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清風)
【정견망】
최근 정견망에 발표된 《윤회 속 생명의 역할과 인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글을 보고 작자가 깨달은 것이 아주 투철함을 느꼈다. 여기서는 나 자신의 상황과 결합시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말해보고자 한다.
생활 속 연기자(生活中有演員)란 직업이 있는데, 이 직업에서 중시하는 것은 특정 역할 속에 녹아들어가 연기하면서 자신을 잊고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해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 역할의 모든 것 가령 눈빛, 성격, 의상, 기호, 직업 등으로 자신을 완전히 대체하는데 훌륭한 연기자라면 어떤 역할을 맡든 자신을 완전히 잊고 그 역할에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연기자라 해도 자신을 배역과 구별할 수 있으며 배역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역할이 진짜 자신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일부 사람들은 일정 시간 연극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현실과 연기를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패왕별희’의 주인공인데 역할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사부님의 인도 하에 사람의 문명을 개창했고 오천년 연극을 연기해왔다. 다만 속인의 층차에서 미혹되어 분명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고층차의 공간에서 보면 마치 우리가 영화관에서 스크린에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아주 분명할 것이다. 우리의 진실한 신분은 철저히 바뀐 것으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철저히 연기하는데 무엇을 연기하면 그것처럼 된다. 또는 무엇을 연기하라고 하면 그것을 연기하는데 매번 한 역할의 연기가 끝나면 곧 새로운 윤회에 들어가 다른 역할을 연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 중에서 전에 연기했던 그 역할이 가져다주는 침전이 있어서 각기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정도의 영향을 끼친다. 이런 영향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본인은 역사적으로 일찍이 여러 차례 문호(文豪)를 연기했고 일부 천고의 명편(名篇)들을 남겼으며 오늘날 내가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또 여러 차례 창기(娼妓)나 축생류로 환생하면서 ‘음란’과 ‘비천’을 연기했다. 이런 것들이 내게 초래한 영향은 업력이 무겁고 색욕심이 무거워서 지지부진하며 자꾸 반복되어 철저히 제거하기 어렵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전법륜》) 주셨지만 구세력은 좋은 것은 가급적 억제하고 나쁜 것과 우리의 좋지 않은 일면을 최대한 확장하고 강화했는데 모든 집착심에는 다 이런 요소가 안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최대한 미혹시켜 마치 ‘패왕별희’의 주인공처럼 무엇이 연극이고 무엇이 진정한 자신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역사의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과거 역할을 잊고 연극 속에서 철저히 뛰쳐나와 우리에 대한 그 역할들의 애증이란 속박을 잘라버려야 한다. 생활 속 연기자도 자신과 연기의 역할을 구별할 수 있으니 우리는 마땅히 더 철저하고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명의 전체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이는 우리가 금생에 인간세상에 있으며 자신이 전에 무엇이었든 마땅히 잊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신분이 대법제자임을 명심하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 다음 우리는 전에 우리가 연기했던 역할 속의 좋은 것, 세 가지 일을 잘하는데 유리한 모든 것, 우리가 연기를 잘해서 가져온 복을 포함해 그 역할의 재능, 지혜, 정직, 강한 의지 등을 이용하고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동시에 법 학습을 많이 하고 나쁜 역할을 연기할 때 지은 업력과 그 역할에서 연기한 잔인, 냉막, 질투, 색욕 등은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전법륜》)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완성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서는 불가능하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음”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2842