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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을 외운 수련체험 (4)

글/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이틀간 아주 평온한 듯 했고 또 그다지 많은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을 외우면 아주 유창한 것 같아도 뭔가 법(法) 속에 녹아들어가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이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곧 법외기를 중단하고 안으로 찾았는데 자세히 찾았다. 하나를 찾으면 한번 놀랐는데 몇 가지 집착심을 찾아냈다.

하나는 환희심(歡喜心)이었다. 최근 번화한 사거리에 ‘해체중공(解體中共)’ 현수막을 펼쳤는데 차량흐름이 많아서 보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동수의 대략적인 추산에 따르면 수천에서 심지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고 한다. 그 결과 나는 환희심이 올라왔다. 표현은 마음이 아주 흥분되고 격동된 것이다. 이는 환희심이 아닌가! 만약 찾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득의양양했을 것이다.

또 계속해서 찾아보니 두 가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작은 일에서 질투심이 있었는데 앞서 교류문장에서 언급했던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과 같았다. 이때 다시 법을 외자 법속에 녹아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이해에 따르면 나는 법리를 보려고 추구하지 않았고 그 어떤 구하려는 마음도 품지 않고 법을 학습했다. 하지만 만약 법리를 보지 못했다면 이는 안으로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은 일,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닦다

제1강 ‘왜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를 외울 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법을 외웠다. 한 단락을 외울 때마다 눈물이 한 번씩 났다. 외우는 과정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옆에 계신 것을 느꼈고 아주 많은 곳에서 마치 나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사부님의 법에 대조해보니 진실로 자신의 부족을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에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상 물질에 보증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어떤 변화인가? 당신이 추구하고 집착했던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은 버릴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병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그것의 마개를 꽉 틀어막아 물에 던지면 그것은 역시 물밑까지 가라앉는다. 당신이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쏟아버리되 많이 쏟아버리면 버릴수록 그것은 더욱 높이 떠오를 것이며, 완전히 쏟아버리면 그것은 곧 완전히 떠오른다.”

이 부분을 외울 때 나는 마치 더러운 것이 가득 찬 병과 같은데 더러운 것을 밖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듯 했다. 왜 그랬을까? 이 구절을 외울 때 나는 자신의 질투심이 나의 언행이나 심지어 일사일념 속의 소위 ‘작은 일(小事)’ 중에 늘 감춰져 있어 발각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점차 누적되면 하나의 아주 크고 아주 깊은 원망과 질투심으로 변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질투심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와 모순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 외우자 나는 일찍이 협조인과 여러 차례 모순을 일으켜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이 떠올랐다. 이것이 사부님의 말씀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주요 표현은 자신의 건의가 협조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불평하고, 더 나아가 협조인을 무시하면서 그녀의 수준이 낮다고 여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질투심의 표현이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너무나 부족했다. 이런 질투심은 너무나 두려운 것으로 반드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협조인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선 자신을 보고 자신을 찾을 것이며, 나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럼 남이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보면서, 당신의 심태와 어투가 어떻다면 나는 어떻게 원용하고 보충하면서 이것을 제고하는 좋은 일로 간주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화를 내고 불평하는 일은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모두 우리더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전에는 문제가 있으면 법을 배우면 곧 끝났다고 여기고 법으로 지도하거나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지 않은 게 아닌가? 이 관건적인 한 걸음을 해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법을 외웠기 때문에 작은 일에서 자신을 닦음을 중시하자 자신의 언행에도 일부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예를 들면 한번은 내가 막 발정념을 하는데 어떤 동수에게 네 차례나 전화를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아주 언짢아하면서 또 이렇게 ‘언짢은’ 배후의 요소가 무엇인지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몹시 언짢았지만 아주 빨리 이것이 옳지 않음을 인식했고 계속해서 발정념을 했다.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는 자신에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일깨워주면서 가급적 자신의 심태를 평화롭게 하면서 통화했다.

또 계속 발정념을 하는데 세 번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 번의 전화를 모두 통했으니 이젠 다 됐을 것이다. 그러나 발정념을 끝마치기도 전에 또 네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이때 나의 심태는 이미 비교적 평온해졌고 조급해하지 않았으며 언짢지도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이미 씩씩거리거나 아니면 아주 성가시게 여겼을 것이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전에 만났던 유사한 수많은 ‘작은 일’에서는 거의 자신을 닦지 못해 이미 병에 더러운 물건이 가득 차게 했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주 두렵다.

때로는 연공할 때 전화가 오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전화를 받는다. 통화가 끝나면 전화를 끊고 다시 연공을 계속한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나는 곧장 “지금 연공 중이니 빨리 말해요!”라든가 “연공이 끝난 후 다시 얘기합시다!”라고 했을 것이다. 말 밖의 뜻이란 바로 당신이 나의 연공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모두 자신을 위하고 남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내 머릿속에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들어왔다.

“전화가 오거나 다른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당신은 즉시 가서 일을 보아도 되며 공을 거둘 필요가 없다.”(《전법륜》)

나는 이렇게 하는 것만이 정확한 태도임을 깨달았다. 사실 이런 태도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생각하면서도 평화롭고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법을 외운 후의 미묘한 변화로 당시에는 의도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했던 것이다. 겉보기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이런 ‘작은 일’에서의 제고야말로 오히려 착실한 수련과정이다.

또 한 번은 어떤 동수가 갑자기 문자를 보내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당문화가 아주 중하다고 지적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사과했고 나의 문제를 지적해준 것에 대해 그에게 감사했다. 또 자신에 대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주는 대로 다 받아들였다.”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았고 일이 발생했던 과정을 회상하면서 당시 나의 심태가 어느 방면에서 집착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자신을 찾았다.

내가 이 질투심을 닦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늘 그것을 겨냥해 발정념을 하는데 이렇게 해도 잘못은 아니지만 평소 행위에서 닦지 않고 일사일념에서 닦지 않았다. 때문에 발정념을 끝내면 청리되지만 평소 닦음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나타나서 끊임없이 쌓인다. 그러다 모순에 봉착한 후에야 그것이 나쁜 작용을 일으킨다. 법 암송을 통해 나는 아주 분명하게 ‘작은 일에서’ 그리고 일사일념에서 그것을 닦아버려야 함을 알게 되었다. 당신이 만약 마음을 써서 닦아낸다면 그것을 발견하고 잡아서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이라, 무엇을 누락이 없다[無漏]고 하는가? 작은 일은 없다.”(《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

기본적으로 매일 적지 않은 작은 일들이 발생한다. 자세히 관찰하고 법으로 가늠해보면 당신은 적지 않은 사람의 교활하고 이기적인 심리를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하나를 잡아 하나를 닦으면 당신은 곧 일부 더러운 것을 좀 쏟아버린 것으로 당신은 좀 떠오르게 되고 좀 승화하게 되는데 우주의 진선인(真·善·忍) 특성과 좀 더 가까워진다!

사실 그런 제고 역시 몹시 놀라운 것으로 오직 대법(大法)만이 이런 위력을 지닐 수 있다. 바로 내심(內心)으로부터 한 생명을 개변하는 것이다!

이상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삼가 자비로운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2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