 간난신고
반년 후 대우 부부는 정념으로 간수소에서 뛰쳐나왔다. 생활이 아주 어렵게 되자 다른 지역으로 일을 하러 떠났다. 당시 집에는 반찬 살 돈도 없었다. 낮에 큰이모와 소련이 함께 시장에 가서 진상을 말할 때 버려진 배춧잎들을 주워다 소금을 뿌려 반찬으로 삼았다.
큰이모와 소련은 저녁에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몹시 정진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했으며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두 사람은 마당 뒷편 작은 저수지 옆에서 맞은 편 공사장 가로등 빛을 빌려 법공부를 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 큰이모가 글자를 잘 보지 못하자 소련이 한구절을 읽으면 큰이모가 따라서 한구절을 읽었다. 두 사람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홍음》과 《홍음 2》를 외웠다. 옛날 사람은 “벽에 구멍을 뚫어 이웃집 불을 훔쳐”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맞은 편 불빛을 빌려” 공부한 것이다.
소련의 남매는 어려서부터 어른을 따라 파룬궁을 배워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아들이 막 7살 되었을 때 부모가 일찍이 박해받아 학교 갈 시기를 놓쳤으므로 1학년에서 바로 3학년으로 올라갔다. 어떤 때 방과 후에 집 뒤의 쓰레기장에서 폐품을 주워 팔아 십여 위안을 모았다. 이런 잔돈을 진상 자료 만드는 동수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것으로 사람 구하는데 쓰세요!” 동수는 눈앞의 이 순진하고 선량한 아이를 보고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큰 이모 집은 동수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큰 이모는 항상 동수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이 곧 당신들의 집이니 오는 분은 누구든 환영합니다.” 그러자 많은 떠돌아다니던 동수들이 큰 이모 집에 머물렀다. 큰 이모부는 담이 작아서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며 내심으로 압력이 매우 컸다. 그는 늘 이모 및 아들과 부딪히며 말했다. “목말라도 죽지 않고 굶어도 죽지 않으니 내가 당신들을 놀라게 해서 죽이겠다!”
하지만 당시 생활이 아무리 어렵고 바깥 상황이 아무리 긴장되어도 큰 이모 가족들은 늘 대문을 활짝 열고 동수들을 맞아들였다.
5. 대법을 실증하다
큰이모는 다년간 협조인 일을 했으며 주변 백리의 동수들이 다 일이 있으면 그녀를 찾아와 상의했다.
어느 날 큰이모는 세 차례 연속 병업관을 뛰쳐나왔다. 두 번은 그녀가 고통을 참으며 동수를 데리고 백리 밖에 일을 하러 갔다. 매번 병업 가상을 만날 때마다 늘 안으로 찾을 수 있었으며 신사신법의 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사령을 제거했다. 병업 가상은 겉보기에 기세가 흉흉했지만 큰이모의 정념이 아주 강하자 사령은 곧 사라졌다.
무슨 피를 토하거나, 안면 신경마비, 대상포진과 기타 부위의 아픔의 가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상포진은 속인이 보기에 치료가 아주 어렵다. 하지만 큰이모는 병원에 가지도 않고 의사의 진찰을 받거나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매우 짧은 시간에 건강을 회복했다. 주위 사람들이 보면서 다 불가사의하다고 하면서 파룬궁이 정말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2004년 시카고 법회설법》
정법노정에 따라 큰이모 일가는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며 철저히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굳건하게 사부님이 안배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일가족이 정법 수련에서 더욱 이지적이고 성숙해지자 환경에도 점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모의 독촉을 받은 이모부는 몇 차례 직장에 가서 진상을 말하고 급여를 요구하며 퇴직수속을 처리해달라고 했다. 이모부는 매우 겁이 나서 직장 책임자를 보고 감히 “파룬궁” 세 글자를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책임자는 늘 이모부를 회피하며 무성의하게 대하곤 했다. 이모는 남편에게 말했다. “뭐가 그리 무서워요? 대법제자는 어디를 가든 진상을 말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내가 직접 당신 직장에 가서 물어보겠어요.”
이모는 책임자를 찾아가서 우선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하고 자신과 남편이 연공 후에 몸과 마음에 큰 이익을 본 일을 말했다. 책임자는 듣고서 매우 흥미로워했고 이모에게 연공동작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모는 보이는 대로 신문지를 가져와 바닥에 깔고 결가부좌를 틀고 제5장 공법 수인을 했다. 그들은 매우 기뻐하며 “아주머니 당신은 제비처럼 날아갈 듯하네요.” 이모는 그들에게 가부좌를 하면 조용해지고 느슨하며 신체에 매우 유익하다고 했다.
책임자는 파룬궁 진상을 알고 이모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의 일은 직장에서 해결해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직장에서 그에게 퇴직 수속을 해주었고 매달 퇴직금도 주었다.
촌에서 공장 건물을 짓는데 군부대가 땅을 수용하여 대우가 산 부지의 땅을 점유했다. 이렇게 하여 대우는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는데 진에서 130여 평방미터의 새 아파트로 바꾸어 주었다. 집에 방 셋, 거실 둘, 화장실 두 개였다. 대우는 집이 다 지어지자 즉시 부모님을 고향에서 모셔와 화장실이 딸린 안방에서 지내게 했다. 친척들이 이것을 보고는 대우 부부의 효성을 칭찬했다.
고향 사람들도 다 이것을 알고는 말했다.
“대우 부부가 얼마나 효성스럽고 성실하게 부모를 모시는지 몰라.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고, 노인이 화를 내지 않도록 이렇게 잘 지내다니. 이런 며느리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거야!”
대우가 외지에 온 이후 그는 재빨리 그곳 동수와 세 가지 일을 협력했고 적극적으로 협조 일을 했다. 대우는 계속 장사를 했는데 장사도 갈수록 흥했고 자기 상점도 생겼다. 자녀들도 대도시에서 일을 한다. 설날 무렵 그는 새 차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친척들은 몰려와서 자동차를 보고 이웃들도 몹시 부러워했다. 그들은 큰이모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당신은 얼마나 행복해요. 자동차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대우와 소련이 얼마나 효심이 깊어요.”
대우 고모는 “우리 올케가 파룬궁을 수련해 가져 온 복입니다.”라고 했다.
대우 일가족은 몇 년 간 비바람 속에서 걸어왔는데 비바람이 지난 후 무지개가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그들은 유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고향의 친척들이 모두 괄목상대하고 있다. 그들은 큰이모 일가의 몸에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고귀한 품격을 보았다. 수련인의 선량과 순정이 그들에게 이후 진상하고 사람을 구하는 길을 깔아놓았다.
지난 20여 년 정법 노정에 큰이모 일가는 세인을 감동시키고 주위의 동수를 격동시킬만한 많은 즐겁고 슬픈 이야기가 있다. 오늘날 이모 가족은 정법의 길에서 사존을 따라 정진하며 갈수록 착실하고 광명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삼가 시정해주기 바랍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6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