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동수는 찾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대법제자 옥청(玉淸 가명)은 여교사로 1996년 6월 법을 얻었다. 법을 얻은 후 일주일 만에 온몸의 병이 사라진 것을 체험했고 원래 병약했던 사람이 건강이 무언인지 알게 되었다. 그해 8월 여름방학 기간에 고향에 돌아가 법을 얻은 기쁨을 70대 부친에게 알리자 부친도 그녀를 따라 대법을 연마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주로 부친에 관한 이야기다.
부친은 옥청의 지도하에 아주 빨리 5가지 공법을 배웠고 이때부터 매일 법학습을 하면서 연공도 했다. 원래 즐겼던 술도 연공 후에는 완전히 끊어버렸다. 모친은 기뻐하면서 “당신이 이 공을 연마하고 술을 끊어 정말 좋다”고 했다.
하지만, 1999년 7월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중공의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된 후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아닥쳤다. 옥청 고향의 동수들 역시 각종 비난에 직면했고 부친 역시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압력을 받았으며 압박을 견디다 못해 가족들이 대법서적을 바치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는데 동의했다.
부친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길을 잘못 걸었다. 박해가 심해짐에 따라 어용매체들의 무함선전이 울려퍼졌고 부친은 점차 정(正)과 사(邪)를 분별할 능력마저 상실했다. 게다가 원래 배웠던 책들(중공의 역사와 정치)이 더해져 사당에게 미혹되면서 서서히 사당을 따르게 되었다. 단지 대법에서 이탈했을 뿐만 아니라 대법과 사부님께 면목 없는 적지 않은 말들을 했다.
옥청은 부친이 매일 시청하는 ‘신문연파(新聞聯播 역주: 중공 CCTV의 보도프로)’가 진상을 아는데 아주 좋지 않은 것을 알고는 늘 TV를 적게 보라고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한해 한해를 지나며 속인과 뒤섞인 부친은 속인과 마찬가지로 되었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근무력증을 앓아 한쪽 눈꺼풀이 아래로 처졌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 아무리 많은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해 겨울 옥청은 부친을 직접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한편으로는 위로하면서 함께 병원에 가고 저녁에는 진상을 알려주었다. 또 부친이 예전에 대법을 수련할 때는 3년 동안 약이나 주사를 맞지 않고도 잘 지낸 것을 기억하게 했다. 그는 서서히 진상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대법을 수련하겠노라고 했다. 어느 날 옥청은 부친에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예전의 잘못을 성명으로 발표해 과거 대법과 사부님께 저질렀던 면목 없는 말이나 일들을 모두 폐지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옥청이 부친의 이름으로 이런 성명을 발표해도 되는지 묻자 그는 좋다고 했다. 이렇게 옥청은 부친이 엄정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부친이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 옥청의 언니가 아버지의 발을 씻기는데 갑자기 눈이 밝아지면서 눈꺼풀을 올릴 수 있었다. 근무력증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옥청이 이 일을 알고 난 후 시간을 따져보니 부친이 잘못을 참회한 성명이 사이트에 올라온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옥청은 부친에게 사부님께서 용서하고 죄업을 깨끗이 씻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런 불치병이 나았다고 제때 알려주었다. 하지만 줄곧 사당의 ‘신문연파’를 내려놓지 못했던 부친은 딸의 이런 말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2008년 봄 옥청은 대법서적과 사부님의 교공 비디오 등 자료를 갖고 고향에 돌아가 부친에게 드렸다. 또 연공음악이 녹음된 MP3도 드렸다. 부친은 꼭 잘 수련하겠노라고 표시했다. 그러나 옥청이 떠난 후 부체(附體)기공을 연마하던 어느 친척의 유혹에 넘어가 다시 대법을 믿지 않고 옥청이 전해준 대법자료들을 모두 난로에 넣고 태워버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대법자료를 태운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눈꺼풀이 다시 축 처져 내려오더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예전의 근무력증이 다시 도진 것이다. 그는 곧 후회했다.
옥청은 부친의 병이 재발하고 허리도 굽고 목이 부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며 눈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곧 어찌된 일인지 알았다. 그녀는 부친의 정념이 확고해지도록 돕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옥청은 다시 고향에 가서 부친이 사부님 법상 앞에서 참회하도록 했다. 하지만 부친은 여전히 날마다 CCTV의 신문연파를 시청했다.
나중에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는 동맥경화와 뇌혈전으로 몇 달을 치료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 부체공을 연습하던 부친의 친척이 도처로 다니며 병치료를 하고 대법을 무함하다 응보를 받아 눈이 멀어버렸다. 옥청의 부친은 그제야 대법 진상을 믿기 시작했다. 또 부친을 도와 대법사부님께 참회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했다.
2009년 여름 옥청이 고향에 오자 부친의 병은 이미 고황까지 깊어졌다. 그녀는 부친이 매일 법을 듣고 5장 공법을 연마하도록 도와주었고 또 ‘9평 공산당’을 들려주었다. 전에는 옥청이 공산당이 나쁘다는 말만 해도 들으려하지 않던 부친이 이제는 공산당이 어떠냐고 물으면 “공산당은 좋지 않고 멋대로 살인한다”고 했다. 이렇게 부친의 몸이 하루하루 좋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신문연파’를 내려놓지 못했고 또 매일 약을 먹었다.
어느 날 부친이 약을 먹는데 갑자기 약이 목에 걸려 숨을 쉴 수 없었다.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았던 그는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청했고 옥청도 부친을 도와 옆에서 발정념을 했다. 5분 후 숨찬 증상이 가라앉았고 잠시 후 알약을 토해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대법 사부님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셨음을 굳게 믿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저녁만 되면 거짓말을 날조하는 ‘신문연파’를 봐야 했다.
이 날 옥청과 부친이 법을 배우고 연공을 끝낸 후 옥청은 또 한 노년동수가 생사를 내려놓고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해 결국 말기 암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친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으며 앞으로 연공을 잘해 다시 대법 속으로 돌아오겠노라고 표시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7시가 되자 그는 또 권고를 듣지 않고 방송을 보았다.
저녁 10시가 되자 부친은 갑자기 목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고 약을 먹었으나 여전히 목이 막혔다. 약 한 시간 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가족들의 말에 따라 병원에 가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정신이 혼미해졌고 병원에 도착해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 곧 세상을 떠났다.
중국 농촌의 풍습에 따르면 망자의 유골을 묻기 전날 밤 친지들이 망자에게 노자를 마련해 준다. 다시 말해 일부 의복이나 지전(紙錢), 종이로 만든 말이 끄는 마차 등을 불에 태운다. 또 망자의 영혼을 서천으로 태워 보낼 가마가 있다.
옥청에게는 당시 일곱 살이던 여조카 통통(通通 가명)이 있었는데 천목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영혼이 가마에 탈 때 아주 언짢아하면서 어쩔 수 없어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입구에서 노자를 태울 때 통통은 할아버지 영혼이 불길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뒤이어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연화대(蓮花臺) 위에 서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웠고 머리카락은 곱슬머리였고 정수리로 말아 올린 상투를 틀고 있었다. 그가 통통을 한번 보자 통통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통통은 또 그 사람이 손을 한번 흔들어 작은 연화대를 만들어낸 후 할아버지를 그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웃었다. 그 후 할아버지 역시 머리카락이 곱습곱슬한 여래불의 모습으로 변했는데 나이가 아주 젊어보였고 옷도 아주 아름다웠다. 머리 뒤로는 아주 밝은 빛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마치 다시 만나자는 듯이 통통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 사람을 따라갔다.
옥청은 통통이 할아버지가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곧 자신의 MP4를 꺼냈다. 통통에게 대법 사부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어보았다.
“네가 봤다는 할아버지가 따라갔다는 그 사람이 혹시 이 분이니?”
통통이 사진을 보고는 아주 흥분하면서 “바로 이 사람이에요. 하지만 옷은 이렇지(양복을 가리킨다) 않고 부처님의 그런 옷이었어요. 얼굴은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옥청은 사부님의 법신께서 부친을 데려갔음을 알았다. 부친의 이런 귀결은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또한 예전 동수를 찾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듬해 여름 옥청 부친의 1주기가 되자 많은 친지들이 제수품을 들고 묘지로 성묘하러 갔다. 통통도 할아버지 무덤에 성묘하러 갔다. 돌아온 후 통통은 또 옥청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연화대에 서서 사부님을 따라갔던 그때보다 훨씬 늙어보였다고 했다. 그때 20세였다면 이번엔 40세처럼 보였다. 또 할아버지는 옥청이 무덤 앞에 와서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보고는 옥청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감사합니다, 내게 파룬궁을 가르쳐줘서 이렇게 큰 복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통통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어느 높고 큰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집안에는 시중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친지들이 그를 위해 각종 종이로 만들어 태운 집이며 차며 돈이며 하인들이 그쪽에선 모두 진짜였다. 그를 보살피는 사람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옷을 세탁하는 사람, 이발하는 사람, 목욕을 맡은 사람, 식사를 하는 사람 등이 있었다. 그녀는 또 할아버지는 작은 고모(옥청)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정말 후회한다면서 고모가 TV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이 우겨서 보는 바람에 중공과 한편이 되어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데려간 후 “당신은 중공을 믿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중공을 따라 가야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후 사부님이 그를 공산당 세계 속으로 밀어 넣으셨다. 그 속에서 그는 온갖 고생을 다 겪어야 했고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다시 그를 구해주셨고 친지들이 그를 위해 태운 것들도 모두 그에게 주셨다. 통통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매일 사부님께 참회했으며 사부님께서 그를 용서해주셨다고 했다. 현재 할아버지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천상에 올라가 사부님의 설법을 듣는데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옥청 고모에게 자신이 대법을 얻도록 도와주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통통은 또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대법을 비방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던 그런 사람들은 죽은 후 모두 지옥에 떨어졌으며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으며 전생(轉生)할 수 없거나 일부는 괴물로 변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사진 위의 괴물은 사진마다 모두 이름이 있었는데 바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던 때의 이름이었다.
이들은 살아생전에 중공사당(中共邪黨)을 따라 대법제자를 박해하거나 대법서적을 훼손하고 대법을 욕하며 대법제자를 살해하고 대법을 파괴하거나 무함한 이들로 죽은 후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 이런 괴물로 변한 것이다. 이들 괴물 중 어떤 것은 상체는 원숭이 하체는 거미였고, 어떤 것은 다리가 없는 돼지처럼 생겼는데 매의 날개를 지녔다. 또 어떤 것은 목이 긴 사슴과 같은 상체에 코끼리 같은 하체를 가졌으며, 어떤 것은 큰 나무 같은 상체에 원숭이 같은 하체를 지녔고, 또 어떤 것은 솔개 머리에 돼지의 하체를 지녔다.
할아버지는 그중 원숭이 상체에 거미의 하체를 가진 사진을 가리키면서 자신도 세상에서 대법서적을 불태운 적이 있기 때문에 하마터면 이런 괴물로 변할 뻔했다고 했다. 다행히 마지막에 옥청 고모의 도움으로 대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통통에게 아빠에게 절대 대법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꼭 알려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또 생전에 자신이 알고 지내던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절대 중공을 따라 대법을 더는 무함하지 말라고 했다.
성묘가 끝난 후 통통은 곧 할아버지와 작별했다.
옥청이 통통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할아버지가 간 곳이 어두운 곳이니 아니면 밝은 곳이니?”
통통은 뜰을 가리키면서 “이곳보단 훨씬 밝아요.”라고 했다.
옥청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오후 3시 무렵 태양이 뜰 안의 나무를 비춰 아주 환했다. 옥청은 부친이 속인들이 흔히 말하는 소위 저승에 있지 않고 고층의 어느 아름다운 공간에 있으며 사부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생명과 제고할 기회를 주셨음을 알았다.
조카의 말을 듣고 나서 옥청의 얼굴은 엄숙해졌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의 긴박함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명혜망에서 전재(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28/2369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